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화)
(녹) 연중 제7주간 화요일 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려면 모든 이의 꼴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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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성경을 쓰는데.. 잡념이 너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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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220.72.245.*]

2016-08-23 ㅣ No.1123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성경쓰기 입문을 축하드립니다. 미사가 훨씬 평화롭고 다이나믹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평화보다 사랑 기쁨 더 상위임도 보게 될 것입니다. 

 

누구나 빛 환한만큼 어둠의 그림자 깊게 드리울 수 있기에 성경쓰기 할때도 분석과 의심 시비거는 경우 또한 많을것입니다. 그래도 그것들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자세는 과연 어디에서 나올까요? 이에 우리는 장애인들이 활동 보조인들과 더불어 비 장애인들에게 알게 모르게 힌트 제공해줌을 만날 수 있겠습니다. 이때 비장애인들은 패자인 관객석에 머물수 있기에 장애인들에게 아연실색형 단순 자기 생각으로 이야길 하는 경우도 보게 됩니다.

 

노인은 "쯧쯧쯧, 어쩌다 그리 되었누? 부모님은 살아계시누?"라며 장애인을 두 번 죽이고 어린 아이들 달려와 "야~! 장애인이다!"라고 한다는데 어떤 특출난 매너좋은 친구도 한 순간 꺼져가는 생명의 불꽃으로 암과 사투하던 폐쇄주의 그 형제에게 "모쪼록 좋은데 가시길 바랍니다" 라는 말도 안되는 마지막 인사 한것을 기억하게 됩니다. 따라서 너와 나는 때때로 스스로 장애인임 인식할 때 진짜 장애인들처럼 비장애인들의 단순한 그 언어들에 의해 상처받았으나 하느님께 치유받는 강인하고 부드러운 그 의지를 보며 자신부터 (치료받아 나을수 있는) 환자가 아닌 공평한 사회인으로 보는 은사와 훈련 또한 만나게 될것입니다. 

 

이 순간 명동에서 잘생긴 남자 배우가 허그 하자 하면 한시간 만에 수십명이 몰립니다. 그러나 똑같은 배우가 장애인으로 변장하여 휠체어에 앉아 허그 하자 하면 과연 같은 너와 나 어찌 대하게 될까요? 준비 안 된 식당 종업원이나 옷가게 점원은 무관심이라는 적에게 속아 무조건 "나가세요!"라고 하거나 남자 직원 경우는 아예 장애인을 문 밖으로 밀어낼 수 있는것이 현실입니다. 이에 장애인들은 가슴에 멍이 들어도 더욱 강인해집니다. 물질주의 생명경시에 반하는 그 어떤 힘이 주어지기 때문일것입니다. 

 

임처럼 분석을 즐기는 필자 또한 2008년 리마의 성녀 로사 축일 등단 행운까지 얻은 도민고로서 로사 약정했던 영화 개봉 이래 '사랑과 영혼' 네 번째 이름 놓칠수 없어 오늘도 내일도 외사랑 찾아 그곳으로 떠납니다. 오늘은 지난 26년간 돌아갈 수 없었던 로사의 아파트 3단지 불꺼진 창 마주하던 벤치 고요한 가로등 인근 13단지 목동 아파트 길 가로질러 양천구 장애 체험관을 향하여 실습 임하게 됩니다. 어린시절 소풍보다 더 설레임으로 다가옴은 왜일까요? 그것은 등단후 매일이라는 성경 봉독 하루도 거르지 않겠다며 아예 토씨 하나 틀리지 않는 낭송 녹음화로 이어온 보상심리이기도 하겠으나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은 하느님 사랑과 자비 깃발의 등반 여정이 도민고를 위로해주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구약 시대의 나를 닮은 사람들은 인터넷 곳곳에서 강퇴 남용 현상을 답습하기도 할 것입니다. 강퇴는 낙태 씨앗인데...,라며 때때로 그것을 설파하지만 돌아오는건 "저 녀석은 종교 빙자로 여자 꼬시는 놈이야"라는 비난이 돌기도 합니다. 이에 과연 나는 누구와 싸우고 있는가?라는 딜레마에 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모든것 시간이 말해주고 그 시간의 주인이 과연 누군지 과거와 내일로 갈라서는 오늘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영육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 속에서 이때 인식해야 할 일들은 무엇이 있을까요? "하느님, 저로 하여금 장애인들을 (치료하면 낫는) 환자로 보기보다는 당신과 함께 공정한 사회인으로 보도록 이끌어 주세요" 이러한 도전과 응전 진리 담긴 말씀이 하느님 두 가지 약속 구약과 신약으로 나타남을 잊지 마십시오.

 

이로써 스스로라는 인식개선 열쇠를 나누고자 합니다. 예를 들어 국내 5천만 인구대비 20분의 1에 해당하는 250만 장애인들에 대한 비장애인들의 님비 현상을 보건데 불행히도 형제님과 유사히 필자도 머리 가슴 분리 현상의 님비 유혹을 만나건데 그 인식개선 문제 심각함도 내안의 바리사이와 율법주의 사례들과 비례하기에 "하느님을 흠숭하며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라"는 그분의 말씀 기억으로 역전을 꿈꾸게 될 것입니다. 바리사이와 율법주의를 하느님 사랑으로 귀순 시키는 방법들로 무엇들이 있을까요? 그것을 억제하거나 맹목적 배타주의로 임하기보다는 가급적 사랑하십시오, 사랑이 없으면 스스로 엄정의 늪에 빠져 강퇴 남용주의로 정채하거나 늪에 빠져 그것을 공정이라 할 수 있는게 나약한 우리 인간입니다. 

 

그러함으로 알게 모르게 변모되는 것이 또한 습관일것입니다. 그것이 어느 순간 고통인지 기쁨인지 다만 하나 되기도 할것입니다. 습관은 제2의 천성이기에 언젠가 우리는 내 인생 하느님 바라시는 행복의 꽃 피워바침으로 습관의 자리에도 비로소 주님을 모실날 올 것입니다. 

 

성경은 글자 그대로 하느님 말씀임을 믿지만 그것을 이해하기 어려울때 또한 많을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경우 스스로를 믿음이 약한자로 속단, 규정하진 마세요. 허무는 영광이라는 박자가, 순간은 영원이라는 음정이, 죽음은 생명이라는 발성이 따라오게 될 것입니다. 방법은 내가 부르는 것에서 그분의 부르심으로 바뀌길 고대하는 지금 임의 마음인것입니다. 그조차 우리는 하느님 전능하시다며 그 모든것 내어드린다 하지만 때때로 자기안에 맴돌다 인생 허비하지 않았느냐?라는 허무주의로 빠지기도 할것입니다. 

 

그럴땐 허허허(빌 허) 웃으시며 성모님 호호호(好) 초대하는 한사람 장애인을 바라보세요. 긍정적 밀당(밀고 당기는)의 세계로 진입하게 될 것입니다. 어떤 발레리나 출신의 아름다운, 13년전부터 휠체어로 걷기 시작했다는 장애인 강사가 장애인을 보면 어떤 생각 드느냐길레 밀당하고 싶다니 어찌 나랑 밀당하느냐며 놀라길레 그것이 아니고 장애인들 위한 평계단에 휠체어 장애인 홀로 보낼 수 없기 때문이라 하자 시적인 표현이라 하더군요. 그것은 음정의 일환일 뿐이었습니다. 아무튼 그곳 자매들은 아름다운 천사들 표정으로 비칠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 경우 어느 영화 메시지처럼 단 한사람만 죽이는 하하하(아래 하 또는 가장 밑바닥으로부터 시작하신 예수님처럼 겸손과 섬김 회복 날개 준비하는 아래로부터의 영성)작전으로 들어가도 무방하겠습니다. "살아서 도움 안되니 죽기를 원한다"라는 주문모(두루 주, 글월문, 찾을모) 신부님 유언을 복기하여도 좋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상처받고 찢기워진 깊은 너와 나의 알몸이신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못박힌 다섯 상처를 우리가 그토록 바래왔던 공유로서 기도, 공부, 봉사, 성사, 공동체 생활로 회두할 수 있도록 이끄심에 하느님께 감사와 찬미 드리는것입니다. 회두는 가슴과의 일곱통로 여정으로 회심 위해 머리부터 돌아보는 것 재기를 알려주시고 있습니다. 분석과 의심, 비판 등을 내가 아닌 깊은 주님께 조금씩 더 의탁할 수 있도록 기도해보세요. 꼭 이루어 주실것입니다.

 

海棠(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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