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3일 (목)
(녹) 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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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9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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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5-10-21 ㅣ No.185735

얼마 전 반 모임에서 휴가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제가 1013일에 출발해서 117일에 돌아온다고 하니, 한 형제님이 그날 딸이 한국으로 간다고 말씀하시더군요. 그 딸은 태권도 선수로 한국의 전국 체전에 참가한다고 했습니다. 가는 길이 같아 동행하게 되었습니다. 또 다른 자매님은 117일에 어머니가 달라스로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좌석을 확인해 보니 제 자리와 가까웠습니다. 따님이 이야기하기를 손에 묵주 들고 기도하는 분이 저희 어머니입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저는 사제복을 입고 있을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14시간 넘는 긴 여정이지만, 하느님께서는 가는 길과 오는 길에 동행할 수 있는 분들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지루하지 않고 은총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저는 언제부턴가 장거리 비행이 힘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강론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정리하다 보면, 같은 시간이지만 무료한 시간이 아니라 은혜로운 시간이 됩니다. 우리가 어떻게 시간을 쓰느냐에 따라 지루한 시간이 될 수도 있고, 은총의 시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어제에 이어 다시 한번 깨어 준비하는 종의 이야기를 하십니다. 그런데 그 깨어 있음은 단순히 일을 미리 하는 것, 효율적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원 버스를 피하려고 일찍 걷는 것도, 학교나 직장에서 과제를 남보다 빨리 끝내는 것도 세상에서는 칭찬받을 수 있지만, 주님이 말씀하시는 깨어 있음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성과와 능률이 아니라, 가치와 의미를 바라보는 삶입니다. 도시 빈민 사목을 오래 해 온 제 친구 신부님이 있습니다. 신부님은 큰 성과를 내는 사목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이들과 밤새도록 이야기를 나누고, 추운 겨울 광장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뜨거운 여름에도 복직을 호소하는 이들과 함께 걸었습니다. 몸은 예전 같지 않아도 눈빛은 여전히 맑고, 가슴은 뜨겁습니다. 이런 모습이야말로 깨어 있는 종의 모습일 것입니다. 오늘 독서를 읽으면서 문득 한용운 시인의 시 복종이 떠올랐습니다.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이 시의 주어를 하느님으로 바꾸어 읽어보면 신앙인의 고백이 됩니다. 우리는 자유를 아는 사람들이지만, 그 자유를 하느님께 기꺼이 내어드릴 때 참된 자유가 됩니다. 억지로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드리는 복종이기에, 그것은 더 달콤한 자유입니다.

 

순교성인들은 행동으로 깨어 있었습니다. 기도로 깨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박해의 순간에도 담대할 수 있었고, 주어진 십자가를 충실히 질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그분들에게 천상의 영광을 허락하셨습니다. 고인이 되신 저의 부모님 역시 늘 감사하며, 기도하며, 기쁘게 사셨습니다. 신앙의 모범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부모님께서 지금 천상에서 빛나는 별이 되셨으리라 믿습니다. 우리도 그분들처럼 깨어 믿음을 지키며 살아가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시는 그리스도를 삶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각 시대와 문화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그리스도를 표현했듯이, 오늘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그분을 드러내야 합니다. 등불을 들고 예수님을 맞이하는 것이 곧 우리의 삶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라틴어 격언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Hodie mihi, cras tibi”(오늘은 나, 내일은 너). 우리가 언제 주님 품에 갈지 모르니 늘 깨어 준비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성과보다 의미를, 능률보다 가치를 바라보는 사람, 그래서 주님 앞에 언제든 담대하게 설 수 있는 사람이 깨어 있는 종입니다. 오늘 하루, 우리도 등불을 밝히며 예수님을 맞이하는 종이 되면 좋겠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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