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9월 10일 (수)
(녹) 연중 제23주간 수요일 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불행하여라, 너희 부유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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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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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5-09-08 ㅣ No.184718

지난 822, 교구 인사이동이 있었습니다. 저에게는 14번째 인사이동이 있었습니다. 그동안의 인사이동은 늘 규정과 절차에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그 가운데 두 번은 교구장님의 특별한 면담이 있었습니다. 적성 성당으로 갈 때는 성당이 작고 재정이 넉넉하지 않다라고 하시며 그래도 잘 지낼 수 있을 거야라고 격려해 주셨고, 저는 실제로 그곳에서 참 따뜻하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 한 번은 미주가톨릭 평화신문으로 갈 때였습니다. 비자 문제로 사전에 알려 주셨고, 저는 본당 사목은 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신 주교님께서 저를 평화신문으로 보내 주셨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도 새로운 사목의 길을 걸을 수 있었습니다.

 

돌이켜보면, 34년 동안 맡겨진 소임 하나하나가 저에겐 꽃자리였습니다. 제가 인사이동을 할 때마다 마음에 새기는 시가 하나 있습니다. 구상 시인의 꽃자리입니다.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우리는 종종 지금 내가 있는 자리가 불편하고 답답해서 가시방석이라 여깁니다. 하지만 그 자리가 꽃자리인지, 가시방석인지는 내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불평과 불만이 마음을 지배하면 어디든 가시밭이 되고, 겸손과 감사가 마음을 채우면 그 자리는 곧 꽃밭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도 그렇습니다. 좋은 밭에 떨어진 씨앗만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가시밭에서도, 돌밭에서도, 심지어 길가에서도 열매를 맺습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 안에는 이미 생명의 뿌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다니엘과 친구들은 불가마 속에서도 하느님을 찬미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매를 맞고, 굶주리고, 감옥에 갇혀서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도 옥중에서 복음을 전하며 편지를 남겼습니다. 그분들의 자리는 감옥이었고, 불가마였고, 죽음 앞이었지만, 그곳이 바로 꽃자리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늘 열두 제자를 뽑으시기 전, 밤을 새워 기도하셨습니다. 기도 받으셔야 할 분이, 스스로 기도 하셨습니다. 발 씻김을 받으셔야 할 분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영광의 자리에 앉으셔야 할 분이,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기도와 섬김, 십자가는 결국 부활의 영광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꿈을 이루시기 위해 열두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우리가 그 제자들의 이름을 지금도 외우는 이유는, 그들이 복음을 전했고, 병자를 고쳤고, 마귀를 쫓아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꿈을 함께 꾸었고, 그 꿈을 위해 살아갔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오늘 이렇게 말합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 그리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신앙은 뿌리를 내리는 일입니다. 표면이 아니라 깊이입니다. 바람이 분다고 쓰러지지 않고, 땅이 흔들린다고 뽑히지 않는 믿음이 되려면, 그리스도 안에 깊이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우리가 오늘 살아가는 이 자리가 불편하고, 답답하고, 때로는 외로워 보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자리가, 주님께서 나에게 허락하신 꽃자리라는 것을 믿으면 좋겠습니다. 불평 대신 감사로, 원망 대신 기도로, 권리 대신 섬김으로 살아갈 때, 그 자리는 영원한 생명의 꽃자리로 피어날 것입니다. 예수님의 꿈을 함께 꾸는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 꿈을 이루는 제자들입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삶의 자리, 신앙의 자리를 꽃자리로 바꾸어가는 복된 하루 되시길 기도드립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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