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9일 (금)
(녹) 연중 제24주간 금요일 예수님과 함께 있던 여자들은 자기들의 재산으로 예수님의 일행에게 시중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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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사랑의 힘, 사랑의 향기 “회개와 더불어 주님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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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2025-09-18 ㅣ No.184927

2025.9.18.연중 제24주간 목요일                                                       

 

1티모4,12-16 루카7,36-50

 

 

사랑의 힘, 사랑의 향기

“회개와 더불어 주님을 더욱 사랑하라”

 

 

“주님을 경외함이 지혜의 근원이니,

 그렇게 하는 이는 모두 슬기를 얻으리라.

 주님 찬양 영원히 이어지네.”(시편11,10)

 

이런저런 묵상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공감은 지능이다’라는 발견한 책 제목에 대한 느낌도 각별했습니다. 역시 참된 회개와 더불어 공감 능력의 재생이자 회복이요 지능의 향상임을 깨닫습니다. 오늘 일력에 나온 옛 현자의 말씀이 회개의 중요성을 일깨웁니다.

 

“남을 들여다보기는 쉬워도 나를 깨닫기는 어렵다. 그래서 옛 선비들은 허물을 지적받았을 때 기뻐했다.”<다산>

“다른 사람을 아는 것은 ‘슬기로움’(智)이지만, 자신을 아는 것은 ‘현명함’(明)이다.”<도덕경>

 

회개와 더불어 참나를 발견하니 기쁜 일이고 ‘슬기로움(智)’과 ‘현명함(明)’을 얻으니 참 반갑고 고마운 일입니다. 무엇보다 제가 하루를 시작하면서 강론을 쓰는 시간은 주님의 거울에 나를 비춰보듯 성서 말씀에, 일어났던 일상사의 거울에 나를 비춰보는 <회개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태산같은 죄에도 불구하고 살 수 있음은 주님의 태산같은 은혜 덕분임을 깨닫습니다. 아무리 회개해도 끝이 없습니다. 감사하게도 ‘회개하라’, ‘사랑하라’, 지금까지 지은 죄에 대해 ‘보속하라, 하루하루 연장되는 날들임을 깨닫습니다. 저절로 나오는 시편 성구가 큰 위로와 구원이 됩니다.

 

“주께서 죄악을 헤아리신다면, 주여 감당할 자 누구이리까

 오히려 용서하심이 주께 있사와,

 더더욱 당신을 섬기라 하시나이다.”(시편130,3-4)

 

어제 다녀간 세분 자매들이 생각납니다. 거의 15년 동안 매해 두 번 정도 수도원을 방문하는 분들입니다. 놀라운 것은 가정사나 병고의 고통에도 불구하고 한결같은 여유있는 ‘웃음’에 ‘믿음’에 ‘영적우정’입니다. 결코 비관적 부정적 삶의 자세가 전무한 자매들이니 그대로 믿음의 반영입니다. 세분의 한결같은 고백은 세월이, 하루가 일주일이 한달이 순식간에 흐른다는 것입니다. 더불어 떠오르는 시편입니다.

 

“천년도 당신 눈에는 지나간 어제 같고, 한토막 밤과도 비슷하오니,

 당신이 앗아가면, 그들은 한바탕 꿈, 아침에 돋아나는 풀과 같이,

 아침에 피었다가 푸르렀다가, 저녁에 시들어서 말라 버리나이다.

 

 인생은 기껏해야 칠십년, 근력이 좋아서야 팔십년,

 그나마 거의가 고생과 슬픔이오니 덧없이 지나가고,

 우리는 나는 듯 가 버리나이다.”(시편90;4-6,10)

 

밤 01시 30분에 어느 자매로부터 받은 미사를 부탁하는 카톡의 뜻밖의 메시지도 충격입니다. 

 

“곧 일어나실 시간이죠? 미사봉헌하려구요. 제 안 사돈이 투병하다가 두시간 전에 임종하셨대요. 인생이 허무하고 허망하기 짝이 없어요. 어제 친구들과 만나기도 했는데...마음도 바램도 다 부질없음을 느낍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그래서 사부 성 베네딕도와 사막교부들의 이구동성의,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라(Mortem cotidie ante oculos suspectam habere).”는 가르침입니다. 역시 ‘회개하라’, ‘사랑하라’, '보속하라' 주어지는 날들임을 깨닫습니다. 살아 있을 때 회개요 사랑이요 보속이지 죽으면 모두가 끝입니다. 이런 회개와 사랑의 관점에서 보면 오늘 말씀의 이해가 확연해집니다. 

 

오늘 복음은 죄많은 여자가 주님께 구원받는 장면입니다. 흡사 살아 있는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 깊은 아름다움과 감동을 주는 장면입니다. 어떤 바리사이가 주님을 식사에 초대했고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합니다. 여기 식사잔치에 뚜렷이 부각되는 인물이 고을의 죄인인 여자와 예수님, 그리고 바리사이 시몬입니다. 예수님을 찾은 죄녀의 반응이 충격적입니다.

 

‘그 여자는 향유가 된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

 

이보다 진정성 넘치는 고백성사 본적이 없습니다. 그대로 회개의 표현이자 주님께 대한 넘치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아마도 주님께도 충격적인 사랑의 체험이었을 것입니다. 걷잡을 수 흐르는 회개의 눈물로 주님의 발을 닦아 드리면서 동시에 여자의 죄도 말끔히 씻겨져 마음도, 영혼도 순수로 빛났을 것입니다. 

 

아마도 예수님을 제외한 가장 순수하고 깨끗한 영혼은 오직 한분! 회개한 여자 하나였을 것입니다. 향유의 향기는 그대로 회개한 여자의 사랑의 향기가 되어 식탁 주위를 가득 채웠을 것입니다. 이런 회개와 사랑의 자세로 미사에 참여해야 함을 배웁니다. 그래야 용서와 더불어 치유의 은혜도 받습니다.

 

이어 주님은 바리사이 시몬과의 대화를 통해 시몬과 죄녀와의 사랑을 비교하며 참교육을 실시합니다. 시몬뿐 아니라 식사에 참석했던 모두는 물론,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 지금 여기 미사에 참석한 우리 죄인들도 우리의 회개와 더불어  주님께 대한 사랑을 성찰하게 됩니다. 참으로 우리를 부끄럽게 하는 죄녀의 회개와 주님께 대한 지극한 사랑입니다. 시몬은 물론 시공을 초월한 오늘 우리를 향한 주님의 결론같은 말씀입니다.

 

“이 여자를 보아라....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 받았다. 그래서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적게 용서받은 사람은 적게 사랑한다.”

 

소극적으로 죄책감에 머물것이 아니라, 죄를 지을수록 적극적인 회개와 더불어 더 큰 사랑으로 주님을 사랑할 때 온전한 치유의 구원임을 깨닫습니다. 마침내 예수님의 회개한 여자에 대한 구원의 선언입니다. 오늘 꼭 기억해야 할 말마디이며 미사후 파견시 주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

 

죄녀의 회개의 눈물과 사랑이 가득 담긴 향유의 봉헌은 그대로 죄녀의 주님께 대한 사랑의 표현이자 믿음의 표현입니다. 죄에 대한 회개와 더불어 주님께 대한 사랑이 마음을 겸손하게, 깨끗하게 합니다. 바로 다음 산상설교의 참행복을 체험했을 오늘 복음의 용서받은 여자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그들은 하느님을 볼 것이다.”(마태5,8)

 

주님께 대한 사랑의 응답은 사람마다 다양합니다. 우리의 모든 수행들은 하느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바로 수행생활의 원동력은 의무감에서보다는 주님 향한 한결같은 지칠줄 모르는 열렬한 사랑에서 나옵니다. 

 

오늘 복음에서 죄녀의 회개와 향유의 봉헌은 그대로 주님께 대한 사랑의 응답이었듯이 주어진 책임을 다함 역시 주님 사랑의 표현입니다. 이런 사랑의 강도는 제1독서의 바오로 사도를 통해서도 잘 드러납니다. 그리스도의 훌륭한 일꾼으로 사는 일, 역시 참 좋은 사랑의 응답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가 티모테오에게 전하는 가르침은 그대로 바오로의 삶을 반영합니다. 그 일부만 인용합니다.

 

“그대는 말에서나 행실에서나 사랑에서나 믿음에서나 순결에서나, 믿는 이들의 본보기가 되십시오...그대가 더욱 나아지는 모습이 모든 사람에게 드러나도록 하십시오...이 일을 지속해 나가십시오. 이렇게 하면, 그대는 그대뿐만이 아니라, 그대의 말을 듣는 이들도 구원할 것입니다.”

 

좋은 모범을 ‘보고 배우는’ 효과를 능가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책임을 모범적으로 훌륭히 수행함의 원동력은 한결같은 주님 사랑의 열정에서 나옵니다. 오늘 복음의 죄녀는 회개의 크나 큰 사랑으로 주님께 응답했고,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책임을 훌륭히 수행하는 큰 사랑으로 주님께 응답할 것을 간곡히 권합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날마다 회개와 더불어 큰 사랑을 봉헌하는 우리를 위로하시고 치유하시며, 평화와 더불어 주어진 책임에 최선을 다할 사랑의 힘을 주십니다. 성경의 평화는 단순히 심리적 평온이 아니라, 생명과 구원의 충만을 뜻합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루카7,50).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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