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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목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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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자성사를 드렸던 어르신이 있습니다. 집에서도 했었고, 요양병원에서도 했었습니다. 어르신은 자동차도, 집도 나중에는 교회에 기증하고 싶다고 하였습니다. 한동안 연락이 없어서 잊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에 어르신이 하느님의 품으로 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족들이 성당에 알리지 않아서 늦게 알았습니다. 가족들끼리 추도 예배를 하겠다고 해서, 본당에서는 미사 후에 연도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어르신께 계속 봉성체 봉사를 했던 자매님이 유족들에게 연락했습니다. 고인께서 생전에 성당에 열심히 다니셨고, 신부님도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하고 싶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유족들은 마음을 바꾸었습니다. 가족끼리 하려던 추도 예배를 포기하고, 신부님이 오셔서 장례미사를 집전해 주실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김정자 뮤리엘’ 어르신은 생전에 열심히 다니셨던 성당의 전례에 따라서 장례미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한 자매님의 뜨거운 열정과 사랑이 있었기에 어르신을 위한 장례미사를 봉헌할 수 있었고, 많은 분의 기도 속에 천상의 여정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장지까지 함께 해주신 교우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고인을 위한 장례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가족을 만나 이야기해 주었던 봉사자에게도 감사드립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우리는 흔히 평화를 갈등이 없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하신 평화는, 거짓된 평화를 깨뜨리고 진리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오는 평화입니다. 악의 본질을 “생각하지 않음”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곁에 있는 사람이라도, 심지어 가족이라도, 악을 따를 수는 없습니다. 악에 머무는 평화는 참된 평화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코로나 시대를 살았습니다. 그때 한국이 비교적 잘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추적, 검사, 치료 덕분이었습니다. 확진자를 추적하고, 검사하며, 치료함으로써 사회 전체를 지켜냈습니다. 신앙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죄를 추적하고, 양심으로 분별하며, 단호히 끊어낼 용기가 필요합니다. 예수님께서 눈이 죄를 짓게 하면 빼어내고, 손이 죄를 짓게 하면 잘라버리라는 과격한 말씀을 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죄를 방치하면 결국 공동체 전체가 병들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번 장례미사를 봉헌하면서 조동화 시인의 ‘나 하나 꽃피어’라는 시가 떠올랐습니다. “나 하나 꽃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피고 나도 꽃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한 사람의 작은 사랑이, 한 사람의 작은 진실이 세상을 꽃밭으로 바꿀 수 있다는 시입니다. 장례미사를 가능하게 했던 자매님의 용기처럼, 우리의 작은 사랑이 교회를 새롭게 하고 공동체를 살립니다. 오늘 화답송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행복하여라! 악인의 뜻에 따라 걷지 않는 사람, 죄인의 길에 들어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오히려 주님의 가르침을 좋아하고 밤낮으로 그 가르침을 되새기는 사람.” 참된 평화는 악을 방관하지 않고 사랑으로 멈추는 데서 옵니다. 그 사랑이 곧 우리 공동체를 지키는 힘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여러분이 죄에서 해방되고 하느님의 종이 되어 얻는 소득은 성화로 이끌어 줍니다. 또 그 끝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죄가 주는 품삯은 죽음이지만, 하느님의 은사는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받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평가할 때 앞모습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오히려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 남긴 뒷모습, 곧 그의 흔적과 기억이 더 중요합니다. 교회가 살아있는 이를 성인품에 올리지 않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시간이 흘러도 변치 않는 사랑과 진실함이 있을 때, 비로소 거룩함이 드러납니다. 우리가 욕심과 이기심을 버리고, 사랑과 진실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뒷모습은 하느님께서 기뻐하실 거룩한 흔적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거짓된 평화를 깨뜨리시고, 참된 평화로 우리를 이끄십니다. 우리의 작은 용기와 진실함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 될 것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의 말과 행동이 욕심이 아니라 사랑과 진실에서 나오기를, 그래서 우리의 뒷모습이 하느님 앞에 부끄럽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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