2024년 5월 20일 (월)
(백) 교회의 어머니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일(교육 주간)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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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성경말씀과 현실과의 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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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121.131.166.*]

2017-07-18 ㅣ No.11538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겠다고 마음 먹는 순간이 기도하는 순간이지요. 요는 쿼바디스 도미네의 베드로처럼, 다마스커스 회두의 바오로처럼 진보할 것이냐 아니면 완전 보수로 그냥 생각도 침묵할 것이냐 등 섞갈림이 따를텐데 그때는 신부님의 성체거양 순간처럼 나도 재빨리 사제직 왕직 예언직으로 숨바꼭질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고통을 이기는 방법은 더 큰 고통의 신비로 대처하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아예 24시간 케어가 필요한 장애인과 동고동락하는 비장애인으로서의 작전을 바라보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이고 지금은 갖가지 제약으로 미사를 보는 것이 아닌 참례하는 것임을 잊을 뿐인 것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역시 섞갈림도 따르겠으나 이때의 단순한 "가만이 있어라. 나는 모른다." 등의 죄와 벌을 지금처럼 그렇게 잔잔히 돌아보는 것도 은사일 것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욕하고 때릴때 그를 배려하며 침묵하는 자세는 제자 토마스로 하여금 막달레나 마리아보다 기도하는 마리아를 닮은 매우 커다란 은사임을 만나는 현장으로서 머리로는 알지만 가슴이 파도로 몸부림 치며 그것들을 머리와 맞들고자 하는 현상과 같은 것이기에 역시 음정, 박자를 위한 쉼 공간이 중요할 것입니다. 그때도 그렇게 지금처럼 침묵하고 있음을 만나면 될 것입니다. 그냥 듣고, 맞고 있는다고 하였는데 그것 참 어려운 일이기도 하지요. 이 순간들 성령 감화로 무장 받으면 사적인 그것보다 공적인 불의에 대하여 점차적으로 용기와 지혜로서 상대방에게 충고를 더하게 되는데 이는 자녀들의 미래 위한 거울로서 세상 유혹에 절대 지지않으신 하느님과의 소통으로 즐겨 나가면 될 일입니다. 지금도 그처럼 내가 아닌 그분과 함께하며 함께하기 위한 세월호 여정이기에 아무에게나 나의 고민을 털어놓지 않는 단면이기도 한 것이지요.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대해야지 마음 먹는 순간 상대방으로 부터 무시와 멸시가 심해지는 것 역시 소돔과 고모라 군중이 많은 내안의 인간관계 대표적 현상이지요. 그것도 은총으로 여길 수 있도록 더욱 예수님과 친교를 꿈꾸길 바라는 것입니다. 성사생활 중요하다는 말씀인 것이지요. 꿈은 이루어지기에 지금 이순간 이미 이루어지고 있기에 인간적인 계산 등을 점차적으로 멀리하거나 움직이는 침묵 사이의 잠시 바보가 되는 인생 자체로서 잠시 하느님 품 찾아 숨는 것도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그냥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좋치요. 예수님 말씀처럼 인간을 사랑하고 용서하고 양보하고 싶다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대충 철저히라는 이해할 수 없는 죽음과 삶의 만남 또한 피하는 것도 방법이겠으나 아예 더 고통스러운 친구들과 동고동락에 감사 그리는 것 또한 중요할 것입니다. 그렇게 지나가는 것으로 관찰 병행해보세요. 그런 가운데 언행을 할때 늘 주의를 하는데도 상대방이 괴롭히는 것은 임께서 성모님을 닮아있기 때문인데 그런 사람들을 더욱 순진한 어린아이 사랑받음으로 바라보던지 순수한 사람으로 만들려는 그 열정의 문제인지도 그냥 즐기는 자세가 중요하겠습니다. 그런데도 괴롭히면 1:1로 조용히 준 고해성사를 베푸는 소꼽놀이로 하심도 중요하겠지요. 그러면서 성질머리 더러운 남자라던가 얄미운 여자들도 복음화로 이끄는 자세가 중요하단 이야기지요. 상대가 나를 괴롭히고, 곤란한 상황을 자주 만들면 더 큰 힘으로 생활속의 녹색순교를 맞이하던지 아니면 강대 강으로서 확! 박해를 해 버리던지도 임의 선택일 것입니다. 이를 약육강식의 세계라 하지요? 자비도 숨어버리기 마련인데 이는 불협화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노래하는 인생이기도 할 것입니다. 인생은 이처럼 바둑과도 같은데 때때로 연출이 중요하다는 이야기지요. 이를 성경말씀과 현실과의 괴리 때문으로 보지 말고 성경말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는 가운데 임께서 하느님 평화의 도구될 수 있도록 너무나 힘듦을 진정 힘든 그것 또한 피할수 없으면 즐겨라.의 내 것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묵주알이 10개씩 있는 이유는 불가로 따지면 십년공부 도로아미타불(삼장법사와 손오공, 저팔게, 사오정도 나중 윤회를 끊고 무심으로의 성불했다지요), 천주교(천주님 가르침)는 비움와 채움의 만남을 위한 미사를 그리스도 제사, 예배 등과 함께하는 크리스마스라 함과 같은 것으로 믿고 있는데 이때의 믿음은 소중한 것입니다. 너와 나 살고있는 세속에서 10년이면 강산도 변하는 것도 99마리 양을 두고 한마리 잃어버린 양을 찾아 떠나시는 주님과 나의 작전이 담겨있기에 주님도 기도하시는 1:99를 십분의 1로 줄여드리는 것이지요. 여담이지만 필자 그녀와 처음 성탄미사 함께한 미사후 인파 속에서 발견된 그 모녀 떠나던 성당에서 필자의 전신 류마티스 중증 장애자로서 견진 대자되는 미사에 임한 프란치스코는 너무나 고통스러웠기에 하루 묵주기도 100단을 바쳐야 했고 완치되어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대자의 핸드폰 화면에는 수녀님의 동생인 그 큰 눈망울 금새라도 눈물 흐를것 같은 어여쁜 그라씨아 자매를 (결혼 반대하는 부모와 나중 택일하라며)보내야 했기에 잊지 못하고 있었는데 이 모든 것 임들의 기도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후천적 류마티스를 앓던 수산나 어머니의 모든 것 의탁하며 기도 전구하던 추억도 어느날 공사장에서 녹슨 못을 밟아 고통받는 아들을 보며 레지오 단장직 때려 치우며 십자가를 내 팽겨쳤다 하던 아버지의 고백도 그렇게 지나왔는데 자녀를 모두 성직자로 봉헌한 그라씨아 자매의 부모가 막내 딸까지 고행을 이룰 수 없다며 대자와의 결혼을 반대한 것도 대자 또한 고통중에 택일하라 한 것도 크게 보면 때때로 주사위 숫자를 미리 정해놓고 기도하는 인간관계 오류의 단면이기도 한 것입니다. 이때의 너와 나는 피해자보다 본의 아닌 가해자 된 입지의 사람들 기도가 더욱 활성화 됨을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이로써 은총의 언행중 나쁜 마음이 들때 묵주기도를 바친다 하시니 주님께서도 매우 기뻐하시고 그것을 직접 이룰수 없는 성모님 전구 또한 요나의 고통을 미리 보고하는 사탄의 그것까지 묵인하시는 하느님 아버지께 때때로의 압박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이때의 묵인 중에도 대화가 살아있음을 잊지 마십시오. 그것은 임의 침묵에도 살아있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기도는 나중 살아서도 죽어서도 더 기쁜 영육 저축의 힘으로서 발휘하게 되지요. 지금의 그러한 과정에서 억울한 마음이 계속들고 마음 한구석이 꽉 막힌듯 답답할 때에도 더욱 분명한 그곳을 향하여 지나가는 것임을 믿기에 인내력 가운데 고통 또한 어느 순간 빛과 영광 그리고 환희로 다시 힘 주실 것입니다. 이는 무조건 참으라는 메시지가 아닌 보다 여유와 담백으로서 할 말들도 자유롭게 말씀으로 변모시켜주시는 은사로서 그러한 조건없는 봉헌(줌으로써 받음)이 또한 주님께서 당신만을 믿으심을 보며 고해(풀어주어 가게하다)하게 되는 나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결국 삶과 죽음의 동시 만남을 통한 햄릿의 독백을 닮아있는것이 인간관계인듯 하지만 이 또한 죽음의 물과 생명의 피의 섞임으로 이겨나갈 수 있음을 관조하는 것입니다.

 

그런 순간들을 참으면 더 좋은것을 주시리라 믿는 것 좋은 것인데 주님이 인도하시는 길을 잃고 외롭게 참는 것은 자칫 억제가 되니 보다 낙천적으로 하느님과 동고동락을 꿈꾸시길 바랍니다. 꿈은 이루어지기 마련입니다. 그것은 하느님과 임만 뒤떨어지는 것이 아닌 엄마 찾아 삼만리의 괴롭히는 이들이 더 처지는 현상이기에 피할수 없는 사필귀정 앞에서 죄인들의 옥고를 보며 기도하는 여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들이 너무도 잘 먹고 잘사는 정의롭지 못한 세상이 원망스럽고 두렵다 하셨는데 배부른 돼지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좋은 것임을 믿고 의지하십시오. 과정에서 사탄이 가장 커다랗게 유혹하는 것이 빨리 성인 되라며 서두름을 획책하는 것임을 기억해 두세요. 서두름은 교란 당하는 것이기에 내 십자가를 오로지 먼저 주님과 함께 즐겨 정돈해 두는 것이 중요할 것입이다. 이는 장애인 가족의 애환이 섞인 사회복지도 중요하지만 사목이 더 우선한다는 것을 관조하는 것으로 이를 갖가지 교란으로 방해하는 사탄은 일반 정신병원이 아닌 더하기 육체병원으로도 데리고 가는 것이 한 방법이 될 것입니다. 신, 구약 타먹이면 숨거나 도망가자 할 것인데 성경이 진리로 보일 때 또한 평화라는 은총 순간이지요. 베드로처럼 저는 그리스도의 은총만을 믿습니다. 바오로처럼 회두하는 순간들이 주님과 임의 것임을 이루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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