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
송영진 신부님_<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
|---|
|
“예수님께서 아직 군중에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그분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그분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있었다. 그래서 어떤 이가 예수님께, ‘보십시오, 스승님의 어머님과 형제들이 스승님과 이야기하려고 밖에 서 계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6-50)”
1) ‘봉헌’은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이 세상 모든 것의 주님이신 분과 하나가 되는 일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신 분’입니다(1코린 15,28).> 따라서 봉헌은 ‘모든 것을 바쳐서 모든 것을 얻는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로마 14,8).”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ㄱ).” 그래서 더 이상 ‘나’는 없고, 나의 모든 것 안에서 주님만 존재하시는 상태가 되는 것을 ‘봉헌의 완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나의 것’은 없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잠시 맡겨 주신 ‘주님의 것’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지상에서 사는 동안 우리가 맡은 것 가운데 일부를 조금씩 주님께 돌려드리다가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전부 다 돌려드리게 됩니다. 순교자들의 경우는 순교로써 봉헌을 완성한 분들입니다. 그리고 순교자가 아니더라도, 임종 때 자신의 모든 것을, 즉 인생 전부와 목숨을 주님께 돌려드리는 모습으로 임종을 맞이하면서 봉헌을 완성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 말은, 교회에 전 재산을 봉헌하는 것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재산을 교회에 바치는 일은 봉헌의 여러 모습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2) 성모님은 ‘봉헌’에서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신 분입니다.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루카 1,28).” 라는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은, 성모님이 하느님과 하나가 되어 있음을 하느님 쪽에서 확인해 주신 말씀이고,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라는 성모님의 응답은, 성모님 쪽에서 당신의 봉헌을 확인하신 말씀입니다. <모든 신앙인의 모범이라는 말은, 모든 신앙인이 본받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공경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말고, ‘온 삶으로’ 성모님을 본받으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3)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 라는 말씀은, 식구들이 찾아온 일을 계기로 삼아서, 당신의 참 가족이 되는 방법을, 즉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방법을 가르쳐 주신 말씀인데, 그 방법은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내 어머니처럼 하느님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만이 나의 참 가족이 된다.”로 이해됩니다.> 이 말씀은, 산상설교에 있는 다음 말씀에 바로 연결됩니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 7,21).” ‘아버지의 뜻’은 ‘모든 사람의 구원’이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을 실행한다는 말은 구원받으려고 노력한다는 뜻입니다. 믿는다고 말만 하거나 생각만 하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온 삶을 다 바쳐서’ 구원받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하늘나라는 말만(생각만) 해서는 들어갈 수 없는 나라, ‘삶’을 다 바쳐서 노력하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나라입니다. <삶을 다 바친다는 말은 글자 그대로 봉헌을 뜻하기 때문에, 신앙생활은 곧 봉헌하는 생활입니다. 봉헌은 신앙생활의 일부가 아니라 전부입니다.>
4) 봉헌의 ‘나쁜 예’를 사울 왕에게서 볼 수 있습니다. “사무엘이 말하였다.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 바치는 것을 주님께서 더 좋아하실 것 같습니까? 진정 말씀을 듣는 것이 제사 드리는 것보다 낫고, 말씀을 명심하는 것이 숫양의 굳기름보다 낫습니다.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고집을 부리는 것은 우상을 섬기는 것과 같습니다. 임금님이 주님의 말씀을 배척하셨기에, 주님께서도 임금님을 왕위에서 배척하셨습니다.’(1사무 15,22-23)” 이 말은,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지는 않고, 무엇인가를 많이 바치기만 하면 하느님을 잘 섬기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던 사울 왕을 사무엘 예언자가 꾸짖은 말입니다. <참된 봉헌은, 말씀에 순종하면서 말씀대로 사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하나니아스와 사피라 부부’가 대표적으로 ‘봉헌의 나쁜 예’가 됩니다(사도 5,1-11). 그 부부는 재물에 대한 탐욕과 전 재산을 봉헌했다는 칭찬을 듣고 싶은 명예욕을 동시에 채우려고, 일부만 바치면서도 전부를 바친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들은 봉헌을 한 것이 아니라 죄만 지었습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게시판 운영원칙
Help Desk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