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1월 21일 (금)
(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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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 수원 교구 묵상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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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09:16 ㅣ No.186421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오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은 매우 오래된 축일로, 성모 공경에서 늘 그러하듯, 서방교회보다는 동방교회의 신심 깊은 전통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사실 성경에는 성모 마리아의 자헌에 대한 언급도, 나아가 마리아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에 대한 언급도 없습니다. 다만 170-180경에 기록된 것으로 추정되는 ‘야고보 원(原)복음서’가 마리아의 부모와 어린 시절에 대해서 귀중한 자료를 제공해 줍니다. 물론 가톨릭교회가 이 작품을 경전에서 제외하여 위경(僞經)으로 취급하고 있느니만큼, 이 책에 실린 모든 내용의 역사적 진실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어려우나, 최소한 성모 마리아 공경 부분에서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습니다.

이 작품에 따르면, 마리아의 부모는 자식이 없어 근심이 컸었는데, 어느 날 천사를 통해 아이를 갖게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게 되고, 그렇게 마리아를 낳게 된 부부는 매우 기뻐하며 약속한 대로 하느님께 딸을 봉헌하기 위해 아직 세 살밖에 되지 않은 마리아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데리고 갑니다. 성전에 도착하여 마리아를 셋째 계단에 내려놓자, 아기는 두 발로 춤을 추듯 부모를 뒤돌아보지도 않은 채 성전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이 내용을 근거로 교회는 마리아가 스스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했다고 믿고, 이를 기념하기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오늘 복음 말씀은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는 전언으로 시작됩니다. 이에 예수님은 “누가 내 어머니이고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신 다음, “하느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하고 대답하십니다. 하느님의 뜻, 그분의 지고의 뜻은 세상과 인류의 구원에 있습니다. 성자께서는 성부의 뜻을 이루시고자,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셨고, 말씀과 행적으로 가르치시며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이끄셨으며, 끝내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통하여 구원을 완성하신 분입니다. 

 

예수님의 하느님의 뜻 실현에 적극적으로 함께하신 분 가운데 으뜸은 성모 마리아입니다. 무엇보다도, 마리아의 품을 통하여 하느님이 사람이 되셨기 때문입니다. 성모님은 인간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하느님의 뜻이었지만,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하는 순명의 말씀으로 구원의 새로운 역사를 활짝 여신 분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마리아는 고통의 삶을 통하여 예수님의 구원사업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신 분입니다. 우리 교회는 전통적으로 마리아의 고통 가운데 일곱 가지를 선정하여 성모칠고(聖母七苦)라는 이름으로 기억합니다. 특별히 십자가의 길에서의 예수님 만남, 십자가에 못 박히심과 돌아가심 목격, 성시를 품에 안으심, 무덤에 묻으심 등을 통한 고통의 깊이는 아마도 예수님 못지않으셨을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루어진 신앙 공동체에는 성모 마리아가 늘 함께하고 계십니다. 

성모 마리아 자헌을 기념하는 오늘, 신앙인의 모범이신 성모님을 본받아, 순명으로 하느님의 뜻을 품고 살아가는 신앙인, 적극적으로 하느님의 뜻을 펼치는 신앙인, 성모님과 함께 영원한 행복 속에 머물리라는 희망을 간직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신앙인의 삶을 다지는 하루 되기를 기도합니다. 

 

 

조욱현 신부님_복음: 마태 12,46-50: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오늘 교회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을 지낸다. 이날은 단순히 역사적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의 전 생애가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된 삶이었다는 것을 묵상하는 거룩한 날이다. 
 
1. 성모 마리아의 봉헌
전승에 따르면, 성모님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는 세 살 된 어린 마리아를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했다. 어린 마리아가 성전의 계단을 오를 때 발자국마다 장미가 피어났다는 이야기는, 마리아의 삶이 하느님께 드려진 향기로운 제물임을 상징한다. 사실 성모님의 봉헌은 단순한 어린 시절의 한 사건이 아니라, 원죄 없이 잉태되실 때부터 성령의 은총 안에서 준비된 삶의 방향이었다. 
 
2. 복음 말씀의 의미
오늘 복음(마태 12,46-50)에서 예수님은 친족 관계를 넘어서는 더 깊은 가족 관계를 선포하신다.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시며 제자들을 가리켜 말씀하신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50절) 이는 피와 혈육이 아닌, 말씀을 실천하는 순종이야말로 참된 친교의 기준임을 보여준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말한다. “마리아가 복된 것은 그리스도의 어머니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였기 때문이다.”(Sermo 25,7) 즉, 마리아의 참된 위대함은 단순히 예수님을 낳으셨다는 데 있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며 끝까지 실천하셨다는 사실에 있다. 
 
3. 신학적 의미: 마리아와 교회
예수님께서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교회 안에서 모든 신자가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그리스도의 가족이 된다는 보편적 초대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이렇게 가르친다: “마리아는 믿음과 순종으로 새로운 하와가 되어, 온 인류를 위한 구원의 역사에 협력하였다.”(교회 56항) 따라서 성모님의 봉헌은 교회의 모상이며, 우리 신자 각자에게도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여 말씀을 실천하는 삶의 본보기가 된다. 
 
4. 우리의 삶에 주는 교훈
우리도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의 형제자매가 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분의 어머니가 될 수도 있다. 어떻게 가능한가? 성 아우구스티노는 이렇게 설명한다. “누구든지 아버지의 뜻을 듣고 실행하는 이는 그리스도의 어머니이다.”(Sermo 72A,7) 즉, 우리가 복음을 전하고, 다른 이들의 마음에 주님을 낳게 할 때, 우리 역시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는 것이다. 마리아께서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셔서 ‘말씀이 사람이 되신’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실천하며 세상 안에 그리스도를 드러내야 한다. 
 
5. 맺음말
오늘 마리아 자헌 기념일은 우리에게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삶”이야말로 하느님께 봉헌된 참된 길임을 가르쳐 준다. 성모님을 닮아 우리도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말씀을 통해 세상 안에 그리스도를 낳는 도구가 될 수 있기를 기도하자.

“주님, 우리가 모두 하느님의 가족으로 당신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아가게 하시며, 특히 마리아의 삶을 본받아 성모님과 같이 사랑이신 주님을 이 세상에 낳아주는 삶으로 구원을 전하게 해 주소서. 아멘!” 

 

전삼용 신부님_당신의 제단이 당신의 인간관계를 만든다 

 
 
덴마크의 황량한 바닷가 마을, 회색빛 하늘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의 얼굴에는 생기라곤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엄격한 율법에 매여 서로를 정죄하고 미워하던 이 척박한 마을에 프랑스 여인 바베트가 찾아옵니다.
그녀는 14년 동안 무보수로 헌신하다가, 어느 날 복권에 당첨되어 1만 프랑이라는 거금을 얻게 됩니다.  
 
모두가 그녀가 돈을 가지고 떠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바베트는 놀라운 선택을 합니다.
그 모든 돈을 쏟아부어 마을 사람들을 위한 단 한 번의 프랑스 정찬을 준비한 것입니다.
그녀가 준비한 최고의 음식과 와인 앞에서, 얼음장 같던 노인들의 마음이 녹아내렸습니다.
미움은 사라지고, 서로 용서하며 하나가 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재산을 다 써버린 그녀에게 "이제 가난해져서 어떡하냐"고 묻자, 바베트는 이렇게 답합니다.
"아닙니다. 위대한 예술가는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
바베트에게는 돈보다 더 중요한 '제단'이 있었습니다.
바로 '예술'이라는 제단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돈과 에너지를 그 제단에 봉헌했기에, 사람들에게 환희와 화해를 선물할 수 있었고 그 관계 안에서 천국을 맛보았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바베트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의 안방에, 당신의 심장 한가운데에 어떤 제단을 쌓고 있습니까?"
우리는 모두 무언가에 자신을 바치는 존재입니다. 어떤 이는 '돈'이라는 제단을 쌓고 자신의 모든 시간을 바칩니다.
어떤 이는 '성공'이나 '자식', 혹은 '쾌락'이라는 제단에 자신의 에너지를 쏟아붓습니다.
그리고 그 제단에서 나오는 것으로 사람들을 모으려 합니다.
돈으로 사람을 사고, 외모로 사람을 홀리고, 권력으로 사람을 묶어둡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마르지 않는 샘은 하느님뿐이십니다.
돈, 명예, 육체적 매력, 이 모든 것은 유한합니다. 우리가 잘 아는 동화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보십시오. 나무가 사과와 가지를 줄 수 있을 때 소년은 곁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무가 다 털리고 그루터기만 남았을 때, 소년은 떠나갔습니다.
여러분의 제단 위에 있는 것이 말라버리면, 그것을 보고 모여들었던 사람들도 떠나갑니다.
돈이 떨어지면 돈을 보고 모인 이들이 떠나고, 젊음이 사라지면 육체를 탐했던 이들이
떠납니다.
그런 인간관계에는 '친밀함'이 없습니다.
거래만 있을 뿐입니다.
행복을 줄 수도, 받을 수도 없는 껍데기뿐인 관계, 그것이 하느님 없는 제단을 쌓은 사람의 비극적인 결말입니다. 
 
그렇다면, 떠나지 않는 사람들, 참다운 사랑을 주고받는 '하느님 나라의 공동체'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 우리가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에 그 답이 있습니다.
성모님은 세상의 부귀영화나 헛된 우상에게 제단을 내어주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오직 하느님께만 당신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셨습니다.
당신의 몸과 마음을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제단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 제단 위로 성령께서 내려오셨고, 마르지 않는 생명의 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잉태되셨습니다.
성모님은 사람들에게 돈이나 쾌락을 주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영원한 생명이신 예수님을 주셨습니다.
그랬기에 2천 년이 지난 지금도 수많은 신앙인이 성모님을 어머니라 부르며 그분 곁에 모여듭니다. 
 
성모님의 제단은 하느님과 연결되어 있기에 결코 마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행복한 성가정을 이루고, 친밀한 공동체를 만드는 유일한 비결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 이 시간, 냉정하게 나의 제단을 점검해 봅시다.
나는 오늘 하루, 나의 뜻과 에너지를 어디에 봉헌했습니까?
구약 성경 열왕기에 나오는 사렙타의 과부를 기억하십시오.
그녀는 마지막 남은 밀가루 한 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그것은 '생존'을 위한 마지막 식량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예언자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마지막 한 줌을 자신을 위해 쓰지 않고 하느님의 사람을 위한 제단에 바쳤습니다.
자신의 생존 본능보다 하느님의 약속을 더 신뢰하며 자신을 봉헌했을 때, 성경은 "주님께서 땅에 비를 다시 내려 주실 때까지, 밀가루 단지는 비지 않고 기름병은 마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증언합니다.  
 
여러분의 인간관계는 여러분 안의 제단에 의해 결정됩니다. 나를 위해 쌓은 제단은 고독을 낳지만, 하느님을 위해 봉헌한 제단은 사랑을 낳습니다. 오늘 성모님처럼, 여러분의 의지와 욕망, 그리고 여러분의 가장 소중한 것을 하느님의 제단 위에 올려놓으십시오.
내가 내어놓은 그 자리에 하느님께서 마르지 않는 은총을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때 비로소 여러분은 가족과 이웃에게 참된 기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여러분의 곁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영원히 머물게 될 것입니다. 

 

이병우 신부님_"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12,50) 

 
'예수님의 참가족이 되자!' 
 
오늘 복음(마태12,46-50)은 '예수님의 참가족'에 대한 말씀입니다.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마태12,47) 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마태12,48) 하고 반문하시면서,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십니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12,49-50) 
 
오늘은 성모님께서 하느님께 봉헌되신 것을 기념하는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입니다. 전승에 의하면 성모님의 부모인 '요아킴과 안나'는 성모님께서 세 살 되시던 해에 성전에서 하느님께 성모님을 바쳤다고 전해집니다. 
 
하느님께 바쳐진 '하느님의 어머니요 우리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은 '예수님의 첫 제자요 참제자'이셨습니다.
예수님의 잉태 예고를 순명으로 받아들이신 후, 예수님과 함께 하시면서 끝까지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모범이 되셨고, 그래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성모님을 공경하면서 닮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들은 서로를 부를 때 세례명을 붙여서 이렇게 부릅니다. "마태오 형제(님)!" 또는 "사비나 자매(님)!"
그렇게 불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의 자녀들이고, 예수님을 따르는 참가족'이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7,21)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예수님의 참가족'이 됩시다! 그렇게 우리도 하느님께 나 자신을 봉헌하도록 합시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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