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8일 (수)
(자) 재의 수요일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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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태 신부님_조욱현 신부님_이병우 신부님_송영진 신부님_2월 17일 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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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6-02-17 ㅣ No.188042

김건태 신부님_감사와 나눔의 축제

 

[말씀]

 

■ 제1독서(민수 6,22-27)

 

구약시대에 축복은 하나의 주문처럼 기도를 통하여 전달되었으며, 어떤 사람이나 백성에게 내려진 축복의 내용들은 그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다시 말해서 후손은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축복을 통하여 자신을 낳아 준 사람의 기대에 부응할 능력을 선사 받게 되며, 이 능력은 축복을 통하여 자손대대로 계승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축복의 출처가 하느님이시니, 그 효과에 대하여 이제는 의심을 품을 이유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 제2독서(야고 4,13-15)

 

야고보서 하면 ‘실천하는 신앙’이 우선 떠오릅니다: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17). 오늘 독서의 내용은 말씀을 실천함에서 어떠한 생각과 자세를 갖추어야 하는지 일러줍니다. 길지 않은 인생 여정 속에서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 하는 생각을 내려놓고, 먼저 그것이 하느님의 뜻과 일치하는지 살피고, 살피고 확인한 다음 주저함이 없이 실천에 옮기는 자세가 신앙인의 참모습임을 밝힙니다. 이 모습으로 비로소 우리는 영원한 여정에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복음(루카 12,35-40)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하느님 나라를 향해 온전히 열려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세상의 모든 재물로부터 자유로워지도록 초대된 사람들입니다. 주인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종들처럼 미래를 향해 열려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삶을 통해서만이 인간을 사랑하시고 인간을 위해 봉사하기를 즐기시는 하느님을 만나 뵐 수 있을 것입니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새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체험한 역사적 사건 가운데 핵심적인 사건은 이집트 탈출 사건, 곧 이집트 해방 사건이었습니다. 이 사건은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의식과 모습을 갖추게 한 대표적 사건이었기에, 구약성경은 어느 작품이건 이 사건을 중시합니다. 이 사건을 회상하며 이스라엘 백성은 무엇보다 먼저 구원의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고, 이웃 형제들과 함께 찬미의 기쁨을 나누었습니다. 그러기에 이 사건은 역사를 통하여 되풀이되고 종교적 삶 속에 언제나 녹아 있어야 하는 사건이었으며, 특히 파스카 축제 등 여러 축제의 때가 이러한 의식과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였습니다.

 

이렇듯 이스라엘의 모든 축제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와 긴밀한 관련 속에서 탄생했으며,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은 축제를 지내며 늘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상기하고 감사하고 현실화해 나갔습니다. 설 명절은 한가위 명절과 함께 우리 한민족 최대의 명절입니다. 이 명절을 쇠는 우리는 가톨릭 신앙인으로서 먼저 하느님께, 그리고 조상님들과 이웃 형제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며, 이 마음을 나눔과 베풂으로 드러내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 발을 내디디고 살면서도 하늘나라를 지향하는 삶,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주기 위해” 지금 이 시간을 충실히 사는 삶이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명절의 진정한 의미를 새겨 감사와 나눔을 실천하는 가운데, 가족을 비롯하여 만나는 모든 이들과 즐겁고 행복한 시간 되기를 기도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조욱현 신부님_“준비하고 있어라!” 

 

1. 설날: 감사와 깨어 있음의 날

오늘은 우리 민족의 고유 명절, 설날이다. 이날 우리는 새해의 첫날을 맞이하여,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또한 우리에게 생명을 전해주신 조상들께 감사의 마음을 드린다. 그러나 단순히 시간의 흐름을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총의 시간임을 깨닫는 날이다. 오늘 복음의 말씀은 바로 이 순간의 신앙적 의미를 일깨워 준다. “준비하고 있어라! … 너희가 생각하지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35.40) 이 말씀은 단순히 종말론적 경고가 아니라, 매 순간 우리 삶 안에 찾아오시는 하느님을 인식하라는 초대다. 

 

하느님은 과거의 어떤 사건 속에만 머무르시는 분이 아니라, 지금, 우리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다가오시는 살아계신 주님이시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가르친다. “주님은 한때 오셨고, 또 오실 것이며, 지금도 오고 계신다. 지금 그분은 당신의 현존으로 우리의 마음 안에 오신다.”(Sermo 88,15) 교리서도 이렇게 말한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역사 안에서 이미 시작되었으며, 그분은 성사와 말씀 안에서 계속 오신다.”(671항) 

 

2. 깨어 있는 종의 삶: 신앙인의 존재 방식

예수님께서는 오늘 복음에서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 놓고 서 있어라.”(35절) 하신다. 이것은 단순히 외적 준비가 아니라, 내적 깨어 있음의 상징이다. 고대 팔레스티나에서 허리에 띠를 묶는 것은 일할 준비, 곧 섬김의 자세를 의미했다. 빛을 켠다는 것은 어둠 속에서도 믿음의 눈을 밝히는 행위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이 구절을 해석하며 이렇게 말한다. “허리에 띠를 띠는 것은 육의 게으름을 벗는 것이요, 등불을 켠다는 것은 믿음의 불을 가슴에 간직하는 것이다.”(Hom. in Lucam, 34) 

 

하느님을 기다린다는 것은 단순한 수동적 대기가 아니라, 매 순간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살아가는 적극적 행위다.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 깨어 있는 종들!”(37절) 이 말씀은 신앙인의 모든 순간이 하느님과의 만남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교리서는 이 ‘깨어 있음’을 그리스도인의 삶의 기본 태도로 제시한다.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그분을 맞을 준비가 된 충실한 종처럼 살아야 한다.”(2612항) 

 

3. 주님께서 오시는 방식: 일상 안의 은총

주님은 언제, 어떤 모습으로 오실까? 예수님은 “도둑처럼 오신다.”(40절) 하셨다. 이는 공포를 의미하는 말씀이 아니라, 예상치 못한 은총의 방문을 뜻한다. 우리는 그분을 이웃을 통해, 사랑의 행위를 통해, 양심의 부름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성 그레고리오는 이렇게 말한다. “주님은 당신 자신을 가난한 자의 얼굴로, 병자의 신음 속으로, 형제의 필요 속으로 숨기신다.”(Hom. in Evang. 13,1) 그렇다면 깨어 있다는 것은, 단지 종말의 순간을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순간마다 하느님을 인식하고 응답하는 삶의 태도다. 이웃을 향한 사랑이 곧 하느님께 대한 사랑이기에, 이웃 안에 현존하시는 하느님을 알아보는 것이 신앙의 눈이다. 성 요한 사도는 이를 요약한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1요한 4,20) 

 

4. 설날의 신앙적 의미: 감사와 회심의 시작

우리 민족은 설날을 새로운 시작, 새 생명의 시간으로 여겨 왔다. 이 전통적 감각은 그리스도교의 신앙과 깊이 맞닿아 있다. 새해는 단순한 시간의 반복이 아니라, 은총의 해, 곧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가 열리는 시간이다. 성 이레네오는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손으로 사람을 빚으셨고, 성자와 성령으로 매번 새롭게 창조하신다.”(Adversus Haereses, IV, 20,1) 우리의 새해는 성자 안에서 성령의 은총으로 다시 빚어지는 시간이다. 그러므로 설날은 단순한 민족 명절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신 날이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동안의 삶을 돌아보며, 감사와 회개의 마음으로 하느님께 새로이 나아가야 한다. 교리서는 신앙의 해석 안에서 시간의 의미를 이렇게 정의한다. “모든 시간은 하느님의 손안에 있으며, 그리스도 안에서 시간은 구원의 역사가 된다.”(2691항) 

 

5. 맺음말: 언제나 오시는 주님과 함께

“사람의 아들이 생각하지 않은 때에 올 것이다.”(40절) 그러나 그분은 결코 멀리 계신 분이 아니다. 그분은 이미 지금, 가정의 따뜻한 식탁, 용서의 말, 감사의 기도, 그리고 이웃을 향한 작은 사랑의 행위 안에서 우리에게 오신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말처럼, “하느님은 언제나 오시지만, 그분을 맞이할 준비가 된 사람만이 그분을 알아본다.”(Sermo 25,4) 

 

설날을 맞이하는 오늘, 우리의 마음을 정화하고, 감사와 깨어있음으로 주님을 맞이하자. 매 순간이 그분과의 만남이 되고, 그분의 은총 안에서 한 해의 여정이 시작되기를 기도한다. “주님, 당신께 제 한 해의 첫 시간을 드립니다. 제 하루하루가 당신을 향한 기다림과 사랑이 되게 하소서. 아멘!” 

 

이병우 신부님_<설>(2.17)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루카12,40ㄱ) 

 

'행복한 종이 되자!' 

 

오늘 복음(루카12,35-40)은 '깨어 있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루카12,35)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12,38.40) 

 

오늘은 음력으로 '1월 1일 구정'입니다. '민족의 큰 명절인 설'입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즐겁고 행복한 설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에 나를 있게 한 조상님들의 은덕도 기억하는 복된 날이 되시길 바랍니다. 

 

'설'은 '삼가다. 조심하다.'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일년 내내 탈 없이 잘 지낼 수 있도록 행동을 조심하라.'는 깊은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설명절에 들려오는 말씀은 '깨어 있어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내일 일을 알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생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져 버리는 한 줄기 연기일 따름입니다."(야고4,14) 

 

그리스도인은 '두 종말'을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는 '죽음'이며, 또 하나는 '그리스도의 재림(다시오심)'입니다.

그 너머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서로가 더 사랑하고, 더 나누고, 더 용서하고, 더 낮아지려고 노력합니다.

그것을 큰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갑니다. 

 

이런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며, 설명절의 하느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길 빕니다.

"주님께서 그대에게 복을 내리시고, 그대를 지켜주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비추시고, 그대에게 은혜를 베푸시리라. 주님께서 그대에게 당신 얼굴을 들어 보이시고, 그대에게 평화를 주시리라."(민수6,24-26) 

 

송영진 신부님_<‘주님께서 함께 계심’ 자체가 ‘큰 복’입니다.>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이것을 명심하여라. 도둑이 몇 시에 올지 집주인이

 

알면, 자기 집을 뚫고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

 

너희도 준비하고 있어라. 너희가 생각하지도 않은 때에

 

사람의 아들이 올 것이다(루카 12,35-40).”

 

 

 

1)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설날의 인사말에서,

 

성모송의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라는 기도문이 연상됩니다.

 

주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에 성모님은 “은총이

 

가득한 분”이시고(루카 1,28), 사람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분”이십니다(루카 1,42).

 

우리가 누리는 모든 ‘복’은 주님에게서 오는 것,

 

또 주님께서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주님은

 

‘모든 복의 원천’이신 분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함께 계심” 자체가 ‘가장 큰 복’입니다.

 

<세속의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해도,

 

주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이고,

 

먼지처럼 사라질 허무한 것입니다.

 

또 주님께서 함께 계시지 않는 상태에서 누리는 부귀영화는

 

사탄이 준 것일 수밖에 없고, 그것은 인간을

 

멸망으로 이끄는 올가미일 수밖에 없습니다.>

 

 

 

2) 우리는 성모님 쪽에서도

 

주님과 함께 계셨음을(사셨음을) 생각해야 합니다.

 

사실 주님은 모든 사람과 함께 계시는 분인데,

 

그 ‘함께 계심’은 인간 쪽에서 ‘함께 있음’으로 완성됩니다.

 

바로 그 점에서 성모님은 모든 이의 모범이신 분입니다.

 

<성모님이 “모든 사람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신 분”이신 것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가까이에서

 

주님과 함께 사셨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성모님만 편애하신 것이 아닙니다.>

 

야고보 사도는, “하느님께 가까이 가십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가까이 오실 것입니다.” 라고

 

권고합니다(야고 4,8).

 

이 말은,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에게만

 

하느님께서 가까이 오신다는 뜻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하느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만

 

‘하느님께서 함께 계심’을 체험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말하면, 하느님에게서 떨어져 있는 사람은,

 

그 자신이 떨어져 있음으로 해서,

 

하느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체험할 수 없게 됩니다.

 

 

 

3) 그런데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주님께서

 

함께 계시는 것 같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이 있습니다.

 

“혹시, 내가 바치는 기도를 듣지 않으시거나, 멀리 떨어져

 

계시거나, 나에게 관심이 없으신 것은 아닐까?” 라는

 

의구심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사도들도 그런 경험을 했습니다.

 

호수에서 풍랑을 겪었을 때의 일이 좋은 예입니다.

 

“그때에 거센 돌풍이 일어 물결이 배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깨우며,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깨어나시어

 

바람을 꾸짖으시고 호수더러, ‘잠잠해져라. 조용히 하여라!’

 

하시니 바람이 멎고 아주 고요해졌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말씀하셨다(마르 4,37-40).”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계셨지만, 그 당시

 

제자들 입장에서는, 함께 계시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걱정되지 않으십니까?” 라는 말은,

 

기도의 응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무신 것은 제자들의 사정에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제자들을 믿으셨기 때문이고, 또 거센 돌풍이 일어도

 

무슨 일이 생기지는 않는다는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무시는 예수님을 깨울 것이 아니라, 그냥 노를

 

젓는 일에만 집중하는 것이 올바른 제자의 태도입니다.

 

물론 힘들기는 하겠지만, ‘믿는 이’라면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주님께서 침묵을 지키시는 경우가

 

있는데(마태 15,23), 침묵도 응답 방식 가운데 하나입니다.

 

 

 

4)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꽤 오랫동안 예수님과 함께

 

걸으면서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루카 24,16).

 

예수님께서 돌아가셨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있었고,

 

아직 부활 신앙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막달레나도 바로 눈앞에 계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울기만 했습니다(요한 20,14).

 

슬픔에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자기만의 어떤 생각에 빠져 있다면, 아니면 다른 곳만 보고

 

있다면, 함께 계시는 예수님을 체험하지 못하게 되고,

 

예수님께서 옆에 안 계신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새해를 맞이해서 여러 가지 계획을 세우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은 좋은 일인데, 신앙인이라면 모든 일을

 

주님과 함께하는 것을 첫 번째 목표로 삼아야 할 것이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계획을 세워야 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복”을 얻어 누리는

 

‘신앙의 지혜’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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