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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주간 화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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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월 9일과 11일에 ‘대림 특강’이 있었습니다. 지난봄에 부탁했는데 신부님이 갑자기 한국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신부님은 약속이 있었기에 기꺼이 달라스까지 오셨습니다. 부모님이 모두 아프신데도 신부님은 와 주었습니다. 신부님은 ‘대림’의 의미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대림은 기다리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부님은 라틴어 ‘Adventus’의 뜻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Ad’는 접두사로 향한다는 뜻입니다. ‘Venire’는 ‘온다. 또는 간다.’라는 동사입니다. 그래서 대림은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온다는 의미이고, 우리가 하느님의 아들에게 간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동방박사는 별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왔습니다. 목동은 예수 그리스도께 경배드렸습니다. 대림은 단순히 기다린다는 수동적인 의미가 아니라 ‘찾아간다’라는 능동적인 의미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주님을 찾아 나서지 않는다면 매일 주님이 찾아오셔도 대림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주님을 찾아 나선다면 매일의 삶이 대림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대림(Adventus)이라는 말에서 영어 ‘Adventure(모험)’가 나왔다고 합니다. 내가 의욕이 넘치고, 희망을 찾아 나선다면 나는 대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신부님은 은총에 관해서도 이야기했습니다. 한문으로 은총(恩寵)은 임금님이 집으로 들어간다는 의미입니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오는 것이 바로 은총이라고 하겠습니다. 임금님이 누군가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은 임금님의 마음입니다. 마찬가지고 하느님께서 나에게 오는 것은 하느님의 뜻입니다. 내가 무엇을 했기에, 내가 공로를 세웠기에 하느님께서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어 오신 것도 우리가 공로를 세웠기 때문이 아닙니다. 비록 우리가 죄를 지었어도, 비록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멀리했어도 하느님의 자비하심으로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오신 것입니다. 나의 공로와 나의 업적으로 은총이 주어진다고 믿는다면 그것은 자칫 하느님과 거래하는 관계가 됩니다. 우리는 모두 은총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은총을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주변의 이웃이 우리의 모습을 보고 ‘나도 성당에 가고 싶다.’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은총을 받은 사람답게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너 같은 사람도 성당 다니냐?’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은총을 받은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슷해 보여도 순서가 달랐습니다. 은총이 먼저 있으니, 그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과 공로와 업적을 쌓았으니, 은총을 받는 것은 분명 다른 것입니다. 강의를 통해서 ‘대림과 은총’의 의미를 새롭게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은 ‘권위’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예전에 함께 지내던 주교님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이시라면 이럴 때 어떤 결정을 내리셨을까?” 주교님 선택의 기준은 ‘예수님’이셨습니다. 사제직의 권위가 있다면 그것은 오직 예수님을 따름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느님께 대한 순명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 이 잔을 제게서 치워주십시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 예수님의 권위는 십자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겸손함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은 섬김을 받을 자격이 있지만 섬기러 왔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제자들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사제직이 순명을 만나면, 사제직이 십자가를 만나면, 사제직이 겸손을 만나면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권위가 생겨납니다. 예수님은 전 생애를 걸쳐서 봉사와 희생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서 죽기까지 순명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새로운 권위였습니다. 그 권위 위에서 부활의 꽃이 피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율법 학자들과 달리 권위를 가지고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주님의 권위가 우리 안에도 머물러, 우리의 말과 행동 속에서 드러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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