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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0-07-20 ㅣ No.139621

산보 길에 들리는 공원이 있습니다. 공원에는 작은 호수가 있습니다. 호수에는 거북이도 살고, 지금은 다른 곳으로 갔지만 거위와 갈매기도 살고, 물고기도 있습니다. 며칠 전입니다. 호수에 새 식구가 이사 왔습니다. 오리와 새끼들입니다. 15마리의 새끼들이 엄마 오리를 따라다니면서 호수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삭막했던 공원이었습니다. 그네에도 철책을 쳤었고, 놀이기구에도 철책을 쳤었습니다. 오리 가족이 가져온 선물인지 그네도 탈 수 있게 되었고, 놀이기구에서 아이들도 놀게 되었습니다. 오리 가족이 이사를 오니 공원이 밝아졌습니다. 사람들은 오리 가족을 사진에 담아갔습니다. 저도 몇 장 찍었습니다. 새끼들이 하늘을 날 수 있을 때까지 오리 가족은 호수에서 지낼 것 같습니다. 오리 가족에게 호수는 새끼들이 안전하게 자랄 수 있는 삶의 보금자리가 되었습니다. 매일 산보 길에서 오리 가족을 보는 것도 제게는 즐거움입니다.

 

세상일은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많습니다. 코로나19로 이동의 제약이 있으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습니다. 예전에 읽지 못했던 책을 읽고 있습니다. 규칙적으로 걷고, 외식의 자리도 적으니 건강에도 도움이 됩니다. 서양의 철학자 세네카는 화려한 언변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술자리도 자주하게 되었고, 결국 건강을 잃어버릴 정도가 되었습니다. 세네카는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어서 섬으로 8년간 유배를 가게 되었습니다. 답답하고, 억울한 시간일 수 있었지만, 사람들이 없는 곳에서 지내면서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명상과 독서를 통해서 화려한 언변을 자랑하는 정치가에서 사색과 철학으로 시대를 선도하는 철학자가 되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도 18년 동안 유배지에서 지냈습니다. 자신을 탄핵한 사람을 원망할 수 있고, 유배를 보낸 왕이 서운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고, 많은 저술로 존경받는 학자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로니아로 유배를 가야 했습니다.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성전도 없었습니다. 정든 고향을 떠나니 외로웠습니다. 율법과 계명을 지킬 수 없으니 괴로웠습니다. 무능한 왕을 탓할 수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신 하느님을 원망할 수 있었습니다. 유배지로 가는 길은 고난의 길이요, 죽음의 길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꾼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고, 이방의 신을 섬겼던 지난날을 반성하였습니다. 유배지로 가는 길은 정화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율법과 계명을 지킬 수 없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길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의 손길은, 하느님의 말씀은 예루살렘 성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뀌는 것을 체험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도 새로운 기준을 말씀하십니다. 어머니와 형제의 기준입니다. 혈연으로 맺어진 가족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또 다른 가족을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은 모두 가족이라고 하십니다.

 

나뭇잎은 부는 바람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부는 바람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더욱 지혜로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모르고 태어났습니다. 신앙을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으로부터 왔으며, 하느님께로 갈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나뭇잎이 바람에 자신을 맡기듯이 하느님의 자비와 하느님의 사랑에 모든 것을 맡기면 한결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 모든 것들도 결국은 다 지나가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는 분열과 대립이 있습니다. 소통과 대화가 필요하다고 합니다. 타협하고 존중해야 한다고 합니다. ‘지역, 이념, 세대, 빈부의 갈등이 커지고 있습니다.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른 이들을 인정하지 않고,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습니다. 상대방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고, 옳다 하여도 나의 편이 아니라면 무조건 반대하는 때도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참된 소통과 대화를 위한 원칙과 상식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학연, 지연, 혈연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세대, 이념, 빈부의 잣대로 판단해서도 안 된다고 하십니다. 오직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원칙과 상식이라고 말을 하십니다. 지금은 죽고 못 살 것 같지만 그것도 다 지나가기 마련입니다. 하느님의 뜻이 드러난다면 우리는 모두 한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당신 땅을 어여삐 여기시어, 야곱의 귀양을 풀어 주셨나이다. 당신 백성의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잘못을 덮어 주셨나이다. 당신의 격분을 말끔히 씻으시고, 분노의 열기를 거두셨나이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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