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
(홍) 성령 강림 대축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보낸다. 성령을 받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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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고난회 김준수 신부님의 부활 제6주간 월요일: 요한 15, 26 - 16,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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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승 [bona24] 쪽지 캡슐

2024-05-05 ㅣ No.172158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 말을 한 이유는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15,27;16,1)  


부활 시기에 사도행전을 들으면서, 교회는 어쩌면 성령의 역사하심과 인간 사역使役의 결실임을 더 분명하게 확신하게 됩니다. 부활과 성령강림을 체험한 사도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온 세상에 파견되어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선교활동에서 사도들은 스승이시며 주님이신 예수님처럼 ‘환영과 환대’ 혹 ‘배척과 거부’를 겪게 됩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일과 하느님의 사람은 “사람들이 나를 박해했으니 너희도 박해할 것이고, 내 말을 지켰으면 너희 말도 지킬 것이다.” (요15,20)하는 말씀을 실제로 체험했습니다. 바오로와 티모테오는 필리피에서 리디아와 그 가족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사16,15)라는 환영과 환대를 받고 그곳에서 활발하게 복음을 선포했습니다. 이토록 성령의 역사하심에 힘입은 사도들은 예수님의 증인으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선교활동에서 이런 환대만 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때론 거부와 배척 그리고 박해까지도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오늘 복음에서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진리의 영이 오시면, 그분께서 나를 증언할 것이며, 너희도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으므로 나를 증언할 것이다.” (15,26)하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증언할 사명은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가 ‘주님이 누구시며, 주님께서 이루신 일이 무엇인지 세상에 증언하는’ 주님의 참된 사도가 되기 이전에 먼저 참된 제자가 되어야 합니다. 참된 제자가 될 때 참된 사도가 되는 것입니다. 제자는 배우는 사람이라면 사도는 전하는 사람입니다. 첫 제자들과 우리와 동질성은 바로 진리에 대한 갈망과 추구일 것입니다. 복음은 참된 그 무엇을 찾고 추구하는 인간에게 그 해답을 줍니다.

 제자들과 예수님의 첫 만남의 이야기에서 (요한 1, 39~39) 이것을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제자들을 향해서 예수께서는 그들 마음의 깊이를 헤아리시고 “와서 보라!”고 초대하였던 것입니다. 이 말씀은 세대를 거쳐 참된 그 무엇을 추구하는 인간에 대한 실존적 응답이며 초대입니다. 진리와 생명에 도달하리라는 확신 속에 제자들은 기꺼이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과 함께’ 처음부터 생활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과정이 바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 “처음부터 나와 함께 있었다.” (15,27) 라는 뜻이고, 이 함께 머무는 시간을 통해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함께 하면서 듣고 본 것이 참된 증언 곧 복음 선포의 핵심 내용입니다. 복음 선포는 직접 보고 듣고 만짐을 통해 체험한 진리를 세상에 증언하는 것입니다. 달리 표현하면 예수님으로부터 듣고 본 것을 성령의 도움으로 다시 기억하고 숙고한 바를 자신들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성령과 함께 현실화시키는 행위입니다. 이렇게 사도가 되기 위해선 예수님과 함께 살면서 자신들이 직접 보고 듣고 만지는 제자 기간이 필요하고 요구됩니다. 자신이 직접 보고 듣고 체험한 것보다 더 강력한 선포가 어디 있습니까? 체험하지 않는 자의 선포는 장님이 장님을 이끄는 것과 하등 다를 바가 없습니다. 체험이 곧 힘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과 함께 자신의 증언자가 될 것을 격려하고 당부하시면서 동시에 듣기 민망하고 서글픈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16,1) 여기서 우리가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라 언급하신 말씀을 알아듣기 위해선 이미 수요일 복음을 통해 함께 묵상했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상기해야 합니다. 가지가 나무로부터 떨어져 나가면 열매를 맺지 못하고 밖에 던져져 말라 버리며 마침내 불 속에 던져 태워버리게 됩니다. 떨어져 나간 가지(=믿음을 잃은 사람들)와 같은 운명을 당하지 않길 바라는 노파심에서 하신 당부의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주님 자신도 마음이 아프셨으리라 봅니다. 사실 주님께서 그토록 간절히 제자들에게 당신 사랑 안에 머물며 열매 맺는 삶을 살기 원했건만 당신 생전에 이미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유다 이스카리옷은 공개적으로 떨어져 나가 불 속에 던져지듯 자살했잖아요. 그리고 예수님 사후에 또 많은 제자가 믿음을 잃었고요. 그러기에 우리 가운데 어떤 누구도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장담할 수 없습니다. 시련과 박해를 통해서만이 진정한 제자가 누구이며 사도인가를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결국 오늘의 말씀은 다원화되어 가는 세상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향한 주님의 노파심이며 격려라고 봅니다. 이렇게 나무에서 떨어진 가지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진리의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과 우리는 공동 증언자입니다, 이는 세상에 이미 당신으로 말미암아 시작된 구원을 선포하고 완수하기 위해서 주님은 우리의 도움과 협조가 필요합니다. 하느님 아버지를 알지 못하는 세상을 향해 아버지의 구원계획을 선포하는 데 있어서 성령 없이는 우리는 참된 증언자가 될 수 없지만, 성령은 또한 우리를 통하지 않고서는 참된 복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선포할 수 없습니다. 성령과 우리는 공동 증언자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사람들로부터 박해당할 때, 주님에게서 ‘떨어져 나가지 않게 하려는 것이고” (16,1)하고 말씀하시면서 이내 그렇게 박해당할 때, “너희에게 내가 이렇게 말한 것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이다.”(16,4 )하고 말씀하십니다. 곧 이런 일을 겪을 때 ‘길이요 진리이며 생명이신’ 주님에게서 떨어지지 않도록 주님 안에 항구하게 머물고, 보호자인 성령께 의탁하라는 격려이며 당부입니다. 또한 그러한 박해의 때 그들이 너희에게 그렇게 하는 까닭이란, “그들은 아버지와 나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짓을 할 것이며” (16,3), “너희에 앞서 예언자들도 그렇게 박해받았다.” (마5,12) 는 사실을 기억하여 두려워하지 말고 복음의 증언자로 충실하라, 는 당부입니다. “기뻐하고 즐거워 하여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마태5,12)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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