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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 묵상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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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마태6,1ㄱ)
'은혜로운 때요 구원의 날인 사순시기!'
오늘 복음(마태6,1-6.16-18)은 '올바른 자선과 올바른 기도와 올바른 단식'에 대한 말씀입니다.
오늘은 은혜로운 때요 구원의 날인 사순시기의 시작을 알리는 '재의 수요일'입니다. 작년 주님수난성지주일 때 받았던 성지가지를 태워 만든 재를 축복하여 머리에 얹는 날입니다. 재를 머리에 얹어주는 사제로부터 이런 말을 듣습니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또는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오늘 머리에 얹는 재는 '참회의 상징이자, 회개의 상징'입니다. 그러니 사순시기는 참회의 시기이며 회개의 시기입니다. 오늘부터 40일(사순) 동안 정화의 시간을 통해 수난과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의 파스카 축제를 준비합니다.
사순시기는 주님의 파스카(부활)와 우리(나)의 파스카(부활)를 준비하는 시기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은 이 준비에 대한 말씀입니다.
"주님의 말씀이다. 이제라도, 너희는 단식하고 울고 슬퍼하면서, 마음을 다하여 나에게 돌아오너라. 옷이 아니라, 너희 마음을 찢어라. 주 너희 하느님에게로 돌아오너라. 그는 너그럽고 자비로운 이, 분노에 더디고 자애가 큰 이, 재앙을 내리다가도 후회하는 이다."(요엘2,12-13)
"하느님과 화해하십시오. 지금이 바로 매우 은혜로운 때입니다.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2코린5ㄹ.6,2ㄷ)
그리고 오늘 복음은 올바른 자선과 올바른 기도와 올바른 단식에 대한 말씀을 전합니다. 자선(나눔)과 기도(사랑)와 단식(끊음)은 우리(나)의 구원에 꼭 필요한 절대행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거룩한 행위를 사람들에게 드러내지 말고 감추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갚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돌아갑시다!' '올바른 자선과 올바른 기도와 올바른 단식을 합시다!'
조욱현 신부님_오늘은 사순절의 시작, 재의 수요일이다. 교회는 우리를 40일간의 광야 여정으로 부르신다. 이 숫자는 성경 안에서 정화와 준비, 회개와 계약의 시간을 뜻한다. 노아의 홍수(40일), 모세의 시나이산 단식(40일), 이스라엘의 광야 체험(40년), 그리고 예수님의 광야 단식(40일)은 모두 새로운 창조와 구원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사순절은 단순한 상징적 기간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수난과 죽음, 부활-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구원의 시간(kairos)이다. 오늘 우리 머리에 얹는 재는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다.”(창세 3,19)를 기억하게 한다. 이 말은 죽음을 묵상하게 하여 교만을 꺾고 겸손으로 돌아오게 한다. 성 베네딕토는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Regula 4,47)고 가르쳤다. 죽음을 기억하는 이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무엇을 사랑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게 된다. 따라서 재는 절망의 상징이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참된 회개와 새 생명을 향한 초대이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순절의 세 가지 실천-자선, 기도, 단식-을 말씀하시면서, 그 핵심이 하느님 앞에서의 진실한 마음임을 가르치신다. 자선: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마태 6,3). 선행은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느님의 눈길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한다: “사람의 눈을 피하라. 하느님만이 너의 자선을 보시도록 하라.”(Homiliae in Matthaeum 19,2) 기도: “골방에 들어가 숨어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여라.”(6절)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 골방을 “우리의 마음 안의 은밀한 자리”라고 해석하며, 거기서 우리는 오직 하느님만을 바라보게 된다고 가르친다(De Sermone Domini in Monte II,3). 단식: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16절) 단식은 외적 고행이 아니라 내적 자유, 곧 하느님만으로 충만해지려는 갈망이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단식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단식은 단지 음식을 끊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죄에서 멀어지는 것이다. 단식의 참된 열매는 자비와 사랑이며, 이것이 없다면 단식은 헛되다.”(De Jejunio) 교리서도 말한다. “단식은 기도의 에너지를 도와주고, 자선을 실천하게 한다.”(1434항). 재를 통한 겸손: 오늘 이 재는 나의 교만을 무너뜨리고, 하느님 앞에서 본래의 나를 찾게 한다. 숨은 일의 훈련: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의 눈길 안에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을 실천하자. 부활을 향한 여정: 사순절은 단순히 나 자신을 위한 고행이 아니라, 부활의 기쁨을 준비하는 시기이다.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여, 마침내 부활의 영광에 참여하는 것이 목표이다.
오늘 재의 예절을 받으며 우리는 죽음을 기억하고, 회개와 겸손을 다짐한다. 그리고 사순절의 세 가지 실천을 통하여 하느님 앞에 진실한 마음으로 서도록 초대받는다.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우리의 회개와 사랑을 굽어보시어, 부활의 영광 안으로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를 청하자.
김건태 신부님_은혜로운 때 오늘 우리는 머리에 재를 받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것’을 다짐하며 사순시기에 들어갑니다. 이 시기는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십자가로 대표되는 고통의 의미를 마음에 되새기는 시기입니다. 십자가 없는 부활, 고통 없는 영광이 있을 수 없음을 확인하고 고백하는 시기이며, 고통을 삶의 일부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가운데 우리의 순수한 모습, 우리의 본래 모습을 되찾는 시기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이 시기를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 길 또는 방법을 일러줍니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입니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으나, 중요한 것은 그 자세입니다: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사람이 아니라 ‘하느님을 향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어야 합니다.’ 사람 중심이 아니라 하느님 중심의 행위가 되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을 향한 자선이란 하느님의 선하심을 드러내는 행위, 다시 말해서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행위이어야 하며, 하느님을 향한 기도란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 뜻을 이루려는 노력을 겸비한 행위이어야 하며, 하느님을 향한 단식이란 설령 음식을 섭취하지 않아 죽더라도 모든 것을 하느님께 맡기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드러내는 행위, 철저한 자기 비움 행위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을 향한다는 것은 이웃을 향한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이웃을 향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어야 합니다.’ 이웃을 향한 자선이란 그야말로 내가 가지고 있는 것, 재물만이 아니라 시간과 재능을 나누는 행위를 말하며, 이웃을 향한 기도란 내 뜻 이상으로 이웃의 뜻을 존중하고 살피는 행위를 말하며, 이웃을 향한 단식이란 이웃과 동일한 공동 운명체임을 마음에 새기고 음식만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삼가고, 필요하다면 끊는 행위를 말합니다. 하느님을 향하고 이웃을 향한다는 것은 결국 나를 향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나를 향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어야 합니다.’ 나를 향한 자선이란 하느님과 이웃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고 배려하고 있는지를 다시금 확인하는 행위를 말하며, 나를 향한 기도란 하느님과 이웃이 나와 뜻을 함께하고자 얼마나 참고 애쓰고 있는지를 다시금 깨닫는 행위를 말하며, 나를 향한 단식이란 하느님과 이웃이 나와 하나 되고자 무엇을 버리고 끊고 있는지를 다시금 살피는 행위를 말합니다. 나를 사랑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이웃을 사랑하고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진정 나를 사랑한다면, 최소한 내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나의 부족한 점들을 하나씩 하나씩 고쳐나가는 자세를 앞세워야 할 것입니다. 이기적인 나에서 이타적인 나로 나아가는 모습, 그것이 바로 하느님이 당신 모습대로 창조하신 우리 본래의 모습, 순수한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번 사순시기, 하느님과 이웃, 끝내 나를 향한 자선과 기도와 단식으로 나의 순수한 모습을 되찾는, 은혜로운 시기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 머리에 재를 받는 가운데 ‘회개하고 복음을 믿을 것’을 굳게 다짐하며 힘차게 출발하시기 바랍니다.
송영진 신부님_<희망과 믿음>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의로운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러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에게서 상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네가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라. 그렇게 하여 네 자선을 숨겨 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회당과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은 다음,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표정을 짓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려고 얼굴을 찌푸린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받을 상을
이미 받았다. 너는 단식할 때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얼굴을
씻어라. 그리하여 네가 단식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고, 숨어 계신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마태 6,1-6.16-18).”
1) 우리는 사순시기가 끝나면 부활절이 있고,
부활시기를 지낸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정말로 부활절을 맞이할 수 있을까?” 아무도 모릅니다.
심판과 종말의 날이 닥칠 수도 있고, 전 지구적인 재난들,
전쟁이나 전염병 등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각 개인의 경우를 생각하면 더욱 불확실합니다.
지금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고,
누가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을 당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것이 인간이라는 존재의 한계입니다.>
정말로 부활절을 맞이할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지만, 우리는
부활절을 맞이하기를 희망하고, 맞이할 수 있다고 믿으니까
사순시기를 잘 지내려고 노력합니다.
믿음 없는 사람들은 “모르니까 없다.” 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면, 또 직접 확인할 수 없으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희망과 믿음을 거부합니다.
그러나 믿는 우리는 “몰라도 있다.” 라고 믿고 희망합니다.
희망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
사람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인생 자체가 사순시기입니다.
이 사순시기를 잘 지내면, 나중에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부활시기’를 지내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신앙인의 희망이고, 믿음입니다.
바로 그 희망과 믿음이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입니다.
2) ‘재의 수요일’에 거행하는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은,
“인간이란,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지 않으면
‘먼지’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 라는 것을 묵상하기 위한
예식이고, 동시에 “먼지로 돌아가지 않기 위해서(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 노력하겠다고 다짐하는 예식입니다.
따라서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 없다면,
‘재를 머리에 얹는 예식’은 ‘헛된 예식’이 될 뿐입니다.
신앙인은 “자격을 갖추기만 하면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고,
그렇게 되기를 희망하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3) 재의 수요일에 듣는 복음 말씀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희망한다면, 위선자가 되지 마라.” 라는 가르침입니다.
사람의 눈으로 볼 때에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라도, ‘숨은 일도 보시는’ 하느님의 기준으로는
‘아무것도 아닌’ 생활일 수 있습니다.
‘자선’의 경우, 위선자들은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기 위해서’ 합니다.
위선자들도 실제로 불우이웃 돕기를 실천하고, 또 그 덕분에
실제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 일의 목적 자체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일은
‘이 세상에서의 일’로 끝나버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에는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위선자들은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자기에게 고마워하기를
바라고, 고마워하라고 강요하기도 합니다.
그런 경우에 도움을 받은 사람들 입장에서는
고맙기는커녕 마음에 상처만 생깁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는 위선자들을 꾸짖으실 것입니다.>
‘기도’의 경우, 위선자들의 기도는 진짜 기도가
아니라 기도하는 척 하는 ‘연기’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기도는 하느님과 나누는 대화”
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위선자들의 기도는 하느님을 향하지 않고
사람들을 향하기 때문에, 그것은 기도가 아니라 ‘빈말’입니다.
‘단식’의 경우, 위선자들도 실제로 단식을 합니다.
그런데 ‘자선’의 경우처럼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기
위해서’, 또 자기의 신심을 과시하기 위해서 하는 단식이기
때문에, 하느님의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데에 아무 소용이 없는 ‘헛일’이 되어버립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나의 신앙생활은 위선일까,
진짜일까?”를 반성하는 일입니다.
위선과 진짜 사이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에, 더욱더 엄격하게 자기반성을 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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