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22일 (일)
(자) 사순 제1주일 예수님께서는 사십 일을 단식하시고 유혹을 받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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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묵상 : 재의 수요일을 시작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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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6-02-18 ㅣ No.188062

 

오늘은 재의 수요일입니다. 재의 수요일이 어떤 날인지는 다 잘 아시기 때문에 그 의미는 굳이 오늘 묵상글에서는 생략하겠습니다. 오늘부터 본격적인 사순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사순 하면 '회개와 보속'이 단골 메뉴로 등장하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전례상 특정 달을 기준으로 해서 특별한 내용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위령성월 같은 경우는 죽은 이들을 위해 기억하고 기도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건 교회의 좋은 전통입니다만 저는 이런 전통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게 아니라 조금 달리 생각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면 마치 회개는 특정 시기만 하는 것처럼 그렇게 인식이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원래는 그렇치 않은데 은연중에 그런 생각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약 40일 전부터 다시 글을 올리면서 제가 작년에 친구 어머니 동생분인 이모를 도와드린 목욕탕 청소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최근에는 약간 뜸했습니다. 어쩌면 지저분한 이야기일 수도 있고 또 비슷비슷한 이야기이면 지루할 수도 있고 해서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시 그 시간에 한번 묵상한 게 있습니다. 만약에 만약에 하느님께서 혹시라도 이 일을 경험하도록 허락 아닌 허락을 하셔서 어떤 기회를 주셨다고 한다면 진짜 그렇다고 한다면 왜 그런 걸 허락하셨을까 하는 묵상을 해봤습니다. 

 

저는 신학을 공부하지 않았지만 교회에서 출판한 깊은 영성가들의 책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배운 영성 지식이나 경험을 통해 유추해서 제 나름대로 알게 된 사실을 기반으로 말씀드린다면 인간의 속세에서 일어나는 일은 단순히 인간과 인간이 살아가는 사회의 연결고리에서 발생한 일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근데 좀 더 외연을 확장해보면 꼭 그렇치만은 않습니다. 사실 우리 천주교의 이론을 어떤 경우는 불교의 가르침으로 어떤 비유를 통해 설명하면 아주 명쾌한 설명이 될 때가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가르멜 수도원에 어떤 수사 신부님이 계신데 그 신부님과 언젠가부터는 항상 영적인 대화를 하게 되면 신부님께서 불교의 이론을 언급하십니다. 어느 신부님이라고 밝히기엔 그건 좀 예의가 아닌 것 같고 해서 생략하겠습니다. 처음엔 조금 의색했지만 사실 그 정도는 저 역시도 워낙 어려서부터 집안 자체가 불교이고 또 스님들의 법문뿐만 아니라 불교에서 전문적으로 발간하는 책도 접했기 때문에 약간의 상식이 있고 또 어떤 분야는 아는 스님으로부터 귀동냥해서 들은 전문적인 내용도 알기 때문에 충분히 신부님과도 소통이 가능했습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오해의 소지를 없애기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의 이론과 신학이 아주 훌륭하다고 해도 결함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떤 사각지역 같은 공백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공백을 어떤 경우는 불교의 가르침으로 메울 경우 상당히 잘 이해가 될 경우도 있다는 사실을 신부님과의 이 일화를 통해 말씀드리면 제 말씀에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다는 걸 전제할 수 있기 때문에 언급해드리는 것입니다. 그럼 다시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조금 전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우리의 눈에는 인간과 인간의 어떤 관계에서 비롯돼 일어나는 걸로 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의식하지는 못하지만 우리의 의식 너머 또 다른 힘이 작용해 일어나는 경우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게 바로 하느님의 힘이라는 게 개입된 것으로 표현하고 싶습니다. 사실 이걸 식별하는 게 아주 중요합니다. 가톨릭에서는 이걸 식별이라는 용어로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이 식별이 잘 안 됐을 경우에는 자칫 잘못 해석해서 일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고 나갈 수 있습니다. 저는 작년에 있었던 여탕 청소 경험이 제 신앙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경험이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이런 청소를 했을 경우에 저처럼 이런 게 좋은 경험이 될 수 있다고는 말할 수 없을 겁니다. 그냥 청소면 청소지 아무런 것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목욕탕에 때가 있으면 목욕탕이니 때가 있는 게 정상이지 하는 식으로 생각하고 바라보면 전혀 느끼는 게 없을 것입니다. 색다른 눈으로, 매의 눈으로 뭔가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같은 사람의 때라도 그 때를 보고 느끼는 감성이 다를 것입니다. 전에도 말씀드렸지만 예전에는 남자도 때를 잘 미는 목욕 문화였는데 언제부터인가는 사우나를 가보면 때를 미는 문화가 적은 게 사실입니다. 근데 여자들 같은 경우에는 전혀 그렇치 않은 것 같습니다. 목욕 바구니에 거의 대부분 이태리 타월이 있고 또 배수구 청소를 하면 딱 알 수 있습니다. 남탕 배수구는 거의 없습니다. 그렇다고 여자가 지저분한 건 아닙니다. 다만 남자는 때를 잘 밀지 않았기 때문에 나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단순히 목욕 습관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특히나 여탕 청소 같은 경우에 남자가 하는 경우도 있긴 한데 대개 보면 여자분이 많이 합니다. 이번 같은 경우에 어떻게 저는 그런 경험을 하게 돼 저한테는 개인적으로 아주 좋은 경험이었던 것입니다. 물론 한 번의 경험으로만 말입니다. 아무리 좋은 경험이라도 그 결과만 알았으면 됐지 다시는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저는 일한 대가를 하나도 받지 않았어도, 개인적인 시간을 들였어도 어찌 보면 낭비를 한 것 같지만 전혀 낭비가 아닌 것이었습니다. 어쩌면 돈을 주고도 배울 수 없는 그런 걸 느끼고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처음에도 말씀드렸습니다. 이 일을 통해 예수님과 하느님을 많이 생각햐게 됐다고 말입니다. 어느 시점에서 그 이야기도 해드릴 것입니다. 지금까지 약간 맛보기만 전해드렸습니다. 제가 차차 공개를 하겠지만 이번에 목욕탕 청소를 하면서 가장 큰 걸 배운 게 있다면, 묵상한 게 있다면, 가장 큰 수확이 있다면 바로 죄에 대해 많이 묵상을 했다는 것이고 또 교회는 저희를 보고 죄를 짓지 말라고만 했지 죄를 짓지 않는 방법은 잘 가르쳐주지를 못했습니다. 저는 탁월한 방법이라고는 말할 수는 없겠지만 확실히 알기만 알면 죄를 지을 기회를 줄일 수 있다는 건 확실하다고 단언할 수 있을 정도로 확신을 하는 게 있습니다. 그건 바로 죄라는 건 단순히 죄를 지으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는다는지 하는 그런 수준으로는 되지 않습니다. 어림도 없습니다. 

 

저도 이번 목욕탕 경험을 하기 전에는 이 방법이 가장 죄를 짓지 않은 방법이라고 그동안 신앙생활하면서 느끼고 알았던 것인데 이보다도 더 획기적인 방법이 있다는 걸 탕 청소를 하면서 어느 날 알게 된 것입니다. 아주 단순한 원리입니다. 죄라는 게 얼마나 추악하고 더러운 것인지 그걸 인지하고 인식하면 되는 것입니다. 이게 가능하다면 죄를 가까이 하고 싶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 이 자체를 인식하지를 못하기 때문에 죄에 빠지는 유혹에 잘 넘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신앙에 잘 적용한다면 자신의 신앙생활을 한층 더 비약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렇다고 신앙생활을 잘 한다고 할 때 이때의 신앙생활은 단순히 죄를 멀리한다고 해서만 잘 한다고는 말할 수는 없지만 죄를 짓지 않는 신앙생활을 하는 데 있어서는 분명한 사실이 될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 여탕 청소를 하면서 경험한 게 제가 하느님을 믿고 따라가는 길에서 아주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정리를 하겠습니다.

 

재의 수요일을 시작하면서 우리는 사순시기를 맞이하는 것입니다. 회개와 보속 정화의 시간을 가지고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시간입니다. 회개와 보속 정화를 하려면 죄가 무엇인지를 잘 알아야 그게 가능할 것입니다. 우리는 죄를 수도 없이 반복을 하며 짓습니다. 인간은 나약하다고 하는 변명 아닌 변명을 하면서 말입니다. 그렇다고 평생을 그렇게 하며 보낼 수는 없습니다. 단칼에 다 정리를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는 확실히 정화를 할 수 있습니다. 정화라는 건 수정처럼 완전무결한 상태로 죄가 없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라 혼탁했던 게 맑아질 수 있는 상태로 변화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런 정화가 반복되고 반복되면 언젠가는 완전히 정화가 되는 순간이 올 것입니다. 바로 그 순간이 거룩한 변모의 순간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순을 시작하면서 멀리는 부활이라는 최종 목적지를 잘 보며 가야 할 것입니다. 사순시기를 잘 보내려고 하는 최종 목적은 죄로 물든 낡은 육신의 몸을 깨고 우리가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최초의 생명과 영혼으로 다시 거듭나기 위한 여정을 통해 계속 부활을 연습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진짜 시험을 앞두고 모의고사를 계속 보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제가 누구입니까? 사교육 영어선생입니다. 확실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이지만 영어는 확실히 모의고사를 많이 본 학생과 보지 않은 학생과의 차이는 단순히 성적만의 차이가 아니고 다른 결과를 낳습니다. 바로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있습니다. 특히 영어 같은 경우는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영어는 확실히 다른 게 있습니다. 단순히 점수만 체크하면 모의고사를 치르는 의미가 별로 없습니다. 왜 틀렸는지 그 원인을 정확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그 원인을 정확하게 알면 다음엔 그 실수를 줄일 수 있습니다. 신앙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죄에 빠져 죄를 지었을 때 단순히 죄를 고해하는 수순만 밟으면 절대 되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찰이라는 과정이 선행됩니다. 이 선행과정이 바로 학생들이 모의고사를 본 후에 틀린 문항을 꼼꼼히 점검하고 왜 오답을 선택했는지 철저히 분석하는 것처럼 그렇게 했을 때 다음에 그 죄를 들 짓게 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매년 사순을 보냅니다. 그냥 단순히 전례주기에 따라 틀에 박힌 대로만 하면 늘푼수없는 신앙생활이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고 사순시기만 되면 침울하고 침통해하며 우울한 모습으로 지내는 걸 마냥 좋은 모습처럼 생각하는 게 사순을 잘 보내는 걸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은데 그것도 다시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본질은 맞지만 그 본질의 핵심을 잘 알고 하면 모를까 설령 잘 알고 한다고 해도 그게 지나치면 우리의 신앙생활이 위축될 수도 있습니다. 

 

아주 쉽게 이 상황을 세상적인 비유로 말하자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습니다. 굳이 교화된 사람으로 되기 위해 교도소를 가야 할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가장 좋은 건 가지 않고도 세상을 깨끗하게 살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 사실을 잘 묵상하면 우리는 이상한 생각에 잘못 빠져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꼭 교도소에 갔다 와야 정화가 된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을 그동안 해왔는지를 알 수 있을 겁니다. 이제 최종 정리입니다. 사순은 부활의 몸을 입기 위해 가는 여정에 있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이 과정을 잘 밟고 이 과정을 잘 이수한 사람이 결국은 완전한 부활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의미로 우리는 사순을 이해하고 가야 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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