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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예루살렘 멸망 예고는 ‘나’를 향한 경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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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루카 19,41-44)”
1) ‘예루살렘 멸망 예고 말씀’은 예루살렘이라는 특정 도시 하나만의 멸망을 예고하신 말씀이 아니라, ‘회개하지 않는 인간들’의 멸망을 예고하신 말씀입니다. <사실, 예루살렘의 멸망이라는 옛날의 사건은, 교훈이 되긴 하지만, 오늘날의 우리에게는 별로 중요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구원입니다.> 예수님께서 우셨다는 것은, 회개하기를 거부하는 인간들이 멸망을 향해서 가는 것을 안타까워하시는 심정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하려고 오신 분이지만,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주님, 구원받을 사람은 적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너희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도록 힘써라.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들어가려고 하겠지만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루카 13,23-24)” 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면서 구원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큰 기쁨을 드리는 사람들이고, 믿음도 거부하고 회개도 거부하면서 멸망을 향해 가는 사람들은 예수님께 큰 슬픔을 드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나’를 보시면서 기뻐하실까? 아니면 눈물을 흘리실까?>
2) 앞의 13장에도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두고 한탄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예언자들을 죽이고 자기에게 파견된 이들에게 돌을 던져 죽이기까지 하는 너!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 내가 몇 번이나 너의 자녀들을 모으려고 하였던가? 그러나 너희는 마다하였다. 보라, 너희 집은 버려질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하고 말할 날이 올 때까지, 정녕 나를 보지 못할 것이다(루카 13,34-35).” “암탉이 제 병아리들을 날개 밑으로 모으듯”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심정을 잘 나타냅니다. 철없는 어린 자녀가 고집을 부리면서 멸망을 향해 가는 것을 보는 부모의 심정......
3)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은, “지금이라도 회개한다면”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은 죄인들이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그러나 그 ‘기다림’은 ‘무한정’이 아닙니다. 당신이 정한 심판의 날이 닥치기 전까지만 기다려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날이 언제인지 모릅니다. 모르니까 회개는 ‘지금’ 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라는 말씀은, 안 보여서 못 본다는 뜻이 아니라, 보이는데도(볼 수 있는데도) 안 본다는 뜻입니다. 회개할 줄 몰라서 회개를 못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구원에 관심이 없어서, 또 회개하는 것이 싫어서 안 하는 사람만 있을 뿐입니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라는 말씀은, 표현만 보면, 하느님께서 찾아오신 것을 몰라서 사람들이 회개를 못한 것을 나타내는 말씀으로 생각하기가 쉬운데, 그것은 아니고, 이 말씀의 뜻은, “하느님께서 찾아오셨는데도 믿기를 거부하고 맞아들이기를 거부했기 때문이다.”입니다. 이 말씀은, 당신이 복음을 선포했는데도 사람들이 믿지 않은 것을 꾸짖으신 말씀입니다.
4) 하느님께서 찾아오셨다는 말에서, ‘나인’ 고을의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이야기가 연상됩니다. “주님께서는 그 과부를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시어 그에게, ‘울지 마라.’ 하고 이르시고는, 앞으로 나아가 관에 손을 대시자 메고 가던 이들이 멈추어 섰다.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젊은이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그러자 죽은 이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하기 시작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그 어머니에게 돌려주셨다. 사람들은 모두 두려움에 사로잡혀 하느님을 찬양하며, ‘우리 가운데에 큰 예언자가 나타났다.’, 또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다.’ 하고 말하였다(루카 7,13-16).”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은,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을 찾아오셨음을 나타내는 표징입니다.
5)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권고합니다. “언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주님께서 나를 구원하려고 ‘나에게 오신 것’과 또 온갖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에 감사드리는 것은, 신앙인의 기본자세입니다. 바로 그 감사에서 진실한 회개가 시작됩니다. <회개하기를 싫어하거나 거부하면서 예수님의 반대쪽으로만 가는 사람들은 아마도 감사할 줄은 모르고 끊임없이 요구하기만 하는 사람들일 것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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