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1일 (목)
(녹) 연중 제23주간 목요일 너희 아버지께서 자비하신 것처럼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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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행복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구원’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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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석 [wsjesus] 쪽지 캡슐

2025-09-10 ㅣ No.184761

 

“예수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굶주리는 사람들! 너희는 배부르게 될

것이다. 행복하여라, 지금 우는 사람들! 너희는 웃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불행하여라, 너희 지금 배부른 사람들!

너희는 굶주리게 될 것이다. 불행하여라, 지금 웃는 사람들!

너희는 슬퍼하며 울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루카 20-26)”

1)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며 말씀하셨다.” 라는 말은,

제자들(신앙인들)에게 특별한 가르침을 주셨다는 뜻인데,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의 내용을 보면,

제자들(신앙인들)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행복하여라.”는 “복될 것이다.”, 즉 “구원을 받을

것이다.”이고, “불행하여라.”는 “구원받지 못한다.”입니다.

그래서 ‘행복 선언’과 ‘불행 선언’은, ‘행복에 관한 가르침’이

아니라 ‘구원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행복 선언’은, ‘믿는 이들’에게 주시는 ‘위로’와 ‘약속’으로,

또 ‘불행 선언’은, 안 믿는 자들을 향한 ‘경고’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위로’와 ‘약속’이라고 해도, 예수님의 말씀은

‘진통제’가 아니라 ‘치료제’입니다.

“나중에 얻을 것들을 생각해서 지금은 그냥 참고 살아라.”가

아니라, 지금 겪고 있는 고난과 고통과 온갖 억압과 압박과

멍에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또 하느님 나라의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관한 가르침이라는 것입니다.

2)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 라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에 대한 희망으로 지금의

가난을 행복으로 여기고 그냥 참고 살아라.”가 아니라,

“지금 가난해도, 하느님만 믿고, 하느님께만 의지하고,

하느님 나라만 추구하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입니다.

가난이 행복의 원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또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아닙니다.

바오로 사도는, “묵묵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벌어먹도록

하십시오.” 라고 권고합니다(2테살 3,12).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노동을 하고,

저축을 하는 것은 ‘선한 일’입니다.

동시에 ‘나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입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너희는 이미 위로를

받았다.” 라는 말씀은, “자신의 부유함에 만족하면서

하느님을 등지고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에서

얻을 것이 없다.” 라는 경고, 또는 재물만 중요하게 여기고

구원에는 관심 없는 사람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경고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라고 경고합니다(1티모 6,10).

3)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면, 그리고 사람의 아들 때문에

너희를 쫓아내고 모욕하고 중상하면, 너희는 행복하다!

그날에 기뻐하고 뛰놀아라. 보라, 너희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라는 말씀은, 사도행전에 있는 다음 이야기에 연결됩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불러들여 매질한 다음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지시하고서는

놓아주었다. 사도들은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

최고의회 앞에서 물러 나왔다. 사도들은 날마다

성전에서 또 이 집 저 집에서 끊임없이 가르치면서

예수님은 메시아시라고 선포하였다(사도 5,40-42).”

여기서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할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는, “그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함으로써 ‘하늘의 상’을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인정받았다고 기뻐하며”입니다.

미움과 박해와 모욕과 중상을 받는 것이

신앙인의 기쁨과 행복의 원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일은 분명히 괴롭고 힘든 일인데, 그런 일을 겪어도

굴하지 않고, 신앙을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함으로써

하느님 나라에서 참 기쁨과 참 행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박해를 받아도 참고 견디면서, 그 박해를

‘증언의 기회’로 삼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 10,17-20).

신앙생활과 선교활동을 하다 보면 미움과 박해를 받을 수도

있고, 존경과 환영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항상 박해만 받는 것은 아닙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상황을 만나더라도 흔들리지 말고

신앙을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해야 합니다.

“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끈기를 다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면서,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하십시오(2티모 4,2).”

4) “모든 사람이 너희를 좋게 말하면, 너희는 불행하다! 사실

그들의 조상들도 거짓 예언자들을 그렇게 대하였다.” 라는

말씀은, 거짓 예언자들은 구원받지 못한다는 경고 말씀인데,

제자들(신앙인들)에게도 “세속의 헛된 명예와 인기와 존경에

취하지 마라.” 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누구든지 강론과 강의가 너무 좋았다는 찬사를 들으면

기분이 좋겠지만, 그것은 교만에 빠지는 지름길이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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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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