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월)
(백) 시에나의 성녀 가타리나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버지께서 보내실 보호자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쳐 주실 것이다.

성지순례ㅣ여행후기

거룩한 땅이여~길고도 감사했노라~♬순례길198~202처(울산병영순교성지/수영장대순교성지/오륜대순교자성지/조씨형제순교자묘)1차 순례 완결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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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남 [agnes536] 쪽지 캡슐

2022-10-19 ㅣ No.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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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근 베드로신부님과 아쉬운 작별을 뒤로하고 부산으로 달려가려던 길을

울산의 마지막 순례지인 병영순교성지를 향해 방향을 틀어 달리기로 한다.

5시 가까운 시간이지만 아직 어둠이 내려앉지않은 이웃 길이라 또 욕심을 부려본다.

5시 57분에 도착한 병영순교성지 성전은 예상대로 문이 굳게 잠겨 끄떡도 앉는다.

에게~ 화장실문까지... 꾹!


울산 병영 순교 성지는 예전에는 장대벌 성지라고 불리었다.한다

장대벌은 장대가 있는 벌판이라는 뜻인데

장대는 지휘관이 병사들을 지휘할 때 올라가던 돌로 쌓은 대를 말하고.

당시 병영은 군사를 훈련하는 장소이면서 중죄인을 처형하는 장소로도 쓰였다한다.

첫번째 순교자인 오치문 베드로를 비롯하여

지난 진목정성지, 경주관아와 옥터에서 설명드린

세 분의 복자도 이곳에서 순교하였다.

 

오치문 베드로(1804 ~ 1861)

언양의 명문가에서 태어난 오치문 베드로는 이 지방 첫번째 교인이라고 전해진다.

학자였지만 신앙을 받아들인 뒤에는 벼슬에 오르지 않고 교리만을 실천하며 살았다한다.

1860년 경신박해 때 체포되어 울산장대에서 백지사형으로 순교한다.

 

허인백 야고보 , 이양등 베드로, 김종륜 루카 세분의 복자는 출신지는 달랐지만

신앙생활을 위해 박해를 피해 죽령교우촌로 이주해 함께 신앙생활을 하다가.

1868년 5월경 함께 체포되어 경주로 끌려가 혹독한 형벌과 문초를 받았지만

신앙을 증거했고 울산 장대로 이송되어 1868년 9월 14일 참수형으로 순교하였다.

세분의 복자들은 순교 당시 십자성호를 긋고, 예수, 마리아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용감히 순교의 칼을 받았다 한다.

세분의 유해는 현재 대구 복자성당에 모셔져 있는것을 지난 순례길에서 만났다.

 

입다물고 있는 성전에 깊은 절로 인사하고 저쪽 귀퉁이로 마련된 십사처의

길따라 또 걸어간다.

이미 어둑어둑해 오는 무더운 기운에 편승한 모기떼의 지치지않는 공격은

십자가의 길을 걷는 우리부부를 환장하게 만든다.

"주님께서는 십자가로 온세상을 구원하셨나이다~ 앗!따가~

어둠만 내려앉으면 달겨드는 이놈의 모기떼들은 아마도 사탄의 하수인

이라도 될까나 보다^^

기도가 끝날즘엔 할배 할매 벗겨진 두팔. 다리는 빼앗긴 피로 온통 부풀어있다.

피한방울 주믄 안 잡아묵지~ 물어볼새도없이 기냥 달겨들어 빨아먹고 내빼는

어둠의 무법자들이다.

 

6시31분 우여곡절의 십자가 짜증의 고통길을 마치고 이제 참말로 잠자리찾아

수영장대순교성지 곁에 있는 하룻밤 모텔을 찾아 떠난다.

우선 성지의 위치를 파악해놓고... 근처일대의 모텔들을 114를 통해 모두 연결해도

"방없슴다" 아예 전화도 받지않는 곳이 태반인 이곳은 또 우찌된 것이여?...ㅠㅠ

 

지난 대구에서 모텔방 찾기가 별따기처럼 어렵고 난감하더니...

이곳 부산 광안리 땅 바닷가의 잠자리 또한 더 낭패로다.....!!

몇바퀴를 돌다돌다 부산역 근처의 모텔들을 찾아 한참을 걸려 또 달려간다.

아마도 오늘 내일이 올여름 휴가의 피크기간이라서 그런지 길바닥은 넘쳐나는

젊은 커플들로 기암을 하게한다.

대한민국 젊은 아~들은 여게다 모였나 보다.... 맨날 노인네들만 하고 살던

동네하곤 별천지 딴판인 찬란한 광란의 밤저멀리 광안대교라나 길다란 다리또한

엄청 요란스레 어둠을 뽐낸다.

 

"반석아부지~ 6대 도시에 순례라도 다시 올때는 아예 변두리로 가서 잠자리를

잡아야 될끼라는 걸 또 하나 배웠네요...^^ 거게다 되믄 작은마을 군청근처의

모텔방들은 양반이네요.."

 

늦은밤 꼬불꼬불 오르는 주차장도 없는 작은 모텔방 계단을 올라가 감지덕지하며

뜨거운 물 한바가지 쏟아붓고 길고긴 오늘하루의 여정을 마음껏 풀어놓는다.

 

주일새벽 5시 안되어 준비를 하고 또 지난밤 보아두었던 광안성당 미사시간에

맞춰 출발해 간다. 6시30분 미사시간을 여유롭게 도착한 시간이라

아예 그 곁에있는 수영장대순교성지를 들러

바쁘게 인사드리며 십자가의 길을

걷기위해 아직도 잠이덜깬 성모님 팔을 잡아 채근해 가며 졸라댄다

"어머니께 청하오니~ 제맘속에 주님 상처 깊이 새겨주소서~ 아함~!"

수영장대골은 조선 시대 경상도의 동쪽을 수비하던 경상좌수영이 있던 곳이다.

장대는 지휘관이 군사들을 훈련할때 올라가서 지휘를 하는 곳으로

지금 시대로 보면 연병장에 사열대라고 보면 될것 같다.

 

부산지역의 박해가 크게 시작된 것은 오페르트의 남연군묘 도굴사건이 있은 뒤다.

남연군묘 도굴사건은 1868년 5월 독일 상인 오페르트 일당이

흥선대원군의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도굴하다가 실패한 사건인데.

 

그 당시 부산에서는 '박근기 사건'이 벌어진다.

초량사람이었던 박근기는 '일본이 서양과 통상을 하고 있으니

조선의 신앙자유를 위해 일본을 통해 서양에 호소를 해보자'라는 생각으로

몇몇 신자들과 뜻을 같이하고 다니다가 붙잡히게 되는데.

이를 계기로 부산과 동래에서 서학무리를 잡아들이는 박해가 시작이 되었다한다.

 

장대는 간혹 중죄인의 사형장으로 사용되기도 했는데

박해시대에는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장이 되었다.

 

복자 양재현 마르티노는 이정식요한의 대자였다.

1868년 집에서 체포되어 통영우수영으로 이송되었다가 동래로 압송되어.

문초와 형벌을 받던 중 옥사장의 꾐에 빠져 돈을 주고 석방되지만

다시 체포되어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한다.

 

이정식 요한, 이월주 프란치스코(아들), 박조이 마리아(며느리), 이관복 베드로(조카)

등 가족4명과 양재현 마르티노, 이상근 야고보, 차장득 프란치스코, 옥소사 발바라

8명의 순교자는 혹독한 문초와 형벌에도 굴하지않고

결국 경상좌수영 장대에서 군문효수형으로 순교했다한다.

처형된 순교자들의 목을 장대위에 매달아 놓아 민중들에게 경고와

천주교에 대한 적개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였다.

하지만 당시 천주교인들의 처형장면을 지켜본 사람들에게는

"처형을 하는 수영장교들과 군졸들은 삼엄한 분위기에 위엄을 갖추었지만

사형수들은 마치 잔칫집에 나가는 기쁜 표정으로 순교했다"고 구전으로 전해진다.

8분 순교자의 묘는 오륜대 순교성지에 모셔져 있다.

 

순례의 기도를 마치고 다시 성당으로 돌아와 주일 첫미사를 봉헌하고

7시46분에 금정구 오륜대로에 있는 오륜대 순교자 성지를 향해 출발한다.

참 이상스런 일이다.

오륜대가 해운대 근처 있었던것 같은 45년전 기억이 있는데.... 금정구에 있다니..

"반석아부지~ 그 왜 우리가 피정했던 데가 오륜대 피정의 집 아닌기요?

근데 그때 분위기하고는 여엉~ 딴 나라로 온거 같네요 우찌된 건고?.."

8시2분에 도착한 오륜대순교성지는 으슥한 숲속의 나라에 온것같은 넓고 깊은

나무들의 합창이 들리는 듯한 고요한 길따라 십자가의 길이 있고... 성모님의

꽃송이 아름아름 엮어가는 로사리오 신비의 길이 펼쳐진다.

 

우선 성전안 예수님께 맑고 초롱한 아침 문안인사 드리고 나와 산길을 헤집는다.

아직도 잠이덜깬 어스럼한 산속기도길에 또 나타난 어젯밤의 복병들이 우리를

향해 달겨든다....우~웅~웅~ "피좀 주믄 안잡아 묵지~♬"

"싫다카이~ 저리 쫌 가라~ 제발! " 연신 날려대는 이파리부채 로도 막을수 없는

 

어둠의 무법자 모기떼의 수난을 그래도 견뎌보려 어머니께 청하다가 청하다가~

빨라지는 걸음걸이는 환희의 신비~ 고통의~ 영광의 신비를 ~삼심육계 줄달음치며

해치운다.... 어무이~ 안되겠슴니더... 빨리빨리 ~

"사 ! 람! 살! 려!.....~~~"

오륜대 순교성지는 부산 수영 장대에서 순교한 이정식 요한과 그의 일가족 4명을 비롯한

8명의 부산 순교자들의 유해가 이장되어 있는 '부산순교자 묘소'와 한국순교성인 103위 중

26위의 유해를 안치한 '순교자성당'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그동안 50년간 한국순교복자회에서 ‘부산 오륜대 한국 순교자 기념관’으로 운영해 오다가

2013년 10월부터 부산교구에서 성지를 담당하게 되어 명칭도 '오륜대 순교자 성지'로 바꾸었다.

오륜대 성지 입구를 들어서면 먼저 2014년 시복식을 기념해 설치한 순교복자 이정식 요한과

양재현 마르티노의 흉상 그리고 한복을 단아하게 입은 성모자상이 순례자들을 반기며 서있고,

바위에 새겨진 “우리는 순교자의 후손”이란 글귀 너머로 박물관과 순교자 성당 그리고 그 뒤로

야트막한 산비탈에 우거진 숲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박물관 외벽의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이라는 명패를 보며 입구에 들어서면

“순교자의 후손은 살아 있다.”라는

글이 한눈에 들어와 자랑스러운 신앙 선조에 대한 뿌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부산에서 순교한 8명의 순교자들은 1868년 부산 수영 장대에서 군문효수 당한 이정식 요한,

그의 아들 이월주 프란치스코, 며느리 박조이마리아, 조카 이삼근 베드로, 조카 이관복 야고보,

차창득 프란치스코, 양재현 마르티노, 옥조이바르바라 등이고,

이들은 ‘박근기 사건’이 일어나 체포되었으며, 모진 악형에도 배교하지 않고 마침내 순교하였다.

유해는 동래구 명장동에 있는 갈멜 수녀원 뒷산 등에 묻혔다가

1977년 9월 17일 이곳 오륜대로 이장되었다한다.

 

9시20분 모기로 부터의 탈출을 시도하며 진짜로 1차 순례길의 202처의 마지막 길인

강서구 생곡길의 부산 끄터머리에 있는 조씨 형제순교자묘를 향해 또 달려간다.

 

아침부터 간간이 내리던 빗줄기가 제법 강하게 쏟아지더니 10시14분

성지에 도착하자 뚝! 멈춰준다. 이시간 또 깨닫는 성령의 인도하심이여!

찬미 받으소서~

 

조씨형제 순교자묘를 찾아 부산시 생곡동의 좁은 골목길을 들어서면

고즈넉한 분위기의 오래된 한옥이 먼저 우리를 반겨준다.

대문이 활짝 열려있는 이곳은 故배문한 신부의 생가라고한다.

물에 빠진 신자 3명을 구하고 하느님 품으로 떠난 배문한 신부를 추모하기 위해

생가를 복원하여 순례자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으며 스템프도 또한 이곳에 마련되어있더라.

 

조석빈 조석증 형제는 창영조씨가문 김해파의 원조 묘우당의 6대손이라 하며.

유교 학자였지만 두 형제는 천주교에 입교하면서 선교활동에 헌신하였다고 한다.

조석빈 (1825-1872) 조석증 (1834-1872)

심한 박해 속에서 재산을 모두 몰수 당하고 은신하여 살면서도

유학과 서학의 비교 연구를 하였고 양반 집안을 찾아다니며

천주학을 가르치는데 열중하다가.

사학죄인으로 여러 차례 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배교를 강요당했으나

끝까지 신앙을 증거하다가 참수형으로 순교를 한다.

 

관헌은 먼저 형 조석빈을 참수한 뒤 동생 조석증을 회유하고 배교를 강요했으나

조석증은 "형님의 목에 십자가 꽃이 피었다"며 기쁨을 감추치 못하고

자신도 참수해 주기를 간청했다고 하며 함께 순교의 영광을 얻게 되었다 한다.

 

순교한 이들의 유해는 조씨 선산에 매장하려 했으나

사학죄인이라 문중에서 반대를 하게 되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배씨 집안에서

배문한 신부의 증조부 집 언덕에 묻어주었다한다.

이후 조씨 형제의 순교사실에 대한 구전이 배씨 집안에 내려왔으며 4대에 걸쳐

묘소도 관리해 오며,

    

1995년 순교자 형제 묘소 단장미사를 봉헌하고 묘소 주변에 십자가의 길을

설치하고 묘소 뒤 바위 위에 대형 돌 십자가를 세웠다는 기록을 읽으며

`1차 순례길의 마지막 조씨형제의 무덤앞을 오락가락 하는 빗줄기와 함께

길고긴 순례길의 마지막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감개가 또한 무량하기만 하다.

1년 6개월 대장정의 순례길을 마무리 하며 아픔과 어려움이 닥쳐오는

시간속에서도 늘 함께 하시며 어깨를 두드려 주시는 우리 하느님...

"잘 참고 견디어 내어주니 기특하구나~! " 격려와 위로의 응원을

들려주신다....

 

지난 시간속에서 저희와 함께 동행하시며 전국 팔도의 거룩한 땅을

인도해 주신 성령님... 성모님... 감사드립니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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