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4일 (화)
(녹) 연중 제28주간 화요일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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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참 쿨(cool)한, 지혜롭고 자유로운 삶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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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08:42 ㅣ No.185530

2025.10.14.연중 제28주간 화요일                                                          

로마1,16-25 루카11,37-41

 

 

참 쿨(cool)한, 지혜롭고 자유로운 삶

“무지에 대한 답은 자선과 나눔의 사랑뿐입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여 당신을 따르며

 당신을 경외하고 당신 얼굴을 찾으리이다."(다니3,41)

 

“멋지다”라는 말을 들으면 모두가 좋아할 것입니다. 굳이 설멍하지 않아도 좋은 기분일 것입니다. “멋지다”라는 참 좋은 우리말 표현은 영어로 하면 무엇일까요? 표현할 말이 없을 것입니다. 얼마전 “쿨(cool)하다”를 “멋지다”로 해석한 글을 읽으며 참 적절한 표현이라 무릎을 쳤습니다. “쿨(cool)”을 찾아보니, <1.시원한, 2.차분한, 침착한, 3.냉담한, 쌀쌀맞은>으로 나와 있었습니다. 그래도 쿨하면 멋진으로 알아듣고 싶습니다. 그러니 “멋진 사람”을 “쿨한 사람”으로 표현하고 싶어집니다.

 

오늘 복음의 영문주석을 읽다가 “훌(fool)”이 나와 찾아보니 형용사로 “바보같은”, “어리석은”으로, 명사로는 “바보”로 설명되어 있었습니다. 쿨(cool)과 훌(fool), 비슷한 발음 같은데 극단적 대조를 이룹니다. 쿨한 사람은 멋진 사람을, 훌한 사람은 바보같은 어리석은 사람을 뜻합니다. 쿨한 사람이라 하면 누구나 좋아할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동방영성에서 강조하는 마음의 고질적 병인 무지에 대해 나누고 싶습니다. 불가의 탐진치(탐욕, 성냄, 어리석음)라는 삼독이 무지의 내용입니다. 이런 무지에 눈멀면 제모습, 제정신을 잃습니다. 인간의 모든 불행이나 재앙은 무지의 병에서 기인합니다. 무지의 병, 무지의 죄, 무지의 악이라고 합니다. 무지의 신비요 무지한 사람에게는 백약이 무효입니다. 

 

무지의 광신이나 맹신에 빠지면 답이 없습니다. 바로 극단적 이념이나 신념에 빠지면 그러합니다. 바로 극우와 극좌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이 모두가 무지의 소치입니다. 정말 무지의 병에는 답이, 약이 없어 보입니다. 무지한 사람은 알려줘도 모릅니다. 주변에서는 다 자기를 아는데 본인만 모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래서 저는 미사시작하자마자 바치는, 끝기도 시작하자마자 바치는 참회 기도문중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대목을 참 좋아합니다.

 

인도의 성자 간디가 훌륭한 것은 “I was wrong”(내가 잘못했다)의 명수였기 때문이란 말을 잊지 못합니다. 다윗의 감쪽같이 우리아를 죽게하고 그의 아내 바세바를 찾이했을 때 책임을 추궁하던 나탄 예언자에게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다윗의 고백은 얼마나 쿨한지요! 제 잘못을 뉘우치는 참된 회개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겸손에 자기인식입니다. 이런 회개의 여정과 함께 겸손하고 지혜로워지고 자유로워짐으로 무지의 치유요 무지로부터의 해방입니다.

 

그 누구도 멋지고 지혜롭고 자유로운 쿨한 사람이 되고 싶지, 어리석고 무지한 훌한 사람이 되고 싶어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대조를 복음과 제1독서에서 발견합니다. 바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이 쿨한 멋지고 지혜롭고 자유로운 분이라면, 바리사이는 꽉 막힌 훌한 어리석고 무지하고 자유롭지 못한 사람을 대표합니다. 

 

예수님께서 식사전에 손을 씻지 않는 것에 놀랐다는 사실에 그가 얼마나 무지에 눈먼 근시안적 사람인지 감지됩니다. 예수님의 답변이 무지를 깨고 깨달음의 지혜에 이르게 하는 참 쿨한 명품답변입니다. 단숨에 읽혀지는 예수님 말씀에 지혜와 사랑이, 자유로움이 가득담겨 있습니다.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분께서 속도 만들지 않으셨느냐? 속에 담긴 것으로 자선을 베풀어라. 그러면 모든 것이 깨끗해 질 것이다.”

 

마음이 깨끗하면 밖은 저절로 깨끗해져 참으로 자유로워집니다. 속의 탐욕과 사악은 그대로 놔두고 아무리 겉을 깨끗이 해야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느님은 물론이고 사람도 결코 속일 수 없으니 결국은 드러나고 알아챕니다. 예수님이야 말로 최고의 지혜의 스승입니다. 과연 나는 예수님쪽에 속한 쿨한 멋진 사람인지, 혹은 바리사이쪽에 속한 훌한 어리석은 사람인지 거울처럼 비춰줍니다. 표리부동의 위선의 어리석은 삶이요, 겉과 속이 같은 진실하고 정직한 삶이 진정 무지에서 해방된 지혜롭고 자유로운 삶입니다. 

 

부단한 사랑의 나눔으로, 탐욕과 사악을 비워내는 청소로 속을 깨끗이 할 때 겉은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속이 깨끗하면 겉은 저절로 깨끗해지니, 좋은 옷 입지 않고, 화장하지 않아도, 성형수술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을 닮아 내면의 참됨과 선함과 아름다움은, 내면의 그윽하고 은은한 향기는 겉으로 표현되기 마련이며 기품있는 모습으로 드러날 것입니다. 

 

속과 겉이 같이 깨끗할 때 자존감 높은 삶에, 무엇에도 걸림이 없는 자유로운 삶, 행복한 삶, 내적 부요의 삶을 살것입니다. 무지한 사람들의 무지를 일깨우는 참으로 쿨한 사도 바오로의 열화와 같은 설교 로마서 일부만 소개합니다.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거나 그분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우둔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

 

세상에 똑똑한 바보들은 널려 있습니다. 지식과 지혜는 함께 가지 않습니다. 곳곳에 유혹은 널려 있고 무지의 탐욕은 호시탐탐 기회를 엿봅니다. 지혜로운 멋진 삶을 살 것인가? 무지의 어리석은 탐욕의 삶을 살 것인가? 역시 삶은 선택입니다. 저절로 참나의 성인이 되지 않습니다. 아무도 무지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광야인생 참나의 성인이 되느냐, 세상것들의 탐욕에 중독되어 악마가, 폐인이, 괴물이, 짐승이 되느냐? 순전히 은총과 더불어 내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니 참 좋은 수행의 의식적 선택과 노력의 훈련, 습관화가 얼마나 결정적으로 중요하고 본질적인지 깨닫습니다. 

 

정말 필요한 평생공부인 하느님을 알고 참나를 아는 공부가 깊어갈수록 주님을 닮아 찬미와 감사, 기쁨과 평화, 겸손과 온유, 지혜와 자비, 순수와 자유의 사람이 되어 갈 것입니다. 주님의 날마다의 참 좋은 선물인 미사은총이 우리 모두 이렇게 살도록 도와 주십니다.

 

"인간이란 하나의 숨결 같은 것,

 지나가는 그림자, 그의 날들이외다."(시편144,4).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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