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8일 (수)
(자) 재의 수요일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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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삼용 신부님_천국에 갈 용기는 평소의 이자에서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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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2-17 ㅣ No.188045

 

교우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어느 찢어지게 가난한 남자가 길가 풀숲에서 5억 원이 든 가방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외쳤습니다. 
“우와! 하느님 맙소사! 역시 성모님은 내 기도를 안 버리신다니까!
이게 웬 횡재야!” 그는 그 길로 백화점에 가서 명품 코트를 빼입고 호텔 식당에서 제일 비싼 코스 요리를 주문했습니다. 
스테이크를 썰며 웨이터에게 팁으로 10만 원권 수표를 척 내밀었죠.
그때, 건장한 사내들이 들이닥쳐 그를 제압했습니다. 
형사가 소리쳤습니다.
“당신을 유괴범으로 체포한다.” 그 돈은 유괴범 유인하려고 경찰이 깔아둔 미끼 돈이었습니다.  
 
세상에 공짜가 있을까요? 하느님께서 생명을 빌려주셨고, 부모님이 피땀 흘려 기른 정성이 우리 몸에 흐르고 있는데, 우리는 그것을 ‘내 것’이라 착각하며 흥청망청 살고 있습니다. 
마치 남의 집을 빌려 전세를 살면서 자기가 집주인인 줄 알고 벽에 함부로 못을 박고 주인 행세를 하는 철없는 세입자와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의 주인이 올 것이다.”
이 말씀은 단순히 무서운 심판을 기다리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가 이 세상의 주인이 아님을 잊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입니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의 가장 큰 비극은 그 참 주인을 만나야만 할 때에 옵니다. 
과거 어느 신부님께 수천만 원을 빌려 간 분이 있었습니다. 
그 신부님에겐 몇 년간 차를 사려고 아끼고 모은 귀한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분은 돈을 빌려 가고는 연락을 끊었습니다. 
십 년이 훨씬 지난 뒤, 그분에게서 다시 다급한 연락이 왔습니다. 
빚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이 또 다른 도움을 청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채무자라는 사실을 빌린 사람에게까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신부님은 그 동안 연락을 끊고 조금이라도 갚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기에 그것을 잊었냐고 물었습니다.
그분은 잊지 않았다고 말하며, 거의 화를 내며 “갚으면 될 거 아니예요!”라고 하며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또 10년이 그렇게 흘렀습니다. 
그분은 이제 그 신부님을 결코 만날 수 없을 것입니다. 
준비를 전혀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설은 우리가 저절로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 부모와 조상의 덕으로 지금 여기 있음을 기억하는 날입니다. 
우리가 매일 바치는 기도, 매주 봉헌하는 십일조, 그리고 오늘 조상들께 드리는 감사는 마치 하느님과 조상님들께 드리는 이자와 같습니다. “제 생명의 주인은 제가 아닙니다”라고 고백하는
겸손의 표시입니다. 
이런 날조차 감사하지 못한다면, 나중에 주님 나라에 갔을 때 그 엄중한 심판 앞에서 조상들에게 어떻게 중재를 부탁할 수 있겠습니까?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스스로 지옥을 선택할지도 모릅니다. 
 
에드몬도 데 아미치스의 소설 『사랑의 학교』에 실린 『엄마 찾아 삼만리』의 주인공 마르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탈리아의 어린 소년 마르코는 가난 때문에 아르헨티나로 돈을 벌러 간 엄마가 소식이 끊기자, 엄마를 찾기 위해 그 먼 길을 떠납니다. 마르코는 길에서 구걸하거나 일하며 모은 돈을 단 한 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습니다. 
배가 고파도, 발에 피가 나도 ‘이것은 엄마를 만나기 위한 준비’라며 참고 또 참았습니다. 
 
만약 마르코가 번 돈을 가는 길에 흥청망청 써버렸다면 어땠을까요? 
고생 끝에 병든 엄마를 만났을 때, 마르코는 엄마를 안아드릴 용기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엄마, 미안해. 엄마 찾으러 오다가 돈을 다 써버렸어”라고 말하며 고개를 숙였겠지요. 성경에 하느님께서 당신 앞에 올 때 빈 손으로 오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러면 주님을 뵈올 면목이 없어지니까요.
하지만 마르코는 준비되어 있었습니다. 
그 절제와 노력이 있었기에 그 작은 아이의 보답에 병들어 죽어가던 엄마는 다시 살아날 힘을 얻었습니다. 
평소에 꾸준히 존재의 이자를 갚으며 준비해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거룩한 용기입니다. 
 
구약 요셉의 축복은 결국 에사우 것이었습니다. 그는 에사우를 만나야 하는 일이 있을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계속 선물을 보냈고, 결국 납작 엎드렸습니다.
에사우는 자신의 복을 가로챘지만, 그런 동생을 받아들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하느님과 조상들에게 해야 할 일입니다.  
 
교회 학자 성 그레고리오 대교황은 띠를 매는 행위를 ‘육신의 욕망을 절제하는 것’이라 해석했습니다.
허리띠는 일을 할 때 옷이 펄럭이지 않게 잡아줍니다. 
즉, 모든 것이 내 것인 양 절제 없이 휘두르던
세속적 욕망과 육신의 정욕, 마귀의 교만을 묶는 것입니다. 
아무리 절제하고 싶어도 나를 이기지 않으면 절제가 안 되고 그러면 바칠 이자도 내지 못하게 됩니다.  
 
또한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등불을 ‘깨어 있는 양심과 사랑의 선행’이라고 보았습니다.
등불은 하느님의 뜻, 부모님의 유훈을 따르는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등불은 보게 하는 데 사용됩니다. 
나중에 주인이 나의 행위를 볼 때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다면, 역시 나도 그분을 만날 용기를 낼 수 없을 것입니다. 
야곱은 에사우 앞에서 엎드릴 줄 알았습니다.
어쩌면 이것이 부모에게 오늘 세배를 해야 하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가 오늘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고 준비한다면, 주님께서 오시는
그날은 공포의 심판 날이 아니라, 밀린 이자를 기쁘게 탕감해주시고 영원한 집으로 초대해주시는 축제의 날이 될 것입니다. 부모에게도 허리를 조이고 감사의 행위를 합시다.
부모는 그것으로 모든 노력의 보상을 받는 것처럼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가정이 행복한 가정일 것입니다.

그렇게 하느님과 가족들과 함께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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