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4일 (금)
(녹)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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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수요일 제1독서 (로마6,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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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로마노 [rlawhddjq] 쪽지 캡슐

2025-10-22 ㅣ No.185741

 

 

연중 제29주간 수요일 제1독서 (로마6,12-18)

 

"형제 여러분,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여 여러분이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12) 그리고 여러분의 지체를 불의의 도구로 죄에 넘기지 마십시오." (13)

 

로마서 6장의 전반부인 1-11절은 사도 바오로가 성화(聖化)의 근거로서의 그리스도와의 일치와 죄에 대한 죽음을 주제로 논증했다.

즉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은총으로 죄에 대해 죽은 자는 다시는 죄에 머무를 수 없으며, 마땅히 의로움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했던 것이다.

 

이제 이어지는 후반부인 로마서 6장 12-23절에서는 그리스도의 은총을 얻어 입은 성도로서 반드시 요구되는 자세인 거룩한 삶에 이르는 성화(聖化)를 다시 촉구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앞의 6장 1-11절과 내용상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굳이 구분하자면, 앞은 이론적 성격이 강하고, 뒤는 실천적 권고의 내용에 치중하고 있다.

 

이중에서 로마서 6장 12-14절은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새 생명안에 살아가고 있는 성도들에게 지체를 의로움의 도구로 바치라고 강력하게 명령하는 부분이다. 이것은 죄의 지배 아래 있는 자에게 하는 명령이 아니다.

 

이것은 이미 죄에 대해 죽고, 더 이상 죄가 지배하지 못하는 새로운 신분이 된 성도에게 옛 죄가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라는 권고는, 새 생명을 얻은 자유인으로서의 특권과 권리를 향유하라는 아주 적절한 호소라고 할 수 있다.

 

로마서 6장 12절에서 '지배하여'로 번역된 '바실류에토'(basilleueto; reign)는 원형 '바실류오'(basilleuo)의 현재 명령형이며, 기본적 의미는 '다스리다', '지배하다', '왕노릇하다', '왕이 되다'등이다.

 

강한 금지 명령어 '메'(me; not)과 더불어 쓰였는데, 이것은 죄가 성도들에 대해 그 지배력을 상실하기는 했지만, 다시 다스리려고 계속 유혹할 때 새 생명으로 사는 자유인의 특권을 이용해서 그 지배(다스림)를 허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이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이제 성도들은 죄의 요구를 얼마든지 거부할 수 있고, 또 그렇게 해야 한다. 이것을 위해서는 죄에게 일체의 기회를 주는 일이 없어야 한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여전히 죄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지배하게 하거나 통제하게 내버려둔다면, 그는 은총을 헛되이 받은 것이다.

죄는 이미 상실한 자신의 통치 영역을 회복하고자 안간 힘을 쓸 것이다. 로마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죄'를 '헤 하마르티아'(he hamartia; sin)로 표현하면서 하나의 위격을 가진 실체처럼 나타낸다.

 

개는 자신이 토한 것을 다시 주워서 먹고, 돼지는 그 몸을 깨끗하게 씻어 주어도 다시 더러운 진창에 뒹군다(2베드2,21).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것이 비단 개나 돼지만의 문제일 수가 없다는 점이다. 영적인 의미에서 우리도 그렇게 개나 돼지처럼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죄에 대해 죽은 우리가 여전히 죄로 하여금 자신의 몸의 지체를 마음대로 지배하게 한다면, 이것은 자유인이 다시 노예의 비참한 삶을 사는 것과 마찬가지다.

 

'여러분의 죽을 몸을'

 

이것은 단순히 장차 소멸하여 없어질 육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죄는 인간의 육신만이 아니라 그 영혼까지도 장악한다.

그래서 이러한 사실이 본문에 '몸'으로 번역된 '소마티'(somati)의 원형 '소마'(soma; body) 전인(全人)을 나타내는 데도 쓰이며, 특히 죄와 죽음에 종속된 사람을 나타낼 때 쓰인다는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로마6,6; 8,13; 콜로2,11).

 

본절에서도 죄가 지배하는 인간의 상태가 바로 영적으로 죽은 상태임을 보여주기 위해 '죽음'이란 표현과 더불어, 죄와 죽음에 종속된 인간을 나타낼 때 흔히 쓰이는 '몸' 즉 '소마'(soma)란 표현을 사용했다.

 

'그 욕망에 순종하는 일이 없도록'

 

이것은 우리 성도중에 누구든지 죄로 하여금 자신의 몸을 지배하고 통제하도록 내버려 둔다면, 필연적으로 그는 욕망에 순종(복종)하게 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욕망'과 '순종'을 나타내는 두 단어를 좀 보자. 먼저 '욕망'으로 번역된 '에피티미아이스'(epithymiais)는 '사욕'(邪慾), '동경'등을 의미하는 '에피티미아'(epithymia)의 여격복수이다.

 

초기 그리스도 문학에서는 '에피티미아'라는 단어는 중립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가 후에 윤리적으로 부정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는데, 이것이 재물에 대한 잘못된 욕망을 나타내는 데 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70인역(LXX)에서는 주로 히브리어 '아와'(awa)와 '하마드'(hamad)의 역어로 사용되었으며, ① 도덕적으로 평범한 욕망(신명12,20),  ② 칭찬할 만한 욕망(창세31,30; 이사52,8), ③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악한 욕망(민수11,4) 등을 나타낸다.

 

이처럼 구약에서는 긍정적 의미로 쓰인 적이 있으나, 본절에서 사도 바오로는 '에피티미아'를 인간을 지배하는 죄에 대한 하나의 표현으로 사용하였다.

 

사도 바오로에게 있어서 이것은 하느님을 떠나서 죄의 지배 아래 처한 인간의 육체 속에 휘몰아치는 힘이다. 이 '에피티미아'는 모든 방면에서 나타날 수 있는데, 성적 욕망, 물질적 향유, 타인의 재물을 탐내는 것 등이다.

 

우리 성도들은 이것이 자신에게 영향력을 행사하도록 버려두어서는 안된다. 육체의 욕망은 언제든지 성령의 욕망과 대립되기 때문에, 죄가 자신의 몸을 지배하도록 방치하는 이들은 항상 성령을 거스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순종'으로 번역된 '휘파쿠에인'(hypakuein; you should obey)는 휘파쿠오'(hypakuo)의 현재 부정사이며, 기본적으로 '말을 듣다', '복종하다', '따르다' 등을 의미한다.

 

죄가 우리의 죽을 몸을 지배하려는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그의 정욕, 혹은 악한 정욕에 복종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것들과 맞서서 싸워야 한다.

 

죄의 노예였던 이전에는 맞설 힘이 없었지만, 그리스도와 일치하여 죄와 관계가 끊어진 이제는 충분히 맞설 수 있고, 또 물리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것은 바로 우리안에 성령이 계시기 때문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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