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3일 (토)
(백)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 학자 기념일 너희는 어찌하여 나를“주님, 주님!”하고 부르면서 내가 말하는 것은 실행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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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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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5-09-09 ㅣ No.184750

인생의 황금기 60세부터 75라는 강의를 들었습니다. 한국인의 평균 기대수명은 84세라고 합니다. 여성은 87, 남성은 81세라고 합니다. 저는 인생의 황금기를 막 시작했습니다. 인생의 황금기를 잘 보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세 가지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건강수명입니다. 건강을 잃으면 재산이 많아도, 시간이 많아도, 친구가 많아도 소용이 없습니다. 건강하면 인생의 황금기는 계속 늘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매일 꾸준히 운동하는 습관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달라스가 덥지만, 저는 아침이면 동네 공원을 걷습니다. 걸으면서 묵주기도하고, 성경 듣고, 생각을 정리합니다. 부주임 신부님과 맨몸 운동도 함께 다닙니다. 안 쓰는 근육을 풀어주고, 스트레칭을 하니까 기분이 좋습니다. 한국인의 40%는 하루에 30분도 운동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비가 오면 숲이 무성하듯이, 운동하면 몸에 활력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둘째는 독서와 명상입니다. 나이가 들면 아집과 편견이 늘어날 수 있다고 합니다. 아집과 편견으로 남의 일에 참견하면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곰팡내 나는 아집과 편견을 버리는 방법은 새로운 것을 채우는 것이라고 합니다. 명상은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지를 알려 줍니다. 자동차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목적지를 모르면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지상 최대의 힘이라고 합니다.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고 했습니다. 세상은 넓고 읽어야 할 책도 많습니다. 요즘은 전자책도 있고, 듣는 책도 있습니다. 책 한 권에는 30년의 인생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했습니다. 매일 책을 읽는 사람은 지혜와 지식이 쌓이기 마련입니다. 그런 사람은 편견과 아집을 버리기 마련입니다.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사람이 됩니다. 사목이 바쁘다는 이유로 명상과 독서의 시간이 부족했습니다.

 

셋째는 홀로서기입니다. 95세 어르신이 수필집을 발간했다고 합니다. 돌아보니 30년 동안 하는 일 없이 지냈다고 합니다. 홀로 있을 때 시간을 허비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10년 후인 105세가 되면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어학 공부를 시작했다고 합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취미가 있다면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습니다. 악기를 배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어머니는 배움의 기회를 놓쳐서 글을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야학에 다니면서 글을 배웠습니다. 어머니는 성경도 읽고, 성경 필사도 하였습니다. 아버지는 서예를 배웠습니다. 제가 사제서품 받았을 때 저의 서품 성구를 액자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밤하늘을 지키는 북극성도 홀로 있습니다. 어두운 밤바다를 밝히는 등대도 홀로 있습니다. 예전에 어르신들이 신독(愼獨)’하라고 하였습니다. 홀로 있을 때 정신을 맑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새벽 홀로 있는 시간이 참 좋습니다.

 

오늘 독서는 신앙인에게 필요한 인생의 황금기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나이와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건강과도 상관없습니다. 그것은 홀로서기와도 상관없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인생의 황금기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세상의 것이 아니라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옛 인간을 버리고 새로운 인간을 입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지식에 이른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금 가난할지라도, 지금 굶주릴지라도, 지금 헐벗을지라도 행복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늘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언제나 인생의 황금기를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것을 추구하는 사람은 지금 부유하더라도, 지금 배부를지라도, 지금 화려한 옷을 입을지라도 불행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세상을 빛과 어둠,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로 구분하면 편할 수 있습니다. 보수와 진보, 피부색과 지역으로 나눌 수도 있습니다. 철학과 사상은 그렇게 발전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사라진 마니교도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편을 가르고, 구분하면 이해하기 쉽고, 적과 우군을 구별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단순히 이분법으로 구별할 수 없습니다. 내 안에 밀과 가라지가 같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빛과 어둠이 공존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은 가난한 이와 부유한 이를 가르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이에게는 하느님의 위로와 자비를 이야기하십니다. 부유한 이에게는 소유를 넘어 존재의 삶을 이야기하십니다. 소유를 넘어 존재의 삶을 사는 사람은 부유함도, 가난함도 장애가 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하느님의 사랑받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옛 인간을 그 행실과 함께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입은 사람입니다. 새 인간은 자기를 창조하신 분의 모상에 따라 끊임없이 새로워지면서 참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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