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28일 (일)
(녹)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너는 좋은 것들을 받았고 라자로는 나쁜 것들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제 여기에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초를 겪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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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5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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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5-09-24 ㅣ No.185047

어릴 적에 배운 동요가 하나 떠오릅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김 사랑. 그 이름 아름답구나.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박 장군. 그 이름 씩씩하구나.”

이 노래는 아이들이 자기 이름을 통해 나는 누구인가를 소개하는 단순한 노래이지만, 사실은 인간 존재가 끊임없이 묻는 근본적인 질문을 담고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그리고 상대방에게는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묻습니다. 영화 올드보이의 주인공도 자신을 괴롭히는 이에게 묻습니다. “넌 누구냐?” 철학자 프로타고라스는 인간을 만물의 척도라 했습니다. 생각할 수 있고, 기억할 수 있으며,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 가는 존재이기에 인간은 스스로와 세상에 질문을 던지고 답하려 합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는 다른 시각을 제시합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유혹에 흔들리고, 시기와 질투로 상처받으며, 병들고 죽어야 하는 나약한 인간을 돌보시는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살아온 길을 돌이켜 보아라. 씨앗을 많이 뿌려도 얼마 거두지 못하고, 먹어도 배부르지 않으며, 마셔도 만족하지 못한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빌로니아 포로 생활 속에서 묻습니다. “왜 우리는 끌려왔는가? 왜 성전이 파괴되었는가? 왜 신앙은 꽃피우지 못했는가?” 그 답은 하느님께서 무심하셔서가 아니라, 오히려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회개를 기다리셨기 때문이었습니다. 백성은 눈물 속에서 잘못을 성찰했고, 다시 하느님의 말씀을 기억하며 실천했습니다. 그 회개와 눈물이 결국 하느님의 자비와 만나 꽃을 피우게 되었고, 마침내 페르시아 왕의 은총 속에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인간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으로는 풍요로워 보여도 하느님을 잊은 삶은 만족을 주지 못합니다. 구멍 난 주머니에 돈을 넣는 것처럼 헛될 뿐입니다. 우리의 눈물과 회개는 하느님을 향할 때만이 참된 열매를 맺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헤로데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이렇게 말합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고 싶어 했습니다. 그가 들은 예수님의 이야기는 권력이나 명예, 재물에 관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미 그에게 넘칠 만큼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신 그는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겁니다. “밀알 하나가 썩어야 많은 열매를 맺는다.” “건강한 이에게는 의사가 필요 없고, 병든 이에게 필요하다.”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다.” 헤로데는 그 이야기에 호기심을 가졌지만, 결국 예수님을 제대로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가진 것, 집착하는 것에 매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은 그물을 버리고, 배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 안에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참된 행복, 꺼지지 않는 불꽃 같은 희망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철학자들이 말한 것처럼 끊임없이 질문하는 존재입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인간학적이고 동시에 신학적인 질문입니다. 프로타고라스가 말한 만물의 척도라는 말은 인간의 위대함을 말하지만, 동시에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나약한 인간을 기억하시고 돌보시는 하느님이 계시지 않는다면 그 척도는 허무 속으로 사라집니다. 결국 인간은 질문 속에서 자기 한계를 발견하고, 그 한계 속에서 하느님의 자비를 체험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버지께 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질문은 결국 예수님을 통해 답을 얻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사는지, 어떻게 참된 행복에 이를 수 있는지는 주님 안에서 비로소 온전히 밝혀집니다.

 

오늘 우리는 다시금 묻습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세상의 이름, 권력, 재물은 잠시 빛나다 사라지는 그림자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우리를 기억하시고 사랑하신다는 그 사실 안에서 우리는 참된 정체성을 찾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율법의 완성이다.” 우리의 삶을 사랑의 계명 위에 세워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의 삶은 구멍 난 주머니가 아니라, 열매 맺는 밭이 될 것입니다. 꺼지지 않는 모닥불처럼 끝까지 빛과 온기를 나누는 삶이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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