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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9일 수원 교구 묵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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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우 신부님_"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루카1,13)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요 주님의 성전!'
오늘 복음(루카1,5-25)은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에 대한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탄생인 주님의 성탄이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제와 오늘 복음은 주님 성탄의 도구로 선택된 이들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제는 하느님의 선택된 도구인 '마리아와 요셉에 대한 말씀'이었고, 오늘 복음은 구세주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에 앞서 파견된 '세례자 요한과 그의 부모인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둘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이가 없었다. 엘리사벳이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둘 다 나이가 많았다."(루카1,6-7)
세례자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가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을 할 때, 주님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루카1,13)
주님께서 의로운 이들을 당신 구원 사업의 도구로 쓰십니다. 능력을 보시지 않고,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부르십니다. 의로운 이들은 단순하게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이들,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어 선포하신 하느님의 나라(천국)는 의로운 이들의 나라, 의로운 이들이 넘쳐나는 나라입니다.
우리 안에 의로운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바로 여기가 하느님의 나라가 되고, 주님의 성전이 되게 합시다!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티 없이 깨끗하신 동정녀께서, 천사의 아룀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시어, 성령의 빛으로 주님의 성전이 되셨으니, 저희도 동정 마리아를 본받아 주님의 뜻을 충실히 따르게 하소서."(본기도)
(~ 토빗4,21)
전삼용 신부님_3일 안에 하느님 만나는 법
찬미 예수님! 오늘은 1974년,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있었던 아주 충격적인 예술 실험 이야기로 문을 열까 합니다. 행위 예술가 '마리나 아브라모비치'가 감행한 '리듬 0'이라는 퍼포먼스입니다. 그녀는 전시장 한가운데에 마네킹처럼 서서 관객들에게 이렇게 선언했습니다. "테이블 위에 72가지의 도구가 있습니다. 깃털과 장미 같은 부드러운 것부터, 칼과 가위, 심지어 탄환이 든 권총도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6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을 것입니다. 당신들은 저 도구로 저에게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겠습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조심스러웠습니다. 장미를 손에 쥐여주거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지요. 하지만 그녀가 완벽한 침묵 속에 무기력하게 서 있자, 사람들의 내면에 숨겨진 본성이 꿈틀거리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 가위로 그녀의 옷을 잘라내자, 군중 심리가 발동했습니다. 어떤 이는 그녀의 몸에 낙서를 하고, 어떤 이는 살을 베어 피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누군가는 장전된 총을 그녀의 머리에 겨누기까지 했습니다. 그녀가 '멈춰' 있는 동안, 사람들은 그녀를 인격체가 아닌 물건처럼 다루며 자신들의 폭력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습니다.
약속된 6시간이 지났다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그 순간, 마네킹처럼 굳어있던 마리나가 천천히 고개를 들고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녀가 눈을 맞추며 한 걸음 내딛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방금 전까지 그녀를 괴롭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도망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추악한 본성을 목격한 '살아있는 눈동자'를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반면, 그녀의 상처를 닦아주려 했던 소수의 사람들은 그 자리에 남아 그녀를 맞이했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사탄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정신없이 움직이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바쁘게 돌아갈 때는 누가 나를 해치는지, 누가 나를 사랑하는지,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소음과 속도는 사탄의 가장 좋은 은신처입니다.
C.S. 루이스의 소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를 보면 고참 악마가 조카 악마에게 이렇게 조언하는 대목이 나옵니다. "인간을 타락시키는 최고의 무기는 '소음'이다. 그들이 절대 침묵하지 못하게 해라. 침묵하면 그들은 원수(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즈카르야 사제는 평생 하느님의 일을 했지만, 정작 하느님의 능력보다는 자신의 '계산기'를 더 믿었던 사람입니다. 천사가 나타나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하자 그는 즉시 계산기를 두드렸습니다.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악마는 즈카르야에게 끊임없이 의심의 소음을 불어넣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하느님께서는 즈카르야를 보호하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내리십니다. 바로 '침묵'으로 그를 격리시키신 것입니다.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된 것은 벌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강제된 피정이었습니다. 입을 닫고 귀를 열라는 하느님의 자비였습니다. 그 고요함 속에서 즈카르야는 자신의 불신앙을 뼈저리게 식별하고 회개했습니다. 그리고 엘리사벳의 배가 불러오는 것을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 자신의 좁은 계산기를 부숴버렸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주님을 만날 수 있을까요? 즈카르야처럼, 그리고 저 예술가처럼 잠시 멈춰 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피정(Retreat)'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하느님 안에서 침묵할 때, 우리를 갉아먹던 악한 것들은 그 고요함을 견디지 못하고 도망칩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우리 곁에 남는 것은, 마리나의 눈물을 닦아주던 손길처럼, 우리에게 선한 영향을 주는 주님의 목소리뿐입니다.
사도행전의 사울을 보십시오. 그는 살기등등하게 다마스쿠스로 가다가 강렬한 빛을 받고 눈이 멉니다. 그는 사흘 동안 앞을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 그 3일 동안 그는 무엇을 했을까요? 자신이 알고 있던 율법, 지식, 신념이라는 '계산기'가 강제로 꺼진 상태에서 그는 어둠 속에 홀로 있었습니다. 육체의 눈이 닫히자 비로소 영혼의 눈이 떠졌습니다. 그는 그 3일간의 캄캄한 침묵 속에서 자신이 박해하던 예수가 곧 주님임을 깨닫습니다. 눈을 감아야만 진리가 보이는 '즈카르야의 시간'을 겪은 것입니다.
자연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고치라는 '절대 침묵'의 공간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밖에서 볼 때 고치는 죽은 것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서는 엄청난 재창조가 일어납니다. 만약 답답하다고 고치를 찢고 나오면 나비는 날지 못하고 죽습니다.
즈카르야의 열 달은 단순한 벙어리 생활이 아니라, '의심하는 애벌레'가 '찬미하는 나비'로 바뀌는 필수적인 고치의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혹시 지금 하느님의 뜻이 들리지 않아 답답하십니까? 그렇다면 내가 너무 시끄럽게 떠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생각, 내 계획, 내 판단이라는 소음을 끄십시오. 저도 신학교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사흘 동안의 전 인격적인 침묵이 있었습니다. 죽음이 사흘 동안 지속되면 부활을 만나게 됩니다.
며칠 간의 피정이 어렵다면, 단 하루, 아니 단 10분이라도 귀와 눈을 가리고 나를 '0'으로 만들 용기를 내야 합니다. 멈추십시오. 그래야 보입니다. 침묵하십시오. 그래야 들립니다. 그 침묵의 끝에서 우리는 비로소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 아기 예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
조욱현 신부님_복음: 루카 1,5-25: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1. 은총의 표징으로 주어진 요한 요한은 엘리사벳의 불임 상태 속에서 태어난 기적의 아들이다. 그의 이름 “요한”(하느님은 은총이시다.)은 곧 그의 사명 자체를 드러내고 있다. 하느님은 은총으로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시며, 인간의 불가능 안에서 가능성을 열어 주신다. 성 암브로시오는 “요한은 은총의 선물로 태어나, 은총을 선포하는 자가 되었다.”(Expositio Evangelii secundum Lucam 1,23)라고 말했다. 우리의 삶 안에서도 하느님께서는 불가능처럼 보이는 자리에서 은총의 역사를 시작하신다.
2. 즈카르야의 불신과 마리아의 믿음 즈카르야는 나이와 인간적 한계를 바라보다가 천사의 말씀을 믿지 못했고, 목소리를 잃었다. 반면, 마리아는 같은 천사의 말씀 앞에서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했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즈카르야의 경우를 두고 “의로운 이조차 의심에 빠질 수 있다. 그러나 하느님은 그를 버리지 않고, 믿음을 회복하도록 교정하신다.”(Hom. in Matth. 4,6)고 말했다. 이는 우리에게 믿음의 순종이 구원의 문을 연다는 것을 가르친다.
3. 엘리야와 요한의 예언자적 소명 요한은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녀”(루카 1,17) 이스라엘을 주님께로 돌려놓는 사명을 받았다. 그는 엘리야처럼 단순한 삶, 거친 옷, 광야 생활로 하느님의 도래를 준비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요한을 “새 언약의 문지기, 옛 언약과 새 언약을 이어주는 다리”(Serm. 293,3)라고 불렀다. 요한의 삶은 오늘 우리도 회개와 단순함으로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부르심이다.
4. 교회의 가르침 교리서는 “요한은 주님의 오심을 준비하는 마지막 예언자로서 ‘모태에서부터 성령으로 충만한 자’였다.”(717항) 가르친다. 또한 “요한의 출생은 엘리사벳의 불임을 극복한 기적 속에서, 하느님의 섭리와 구원 계획이 실현되는 표징”이라고 설명한다(722항 참조).
5. 삶의 적용 불가능의 자리에서도 은총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삶의 막힘과 한계 속에서도 하느님께서 새로운 생명과 은총을 일으키신다는 희망을 품어야 한다. 또한 믿음의 응답을 드리는 것을 배워야 한다. 즈카르야의 의심이 아니라, 마리아의 순종을 본받아 하느님의 말씀을 신뢰해야 하며, 예언자의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요한처럼 단순하고 진실한 삶으로, 이웃을 주님께로 이끄는 작은 “예언자”가 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엘리사벳이 “주님께서 굽어보셨다.”라고 고백했듯이, 우리도 받은 은총을 잊지 않고 감사해야 할 것이다.
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는 단순히 한 인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은총으로 시작된 구원의 역사, 믿음의 순종을 요구하는 신앙의 길, 그리고 하느님을 맞이할 준비의 삶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김건태 신부님_세례자 요한의 탄생 예고
무대의 막이 걷히고, 구원의 드라마가 펼쳐집니다. 우리는 구약성경 시대에서 나와 신약성경 시대로 들어섭니다. 즈카르야에 이어 마리아에게 전달된 대조적인 두 가지 탄생 예고 말씀이 시대의 넘어섬을 일러줍니다.
즈카르야를 향한 예고에서 우리는 아직 예루살렘 성전과 엄숙하고 화려한 전례, 곧 분향, 구약의 제도적인 성직자가 규정에 따라 올리는 저녁 제사, 군중의 무리가 멀리서 기도로 함께하는 전례 속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와 달리, 마리아를 향한 예고는 평범한 일상생활 중에 처녀가 머무는 조촐한 집에서 전개됩니다. 외부에서 규모 있게 거행되던 예식에서, “모든 것은 마음에서 이루어집니다.” 하고 예수님이 앞으로 그토록 강조하실, 마음으로 올리는 전례로 건너갑니다. 어느 군중도 나자렛의 평범한 집에서 강생(降生)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없습니다. 그야말로 내적 사건, 신비로운 사건이었습니다.
즈카르야와 마리아를 향한 예고에서, 우리는 또 하나의 다른 문턱, 기다림의 세계와 이루어짐의 세계 사이에 놓인 문턱을 넘어섭니다. 태어날 아기의 이름은 ‘주님께서 은총을 베푸신다.’ 하는 의미의 요한입니다. 요한은 주님께 ‘은총을 베푸실 주님을 받아들일 백성’을 준비시켜 나갈 것입니다. 모든 것이 미래를 향해 있던 시기가 끝나고, 이제 주님의 은총을 받기 위해 서둘러야 할 시기가 열립니다. 요한이 은총을 베푸실 분을 향해 백성을 준비시켜나갈 그분은 예수님, 곧 ‘주님께서 구원을 베푸신다.’ 하는 의미의 예수님입니다. 하느님의 은총 가운데 은총인 구원을 이루기 위해 오시는 분입니다.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의 지고의 뜻인 구원을 이루실 분입니다.
그러나, 이 지상에서 삶을 살아가는 동안 내내, 우리는 곧바로 쉼 없이 열심히 살아가야 할 현재와 신비로운 영원을 향해 달려가야 할 미래라는 두 가지 실존을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땅에 발붙이고 살면서도 하늘을 지향해야 하는 사람들, 주어진 삶에 충실하면서도 미래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이 대림시기, 세례자 요한이 준비하고 가르쳐준 길을 따라 성심껏 걸어가는 가운데, 오시는 주님을 기쁘게 맞이할 수 있도록, 오늘도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며 주님의 은총, 나아가 주님의 구원을 미리 맛보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병자를 위한 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앓는 사람에게 강복하시고
갖가지 은혜로 지켜 주시니
주님께 애원하는 저희 기도를 들으시어
성직자분들, 모든 병고로 시달리시는 분들, 돈이 없어서 병원을 찾기 어려운 우리 주변의 불쌍한 환우들의 병을 낫게 하시며
건강을 도로 주소서.
● 주님의 손으로 일으켜 주시고
주님의 팔로 감싸 주시며
주님의 힘으로 굳세게 하시어
더욱 힘차게 살아가게 하소서.
아멘 ◎
송영진 신부님_<이 이야기는 ‘메시아 강생’이라는 기쁜 소식의 선포입니다.>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 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포도주도 독주도 마시지 않고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을 그들의 하느님이신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다. 그는 또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즈카르야가 천사에게,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하고 말하자, 천사가 그에게 대답하였다. ‘나는 하느님을 모시는 가브리엘인데, 너에게 이야기하여 이 기쁜 소식을 전하라고 파견되었다. 보라, 때가 되면 이루어질 내 말을 믿지 않았으니, 이 일이 일어나는 날까지 너는 벙어리가 되어 말을 못하게 될 것이다.’(루카 1,13-20)”
1) 이 이야기는, ‘메시아 강생’이라는 ‘기쁜 소식의 선포’이고, 루카복음에서는 ‘첫 번째 선포’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즈카르야에게 한 말을 잘 보면, 주님(메시아)께서 곧 오신다는 ‘기쁜 소식’이 핵심입니다. 천사의 말을 겉으로만 보고 “아이를 못 낳던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 라는 예고로만 생각하는 것은, 핵심 내용을 보지 못하고 놓치는 일이 됩니다. 천사의 말에서 “그분보다 먼저 와서” 라는 말에는, 그분이(메시아께서) 곧 오신다는 뜻이 들어 있고,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 라는 말에는, “곧 오실 주님을(메시아를) 잘 맞이할 준비를 하여라.” 라는 뜻이 들어 있습니다. 19절의 ‘기쁜 소식’은 ‘메시아 강생 소식’입니다. 그리고 14절의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라는 말은, 세례자 요한의 출생이 아니라 메시아 강생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말입니다. ‘많은 이’는 인류 전체를 뜻합니다. 그래서 ‘많은 이’가 기뻐할 것이라는 말은, “메시아 강생은 인류 전체에게 큰 기쁨을 주는 일이다.” 라는 뜻이 됩니다. 즈카르야가 “저는 늙은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 라고 말한 것을 생각하면, 13절의 ‘너의 청원’은, ‘아들을 낳게 해 달라는 청원’이 아니라, ‘메시아를 보내 달라는 청원’으로 해석됩니다. <나이가 너무 많아서 아들 낳는 것을 포기하고 있었던 즈카르야가 아들을 낳게 해 달라는 청원기도를 바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즈카르야가 천사의 말을 믿지 못한 것은, ‘메시아 강생 소식’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고, 아들의 출생 예고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2) 만일에 즈카르야가 천사의 말을 잘 알아듣고 믿었다면? 그러면 ‘기쁜 소식의 첫 증인’이라는 영예를 차지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천사의 말을 알아듣지도 못했고, 믿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 영예는 성모 마리아에게로 넘어갔습니다. 그런데 즈카르야의 말은, 믿기를 거부한 말이 아니고, 믿고 싶지만 너무나도 놀라운 일이고, 믿기가 어려운 일이어서 믿을 수 없다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라는 말은, “그것을 제가 믿을 수 있도록 저에게 표징을 보여 주십시오.” 라는 뜻으로 한 말입니다. 그가 얻은 표징은 ‘말을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갑자기 말을 못하게 되었다가 요한이 태어난 후에 다시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이 그에게 주어진 표징입니다. 즈카르야가 사제라는 점을 생각하면, 그가 말을 못하게 된 것은, ‘사제 직무 정지’ 라는 징계를 당한 것과 같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은 ‘기쁜 소식’을 선포할 자격도 없고, 사제 직무를 수행할 자격도 없습니다.>
3) 하느님께서는 왜, 희망도 없이 살아가던, 늙은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을 선택하셨을까? 우리는 그 일을, “나의 힘은 약한 데에서 완전히 드러난다(2코린 12,9).” 라는 말씀에 연결해서 생각할 수도 있고, ‘희망 없이’ 살고 있는 인류에게 ‘새 희망’을 주신 것을 상징하는 일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희망’에 초점을 맞추면, 역시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믿음이 부족하거나 없으면, 희망은 힘을 잃어버립니다. 신앙인은 믿기 때문에 희망하고, 희망하니까 믿는 사람입니다. 믿음과 희망은 하나입니다.
4)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이들로,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루카 1,6). 그러니 신앙과 신앙생활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모범이 되는 부부였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를 들었을 때에 즈카르야의 믿음이 문제가 된 것은, ‘메시아 강생’이 그만큼 놀랍고 위대한 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즈카르야는 처음에는 믿을 수 없는 일이어서 못 믿었지만, 침묵 속에서 기도하고 묵상하면서 ‘메시아 강생’을 깨달았을 것이고, 또 믿음에 도달하게 되었을 것이고,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천사가 지시한 대로(13절) ‘요한’이라고 지음으로써 자신의 믿음을 고백했습니다(루카 1,63).>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12월 19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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