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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간 토요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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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5주간 토요일, 성 치릴로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주교 기념] 마르 8,1-10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오늘 복음에서는 두 가지의 마음이 서로 만나고 있습니다. 하나는 군중들을 사랑하시는 예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은 당신 곁에 머무르며 말씀을 듣느라 제대로 챙겨먹지 못하고 굶주리는 군중들을 안쓰럽게 여기셨습니다. 알아서 자기 끼니를 챙겨먹으라며 그들을 그냥 집으로 돌려보내면 중간에 기력이 쇠하여 길에서 쓰러질 것을 걱정하셨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직접 그들이 먹을 것을 챙겨주시고 싶었습니다. 그들을 배불리 먹이고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주심으로써 하느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충만한 행복을 미리 맛보게 해주시고 싶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런 예수님을 바라보는 군중들의 마음입니다. 백성들이야 어찌되든 나몰라라 하며 자기 잇속을 챙기기에 급급하던 세상의 권력자들과 달리, 자신들을 진심으로 아껴주시고 자기들의 처지에 깊이 공감해주시며, 자기들이 잘 되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마음을 그들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분 곁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분 곁에 가능한 오래 머물고 싶었습니다. 그랬기에 준비해 온 음식이 동나 며칠째 굶주림에 시달리면서도 개의치 않았습니다. 주님 곁에 머무르는 지금 이 시간이 그들에게는 가장 행복한 시간이었던 겁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 둘 중 어떤 마음에도 머무르지 못했습니다. 늘 주님과 함께 지내면서도 착한 목자의 마음으로 그분 양떼인 사람들을 바라보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양떼의 마음이 되어 주님을 간절히 찾고 매달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렇게 세상이라는 바다 한 가운데에 고립된 ‘외딴 섬’처럼 되었습니다. 그런 상태로는 주님께서 맡기시는 소명을 제대로 수행하지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참된 행복을 누리지도 못할 것이기에, 주님께서는 그들이 당신과 같이 ‘착한 목자의 마음’을 품게 하시기 위해, 이제부터 당신이 직접 보여주실 놀라운 빵의 표징에 그들을 ‘일꾼’으로 부르십니다.
그 부르심은 이런 질문으로 시작하지요. “너희에게 빵이 몇 개나 있느냐?” 이 질문을 통해 제자들은 자기들이 빵을 ‘일곱 개나’ 가지고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성경에서 일곱은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제자들은 그 빵을 인간의 눈으로 보았기에 그것이 수천명의 군중들을 먹이기에 턱없이 부족하다고 여겼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빵을 하느님의 눈으로 보았기에 그 정도의 음식만으로 우리를 충만한 기쁨으로 채워주고자 하시는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에 ‘충분하다’고 여기셨습니다. 우리가 자기 능력에 기대지 않고 기도 중에 하느님께 의탁한다면, 그분 뜻을 따르고자 하는 선한 지향을 가지고 노력하며 부족한 부분은 하느님께서 채워주시리라 믿는다면, 하느님은 부족한 재료를 가지고도, 부족한 우리를 통해서도 당신의 선한 뜻을 완전히 이루신다고 믿으신 겁니다. 결국 그분께서 믿으신대로 되었기에, 일곱 개의 빵 만으로 사천명이 넘는 군중들이 배불리 먹는 ‘기적’이 일어난 것이지요.
그 기적은 오늘날에도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성체성사 안에서 손가락 한 마디 만큼 작은 밀가루 빵을 당신 몸과 피로 바꾸시어 그것을 받아모시는 우리 마음과 영혼을 충만하게 채워주십니다. 이 천년 전 제자들에게 그러셨듯 지금 우리를 당신께서 주도하실 ‘사랑의 기적’을 함께 만들어갈 ‘일꾼’으로 부르시는 겁니다. 밥을 얻어먹었으면 ‘밥값’을 해야지요. 성체를 받아모셨으면 나혼자만 그 은총을 누리고 끝날 게 아니라, 더 많은 이들이 그 은총을 나와 함께 누리도록 초대해야 합니다. 그런 ‘우리’의 숫자가 커지고 믿음이 깊어질수록 우리가 믿음 안에서 누리는 기쁨과 보람도 커질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강론 말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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