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6일 (목)
(녹) 연중 제28주간 목요일 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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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믿지 않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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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홍기 [justice24] 쪽지 캡슐

2025-10-15 ㅣ No.185577

우리는 교회 문헌에 대해

다음과 같은 생각들을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해당 문헌이 훌륭하다고 생각도 하지만

우리 사회 맥락에서는 때로는 이러한 교회의 책들이나 문헌이 

우리에게 왜 다가오지 않는가

즉 우리 현실에서 말입니다.

우리가 맞서고 있는 사람들은 친일파가 많이 있고

가톨릭 교회 안에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을 고의로 거부하는 이교도들과 맞서고 있습니다.

 

내가 믿지 않는 하느님

후안 아리아스 저

이 책은 오늘 우리가 우리 사회를 바라보면서

오늘에 적용해 보아야 할 많은 관점들을 제공하고 있고

우리는 하느님을 믿는다는것이 어떠한 삶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사랑이 전제 되어 가해자의 이익에 비겁하게 편들면서

그것이 사랑이라고 하면서

사회적 약자나 피해자들을 빈손으로 돌려 보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우리 나라가 우리의 나라가

과연 그렇게 자랑스러운 나라인가에 대해

많은 회의적인 시각을 함께 공유해야만 하는

그런 물음에 직면하게 되기도 하고

그런 물음을 이 나라에 던지기도 해야 하는

매우 고통스러운 현실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친일파들의 활동에 대해

아빌라의 대 데레사

그리고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적힌

교회 문헌 속의 사랑은

중대 재해가 발생하는 노동 현장에서 매일 있는 사람들이

가져야 하는 

혹은 국적이 회복되지 않은 고려인들이 가져야 하는 사랑의 마음이다라는 것에 대해

친일파가 그런 마음을 교회 문헌을 통해 인용하여 가르치려 드는 것은

고해성사

혹은 세례 성사가 아니면

구원에 이를 수 없을 가능성은 매우 높다고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런 하느님을 믿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친일로의 회유의 길에는 늘 그러한 사랑이 전제 되고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회의 모든 불의 앞에서 사랑을 내세워

기득권은 그 기득권을 더욱 불려 나가고

피해를 입은 이들이 지속적으로 그 피해가 누적되는 세상이

사랑이 구현되고 실천된 사회이다라는 것은

하느님 법정에서 반드시 패소의 쓴 잔 속에

지옥에 내쳐질 뿐

하느님께서는 살아 계시며

살아계신 하느님께서는 보복하시는 하느님이시다라는 것은

우리가 보복하지 않지만 하느님께서 직접 하신다는 점에서

우리는 그러한 사랑이 전제 되는 용서를 말하지만

친일파는 누적하여 자기들의 죄를 더해 나가고 있을 때

그것이 친일파를 위한 사랑이라고 말하는 것은

배교자가 되는 것이며

그들은 파문되어야 마땅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의 문헌을 인용할 때

때와 장소와 모든 것을 고려해서 인용해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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