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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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 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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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4-03-23 ㅣ No.170838

사제 생활을 하면서 저의 마음을 아프게 하신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본당의 물품과 자기의 물품을 구분하지 못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성당에 있어야 할 사다리가 없어서 찾아보니 형제님이 자기 집 일에 쓰려고 잠시 가져갔다고 합니다. 전화해서 가져다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대학교도 나오고, 말도 잘 하는데 셈이 좀 흐린 것이 늘 문제였습니다. 먹는 자리, 생색이 나는 자리에는 어김없이 나타나는데 힘든 일, 봉사하는 자리에는 늘 이유가 있어서 빠지는 분이 있었습니다. 웃는 얼굴에 침을 뱉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늘 밝아서 좋긴 하지만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본당에서는 열심히 봉사하는데 아파트 단지에서는 비난 받는 분도 있었습니다. 성당에서 신자라면 성당 밖에서도 신자의 모범을 보여야 하는데 겉과 속이 다른 것 같아서 아쉬웠습니다. 자기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큰 목소리로 비난하는 분이 있었습니다. 먼저 듣고 자신의 이야기를 하면 좋은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분이 지나간 자리는 늘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것처럼 뒷수습이 힘들었습니다. 솔선수범하고, 추진력이 있어서 좋았는데 혼자서 모든 것을 하려는 모습이 안타까웠습니다. 지나친 음주 때문에 공든 탑을 무너트리는 분이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말도 없고 얌전하고, 봉사도 잘 하는데 그만 술이 과하면 사람이 변하였습니다. 술이 사람을 위해서 있는 것인데 사람이 술을 위해서 있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제 생활을 하면서 제게 큰 위로와 힘이 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왼손이 하는 일을 오른손도 모르게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이었습니다. 저는 사제관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한 형제님이 자전거를 타고 성당으로 왔습니다. 성당의 문을 다 닫고, 하수구에 있던 오물을 다 꺼냈습니다. 그리고 성모상 앞에서 고개 숙여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33년이 지났는데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납니다. 방앗간을 하면서 설날이나 추석이면 어르신들을 위해서 떡을 드리는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위해서 장학금을 주는 형제님이었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면장님이 그 형제님을 위해서 표창장을 준다고 제게 연락해서 알았습니다. 말보다는 늘 먼저 봉사하던 형제님의 따뜻한 마음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큰 바위 얼굴처럼, 동네에 있던 커다란 느티나무처럼 언제나 본당을 지켜 주시던 어르신이 있습니다. 성탄에는 손수 새끼를 꼬아서 구유의 지붕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제가 어디를 다녀 올 때면 잘 다녀왔는지 안부를 물었습니다. 어르신의 집에는 늘 기도의 향내가 났습니다. 집 안의 중심에는 성경책이 있었습니다. 하도 읽어서 낡고 낡아진 성경책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동네에 어려운 일이 있으면 늘 앞장서서 힘을 보태는 형제님이 있었습니다. 아픈 분이 있으면 찾아가서 기도해 주셨습니다. 예비자 인도를 많이 하셔서 대자도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셨던 사명을 실천하는 분이셨습니다. 병자를 고쳐주고, 마귀를 쫓아내고,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충실하였습니다. 제가 사제 생활을 33년 동안 할 수 있는 것은 모두 그런 분들의 기도와 봉사 그리고 헌신과 열정 때문입니다.

 

예수님 수난의 길에도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유다가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배반은 절친했던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들 봅니다. 많은 것을 나누었던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들 봅니다. 본당에서도 보면 그렇습니다. 단체의 간부들끼리도 없는 자리에서는 상대방의 흉을 보기도 합니다. 이런 배반은 사제/ 수녀/ 평신도 모두에게서 나타나곤 합니다. 저는 교구에 있었기 때문에 때로 본당에서 투서를 보내는 사람도 보았습니다. 본당 신부님의 잘못을 지적하고, 본당 신부님을 비난하는 그 사람은 사실 본당 신부님과 늘 가까운 자리에 함께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저 역시도 예수님을 팔아 넘겼던 그 유다와 비교해서 나는 아니죠!”라고 말할 자신이 없습니다. 베드로가 있습니다. 우리는 베드로와 같은 사람을 종종 봅니다. 늘 모범생이었고, 남들에게 칭찬을 많이 받았고, 기도도 공부도 열심히 하는 사람입니다. 베드로는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3번이나 모른다고 하였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이익과 자신의 입장을 먼저 생각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주님께서는 늘 나와 함께 계셨는데, 나는 주님이 힘들어하실 때, 주님께서 함께 기도하자고 하실 때, 어쩌면 늘 주님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는지 돌아봅니다.

 

예수님 수난의 길에 예수님께 위로를 드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십자가의 길 5처에는 시몬이 예수를 도와 십자가 짐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성서를 읽어보면 길을 지나가는 키레네 사람 시몬에게 강제로 십자가를 지우게 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면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 십자가를 지면서 얼마나 힘들었는지 성서에는 나와 있지 않습니다. 다만 나 자신을 돌아봅니다.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하게 될 경우가 있습니다. 본당 신부님이 갑자기 아프시거나, 여행을 가게 될 경우가 있죠. 그럴 때 보좌신부는 본당 신부님이 하셔야 할 미사를 하게 되고, 여러 단체의 모임에 참석하게 됩니다. 그럴 때 정말 기쁜 마음으로 하는지, 아니면 의무감으로 하는지, 저 자신을 돌아보면 기쁜 마음으로 하기보다는 의무감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십자가의 길 제 6처는 성녀 베로니카, 수건으로 예수의 얼굴 씻어 드림을 묵상합니다. 성서를 읽어보면 베로니카가 예수님의 얼굴을 수건으로 닦아주는 내용은 없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성녀 베로니까는 예수님께서 골고타 언덕으로 십자가를 기고 가실 때, 예수님의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피땀을 닦아 준 예루살렘의 어느 부인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옷으로 성면을 씻었는데, 나중에 살펴보니 거기에 주님의 모습이 박혀있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그 여인은 베로니까로 알려졌는데, "베로" 는 라틴어로 "베라"(참 진실한) 이고, "이까""아이콘" 즉 성화상을 뜻하므로, 그녀의 이름은 그 자체가 그리스도의 "참 모습" 이란 뜻이 됩니다. 이 사건이후 그녀의 운명은 여러 가지로 서로 다른 전설로 전해옵니다.

 

주님 수난 성지주일입니다. 나는 나의 말과 행동을 통해서 예수님께 위로를 드리고 있는지,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지 돌아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들도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면 좋겠습니다. 베로니카 성녀처럼 주님의 얼굴에 흐르는 땀과 피를 닦아 드리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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