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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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손님이 바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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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아 [estherlove] 쪽지 캡슐

2019-07-20 ㅣ No.131242

 

2019년 다해 연중 제16주일

 

 

<손님이 바라는 것>

 

 

복음: 루카 10,38-42


 


성모자


부티노네(Butinone) 작, (1490), 밀라노 브레라 미술관 


 

      

 

      러시아 이완 대제 하면 아주 선정을 베푼 유명한 임금입니다. 이분은 종종 백성들의 생활을 알기 원해서 은밀하게 민정을 살피곤 했습니다. 한번은 비바람이 요란하게 내리치는 어느 날 밤에 방랑객으로 변장을 하고, 이 집 저 집 찾아 다녔습니다. 가는 집마다 거절을 당했습니다.


      이 황제는 아주 참담한 심정이 되어서 도심지에서 벗어난 변두리 집 대문을 두드렸습니다. 어느 가난한 농부의 집 대문이 열리더니, 반갑게 그를 맞아 들였습니다. 마침 아기가 순산을 했고, 조리 중이었습니다. 이 가난한 농부는 짚방석 한 개와 한 덩어리의 빵, 그리고 물 한 그릇 외에는 베풀 수가 없었습니다. 황제는 흐뭇한 마음에 짚방석에 앉아 평안한 잠을 잤습니다.  다음날 아침에 그는 농부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 가난한 농부에게 어떤 축복이 뒤따랐을 지는 더 이상 말을 안 해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손님을 잘 대접하여 축복을 받은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아브라함입니다. 오늘 제1독서에서 아브라함은 세 명의 손님을 극진히 대접합니다. 그들은 그냥 지나쳐가려 했는데 아브라함이 뛰어가 붙잡으며 제발 쉬어가시라고 합니다. 그리고 씻을 물과 음식을 대접합니다. 그러자 그 세 손님은 내년 이맘때에 아브라함의 아내가 임신하여 아기를 낳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가까운 나이었지만 그때까지 자녀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손님을 극진히 대접하면 복이 올 수도 있다고 믿어서 그런 행동을 하였던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냥 손님들을 대접하는 것이 기쁜 일이니 그렇게 대접하다보니 축복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만약 가난한 농부의 집에 찾아온 사람이 임금인 것을 알았다면 농부는 임금을 편안하게 대할 수 있었을까요? 그러면 임금도 농부에게 부담을 주는 것에 마음이 불편했을 것입니다.


      일부러 축복을 얻기 위해 그런 행위를 했다면 그 행위는 참다운 선행이 될 수 없습니다. 월급을 기대하며 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게 한다면 그렇게 하는 행위가 힘들어 얼굴을 찌푸리게 될 것이고 손님은 그 감정을 금방 알아챌 것입니다. 자신이 아니라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금방 알아채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오히려 무언가를 기대하고 대접하면 그 사람에게서 그 기대하는 것을 얻어내기가 더 어렵습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마르타는 예수님을 손님으로 맞아드리고도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대접하기 위해 자신은 분주한데 동생은 자신을 도와줄 생각은 하지 않고 예수님과만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마르타는 예수님을 맞아들이기 위해 무언가 해서 예수님께서 그것을 칭찬해 주시면 행복할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마리아는 예수님 자신이 기쁨이요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마음 안에 맞아들인 것입니다.


      아브라함도 세 손님을 그렇게 맞아들였을 것입니다. 손님을 초대해놓고 부부싸움을 한다면 그 손님이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어도 행복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그 손님이 가져올 축복을 받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내가 기도할 때 ‘예수님을 원하는지’, ‘예수님께서 주실 수 있는 것’을 원하는지 항상 잘 분별해야합니다. 함께 머무는 것이 즐거움이면 잘 하는 기도이고 많은 축복을 받겠지만, 무언가 얻어내기 위해 하는 기도라면 기도가 힘이 들 것이고 그러면 축복도 덜 받게 됩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존재 자체를 즐길 줄 아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칭찬을 받은 것입니다.


      이씨조선 선조시대의 명의 허준이 아직 명의가 되기 전 초보적인 의학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집안이 가난하여 서울 구리개에서 약국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남루하게 입은 노인 한분이 찾아와 약국 한 모퉁이에 앉아있었습니다. 사람을 그곳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아직 안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비좁은 약국인데도 허준은 조금도 싫은 내색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노인은 하루가 지나도 이틀이 지나도 사흘이 지나도 갈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허준은 그 노인을 정성껏 대접을 했습니다.


      그 때 산모가 쓰러져 죽게 되었다고 급한 자가 찾아왔습니다. 허준은 도저히 약방문을 만들 수 없었습니다. 이 광경을 보고 있던 노인이 곽향정기산을 지어주라고 했습니다. 그대로 했더니 그 환자가 깨끗이 나았습니다.


      그 노인은 당대의 명의였는데 자기의 의술을 전수시킬 사람을 찾던 중 허준과 같은 마음씨 착한 사람을 만난 것입니다. 허준이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는 손님을 맞아들이면서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을 수 있었던 마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만나는 오늘 한 명의 사람으로 다가옵니다. 내가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이 내 집에 초대하는 사람과 같습니다. 무언가를 바라서가 아니라 그냥 사람을 사랑해야 한다는 소명으로 오늘 만나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대한다면 그 사람은 많은 축복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날 때는 기쁘기 때문입니다. 오늘 만나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행복할 수 있다면 그 사람은 많은 축복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축복은 ‘이미’ 감사하고 기쁜 사람에게 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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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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