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25주간 수요일
“ 길을 떠날 때에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지팡이도 여행 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지니지 마라.” 루카 9, 3
아침 출근길, 가방을 최대한 가볍게 하고 문을 나섰습니다. 꼭 필요하다고 믿던 것들을 몇 가지 내려놓았을 뿐인데 발걸음이 이상하리만큼 가벼웠습니다. 그때 떠오른 말씀,
“아무것도 가져가지 마라.”
루카 9장 1–6절의 장면은 마치 오늘 내 삶의 문 앞에서 다시 시작되는 과제처럼 다가왔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십니다. 그 권한은 밖에서 임시로 빌려온 증표가 아니라, 우리 존재 깊은 곳에 이미 새겨진 빛을 깨워 주는 열쇠입니다. 누군가가 내게 “이미 네 안에 있다”고 일깨워 줄 때, 우리는 비로소 두려움의 그림자를 넘어 자기 삶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권한은 소유가 아니라 깨어남입니다. 깨어난 사람은 증명하느라 소란스럽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이 누구인지 기억하고, 그 기억에서 흘러나오는 힘으로 살아갑니다.
이어지는 파견의 지침은 낯설 만큼 단순합니다. 지팡이, 보따리, 빵, 돈, 여벌 옷—하나하나가 삶의 안전장치처럼 보이지만, 동시에 마음을 무겁게 만드는 연결고리이기도 합니다.
지팡이를 내려놓는 일은 의존의 습관을 놓는 연습이고, 보따리를 두고 가는 일은 과거의 사연을 오늘로 끌고 오지 않겠다는 다짐입니다. 빵과 돈은 내 안의 부족감과 통제욕을 드러내고, 여벌 옷은 남 앞에서 보이고 싶은 또 하나의 얼굴입니다. 이들을 잠시 내려놓을 때, 우리는 ‘지금 여기’의 숨결에 훨씬 가까이 다가섭니다.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현존의 공간을 여는 일입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머물러라.”는 무슨 의미일까 잠시 생각해 봅니다. 머문다는 것은 비교와 최적화를 멈추는 일이 아닐까요? 더 나은 방, 더 친절한 사람, 더 빠른 길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대신, 지금 내 앞에 온 관계와 자리, 일의 조건을 진심으로 받아들이는 것.
이 수용은 체념이 아닙니다. 내맡김입니다. 내가 조종하려는 충동을 내려놓고 삶의 흐름을 신뢰할 때, 머무는 자리에서 뜻밖의 열매가 익어 갑니다. 머묾은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사랑은 늘 “여기”에 머뭅니다.
그러나 모든 곳이 우리를 환영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너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려라.” 이 가르침은 냉소의 제스처가 아니라 자유의 연습이란 생각이 듭니다. 타인의 반응에 나의 가치를 담보 잡히지 않겠다는 선언, 상처가 마음속에 굳어 먼지가 되기 전에 밖으로 털어 내겠다는 지혜입니다. 거절 앞에서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은 자존심이 아니라 평안의 중심임을 기억합니다. 중심을 잃지 않을 때, 떠남도 또 하나의 축복이 됩니다.
제자들은 “어디서나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쳤습니다.” 그들이 가진 것이 많아서가 아니라, 그들의 존재가 치유였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말보다 먼저 전해지는 분위기이고, 평화는 설명보다 먼저 체감되는 기운입니다. 누군가의 눈빛, 듣는 자세, 조용한 손길 하나가 말문 닫힌 영혼을 열어 줍니다. 치유는 종종 ‘하는 일’이 아니라 ‘되어 있는 상태’에서 일어납니다. 우리가 깨어 머물고, 자유롭게 떠날 줄 알며, 중심을 지킬 때—우리는 이미 누군가에게 하나의 복음이 됩니다.
오늘 복음은 우리를 거창한 사명으로 내모는 대신, 일상의 자리에서 자신을 다시 기억하라고 초대하는 듯합니다. 나는 이미 거룩함의 씨앗으로 지어진 존재라는 사실, 그 씨앗이 오늘의 선택과 표정, 호흡과 걸음에서 차분히 자라난다는 사실을. 빈손이 되어 걸을수록 손보다 큰 것이 드러납니다. 존재 자체로 건네는 위로와 치유—그것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맡기신 권한이 아닐까요?
오늘 현관문을 나서며 다시 나에게 묻습니다. 나는 무엇을 더 챙길지보다 무엇을 내려놓을지를 먼저 생각하는가? 환영과 거절 사이에서도 내 평안을 지킬 수 있는가? 머물 자리를 사랑으로 채우고, 떠날 순간을 자유로 마무리할 수 있는가?
우리의 대답이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한 걸음.
비움으로 깨어나고, 머묾으로 깊어지며, 자유로 가벼워지는 한 걸음.
그 걸음이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될 것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