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0일 (금)
(백) 부활 제6주간 금요일 그 기쁨을 아무도 너희에게서 빼앗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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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개신교 신자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나?-----송용민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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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4-02 ㅣ No.11136

찬미예수님!

 
세상 속 신앙 읽기  
송용민 지음

4. 세상 속 사람들


적지 않은 가톨릭 신자들이 갖는 편견 중의 하나는 개신교 신자들과 대화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는 대화의 필요성을 느끼지도 않고, 행여 친구나 동창 모임에 열심한 개신교 신자가 있으면 선뜻 신앙과 교리 이야기를 꺼 내는 일을 거북하게 여기기도 한다. 교회일치운동에 참여하 는 나한테 "개신교와 일치가 되겠어?"라고 회의적인 물음을 던지는 이들도 많다. 하긴 카톨릭을 이단으로 내몰거나, 마 리아를 숭배하는 '마리아교'로 치부하는 일부 개신교 신자들 을 생각하면 수긍이 된다. 또 다른 편견은 한국의 모든 개신교를 통틀어 보수적이고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배타적인 교회로 보는 점이다. 일부 개신교인들이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절대시해서 '예수 천 당, 불신 지옥'이란 자극적인 표어를 내걸고 선교를 하며, 공 양하는 스님에게 회심을 강요하고, 불교 사찰이나 성당의 성 모상을 훼손하는 몰지각한 형태를 보면 또한 일리가 있다. 사실 이러한 편견은 한국 개신교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 는 장로교가 유럽의 종교개혁 정신이 아닌 다소 변형된 복음 주의적 청교도 정신에 뿌리를 둔 미국의 개신교 전통에서 전 해진 점과 무관하지 않다. 미국 선교사들이 한국의 근대화에 공헌한 점과 한국 개신교의 놀라운 성장에 기여한 점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인간 이성을 불신하고 오직 예수를 믿 어야만 구원받는다는 미국의 배타적 복음주의가 보수적인 개 신교 교단 전반을 지배하고 있어 그리스도인의 일치에 적지 않은 장애가 되고 있다. 오늘 날 유럽 교회에서는 풍부한 서 구 신학의 이성적 전통을 토대로 가톨릭과 개신교 간의 교리 적 오해를 풀어가는 방향으로 대화가 진전되고 있다. 가톨릭 신자들이 개신교에 대해 갖고 있는 편견과 오해도 그들과 대화를 가로막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볼 만하다. 대다 수 가톨릭 신자들은 종교개혁 이후 갈라져 나간 개신교 신자 들을 '서자'로 취급하면서, 그들이 지닌 교회적 전통과 유산 을 버리고 '장자'인 가톨릭교회로 돌아와야만 일치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일치란 그런 것이 아니다. 가령 부부 - 가족 - 교우 간에 일치를 이루자는 말이 서로의 생활방식이 나 사고방식, 습관과 기호까지 똑같아야 한다는 의미가 아닌 것과 같다. 그리스도인 일치 또한 각자가 소속된 교회 간의 상호 통합이 나 한쪽이 다른 한쪽으로 개종하기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의 교리와 언어방식, 전례와 교회의 형태는 달라도 삼위 일체이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같은 그리스도 신 앙을 고백하는 형제임을 고백하는 것이 일치의 출발점이다. 가톨릭교회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개신교를 '갈라진 형제들'로 부른다. 그들이 비록 여러모로 신앙의 진리를 이해 하는 방식이나 내용이 다르다 하더라도, 그들 또한 우리와 같 이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에페 4,5)라고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개신 교는 결코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성령 께서 그 교회들과 공동체들을 구원의 수단으로 사용하시기를" (일치교령 3항) 거절하지 않으신다. 솔직히 개신교 신자들을 형제로 받아들이는 일이 쉽지 않 을 때가 많다. 그들이 마치 우리의 '하느님'과 다른 '하나님' 을 믿고, '가톨릭'과 다른 '기독교'라는 종교를 가진 것처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개신교 신자를 가톨 릭으로 개종시키려는 열성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실 같은 그리스도교 신자인 가톨릭과 개신교가 서로를 개종改宗시킨 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진정한 선교는 열심한 개신교 신자를 가톨릭 신자로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이 더 욱 열심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격려하면서도, 우리가 가톨 릭 신앙의 매력을 삶의 표양으로 보여줄 때 그들이 그리스도 교 신앙 안에서 더욱 한 형제라는 의식을 갖도록 만드는 것 이다. 선교에서 중요한 점은 예수 그리스도께 회심하도록 돕 는 것이지, 우리 교회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다. 개신교 신자들과 대화할 때는 서로가 품고 있는 교리적인 오해에서 시작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과 내가 받은 하느 님의 은총과 감사, 예수님의 십자가로 얻은 용서와 회심 이야 기를 나누는 일,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찾은 참된 행복, 하 느님을 만난 체험과 그로 인해 변화된 삶을 나누는 것에서 시 작해야 한다. 우리에게 성경을 펼쳐대며 달려드는 개신교인 들에게 먼저 신앙이 어떻게 그들의 삶을 변화시켰는지 체험 을 나눠달라고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개신교 신자들 중에는 우리를 부러워하고, 대화하고 싶어 하며 함께 그리스도인의 길을 걷기를 바라는 이들도 적지 않 다. 술 한 잔 기울이며 인생 이야기를 나누는 신자들을 부러 워하고, 아름다운 성당에서 거행되는 전례와 기도하는 모습 을 동경한다. 목사와 성공회 사제들 중에는 가족보다는 교회 를 먼저 생각하는 가톨릭 사제들을 부러워하는 이들도 있다. 형제가 되는 데는 정情을 보여주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헤아릴 수 있도록 슬기롭게 대화하는 지혜가 필요 하다. 매년 1월이면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축일(25일) 일주일 전 부터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위한 기도주간이 시작 된다.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주간에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선 사하신 참된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희망을 개신교 신자들과 함께 염원해 보자. 그래서 삶과 신앙을 나누는 개신교 형제가 한 명쯤 우리 곁에 있을 수 있다면 그것도 일치와 평화를 희 망하는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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