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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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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님들의 묵상글을 무려 7분의 글을 옮깁니다. 그리고 제가 애독하는 신부님 계십니다. 각각의 신부님들의 묵상글을 읽다보면 한결 같은 것이 있습니다. 싸움터의 전사와 같이 혼신의 힘을 다해서 묵상글을 쓰십니다. 영혼의 기도를 드리시는 글입니다. 저도 글을 쓰는데 그런데 저의 글의 목적이 있습니다. 목적은 기도입니다. 그리고 그날 주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눈을 보기 위해서 묵상 글을 씁니다. 그리고 신부님들의 글을 보면서 나를 점검하고 나의 영혼의 방향을 그분들의 글을 통해 맞추어 봅니다. 신앙의 스승과 같은 분들입니다. 평신도는 성직자분들의 지도를 받아야 합니다. 내 임의로 작성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다 보면 나중에 영적인 병에 걸립니다. 영성 지도를 받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여러가지 제한적인 것이 있어 지도를 받지 못받지만 간접적으로 교육을 받는 것도 좋은 교육입니다. 신부님께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오늘 복음은 두가지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나는 햐혈하는 여인의 병을 치유시켜 주시는 장면입니다. 여인이 수년 동안 자신의 몸에서 하혈하는 것으로 괴로워 하다가 예수님이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앞으로 나서서 예수님의 옻에 손을 대서 그녀는 치유를 받습니다. 그 순간 주님은 자신 안에서 능력이 나가서 누군가가 치유 받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찾으십니다. 그 순간 여인은 앞으로 나섭니다. 여인은 예수님 앞으로 나서서 주님 제가 그렇게 했습니다. 라는 말을 합니다. 순간 주님의 시선은 측은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십니다. 덜덜 떨고 있는 그녀를 안정 시키시고 그녀의 믿음을 칭찬하여 주십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씀하시기를 너의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십니다. 그녀는 기도를 청하고 주님의 응답을 받고 그것을 증언하고 감사와 찬미를 드립니다. 이것이 우리 신앙인도 같이 행해야 할 믿음 같습니다. 그리고 다음 행선지로 향합니다. 가는 도중에 하인이 나와서 그 딸이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오시던 주님을 돌려 보내 드릴려고 합니다. 하혈하는 여인이 수동적으로 주님의 손에 나를 내어 맡겨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회당장의 경우는 주님께 기적을 청합니다. 판단도 자신이 합니다. 오고 가는 것도 판단을 회당장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앙의 모든 것은 주님에게 의탁하는 것입니다. 회당장이 능동적으로 주님의 행동을 제어하려고 하자 주님은 그의 말과 관계없이 자신의 행선지로 향하십니다. 그리고 회당장의 딸이 죽어 있는데 그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우십니다. 다음과 같이 행동하십니다. 아이의 손을 잡으시고 말씀하셨다. “탈리타 쿰!” 이는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는 뜻이다. 그러자 소녀가 곧바로 일어서서 걸어 다닙니다. 주어는 주님입니다.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 명령에 따라서 딸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걸어갑니다. 영과 육으로 죽어 있는 영혼을 깨우시고 손으로 잡아 올리시어서 일으켜 세우십니다. 인간의 영혼을 깨우시고 일으켜 세우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일대일입니다. 참 주님은 어느 누구나 관계없이 바로 주님과 일대일로 신앙 대응하십니다. 하느님의 나라 원리가 하느님과 나는 바로 앞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과 나의 거리나 다른 사람과 하느님의 거리는 동일합니다.
믿음안에서 어려운 것은 사람과 사람의 관계도 동일한 일대일의 믿음의 관계를 가지려는데 어렵게 하는 방해물이 있습니다. 인간의 완고함이 인간과 인간이 함께 같이하는데 장애물의 역할을 하는 것을 종종 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주님은 우리와 가장 가까이서 대면하고 싶어하시고 사랑을 수없이 나누고 싶어 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겠습니다. 주님과 저는 항상 가장 가까이서 사랑을 나누고 있고 항상 행복합니다. 우리의 사랑의 거리와 같이 내가 만나는 이웃도 등거리로 항상 순수한 사랑을 나의 이웃과도 나누고 싶습니다. 주님 같이 하소서.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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