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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테라노 대성전 봉헌 축일 (평신도 주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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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달라스 교구에서 마련한 피정에 다녀왔습니다. 피정의 주제는 ‘영적인 여정’이었습니다. 그 여정은 깨달음에서 출발해 열정과 정화를 거쳐, 마침내 하느님과의 일치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절대 쉽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라고 하신 말씀처럼, 영적인 여정에는 고통의 순간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은 파멸의 신호가 아니라 성숙으로 초대하는 신비의 문입니다. 피정 중 가장 마음에 남은 말은 “하느님을 용서할 수 있다”라는 말이었습니다. 처음엔 낯설게 들렸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용서를 청하는 건 익숙하지만, 하느님을 용서한다는 발상은 도무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삶에는 원하지 않았던 고통이 찾아옵니다. 성실히 살아왔는데도 병과 시련이 닥치고, 기도했는데도 응답이 느껴지지 않을 때, 우리는 하느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바로 그때, ‘하느님을 용서한다’라는 말은 하느님께 등을 돌리는 대신, 그분께 다시 다가가는 또 다른 방식의 신앙 고백이 됩니다. 당뇨로 한쪽 다리를 잃은 자매님, 기억을 잃어가며 손끝도 움직이지 못하는 형제님. 그분들의 침묵 속에는 깊은 신앙의 울림이 있습니다. “하느님, 왜 나입니까?”라고 말하는 대신 “하느님, 이 고통 속에서도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하는 마음, 그것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신앙의 형상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라고 하신 순간처럼 말입니다. 십자가 요한 성인은 인생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영혼의 어두운 밤’이라 불렀습니다. 그 밤은 단순히 괴로운 시간이 아니라, 은총이 새벽처럼 스며드는 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겟세마니의 밤을 통과하신 후 부활의 영광으로 나아가셨습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지만,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썩음 속에서 새싹이 돋아나듯, 신앙의 깊이는 어둠 속에서 더욱 단단해집니다. 우리 본당의 역사를 돌아보면 이 말이 그대로 느껴집니다. 48년 전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지금 아름다운 성전과 공동체는 그 모든 어려움 속에서 싹튼 믿음의 결실입니다. 돌 하나하나, 벽돌 한 장마다 눈물과 기도가 스며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은총의 흔적입니다. 오늘 축일로 지내는 라테라노 대성전은 “모든 성당의 어머니요 으뜸”이라 불립니다. 그러나 그 대성전의 의미는 단순히 건축의 위대함에 있지 않습니다. 교회의 참된 중심은 돌과 벽이 아니라, 그 안에 살아 있는 신앙의 숨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그분이 말씀하신 성전은 당신의 몸, 곧 하느님과 인간이 만나는 자리, 사랑이 머무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이 바로 하느님의 성전입니다. 하느님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오늘날 교회의 위기는 제도의 부족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자비와 사랑이 메마른 영혼, 관계의 단절, 공동체의 무관심에서 비롯됩니다. 성직자는 섬김의 본을 보이는 발 씻김의 예수님을 닮아야 하고, 신앙인들은 십자가를 함께 지고 간 키레네 사람 시몬처럼, 또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드린 베로니카처럼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은 평신도 주일이기도 합니다. 성당의 벽돌이 모여 하나의 집을 이루듯, 교우 한 사람 한 사람이 교회의 ‘살아 있는 돌’입니다. 서로 다른 돌이 모여 하나의 아름다운 성전을 이루듯, 우리의 다양함이 교회의 풍요로움이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각자의 자리에서 섬기고 봉헌하는 삶을 통해, 우리를 천상 예루살렘을 향한 거룩한 건축물로 세워 가십니다.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그 잎은 시들지 않으며 과일은 끊이지 않는다. 그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라는 말씀처럼 성전에서 흘러나온 은총의 물이 우리의 삶에도 흘러넘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바로 하느님의 성전이고, 우리 안에 하느님의 영이 머무르심을 기억합니다. 그렇기에 오늘의 이 봉헌 축일은, 벽돌의 축일이 아니라, 우리 영혼의 봉헌 축일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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