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15일 (화)
(백)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 기념일 심판 날에는 티로와 시돈과 소돔 땅이 너희보다 견디기 쉬울 것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회개의 일상화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이다”

스크랩 인쇄

선우경 [forgod] 쪽지 캡슐

07:36 ㅣ No.183462

2025.7.15.화요일 성 보나벤투라 주교 학자(1221-1274) 기념일 

 

 

탈출2,1-15ㄴ 마태11,20-24

 

 

회개의 일상화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이다”

 

 

회개의 일상화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입니다. 바로 오늘 강론 제목입니다. 무지의 악, 무지의 죄, 무지의 병에 대해 참 많이 나눴습니다. 이것은 제가 동방영성에서 배운 귀한 진리입니다. 참으로 자기를 아는 겸손이 지혜이며 바로 회개의 열매가 겸손과 지혜입니다. 정말 자기를 모르는 무지의 병이 문제입니다. 모르면 알려줘도 모릅니다. 주변은 다 아는데 본인만은 모를수 있습니다. 

 

도대체 이런 무지에는 답이 없습니다. 이념이나 사이비 종교에 중독된 맹신, 광신의 무지가 얼마나 무서운 치명적 질병인지 주변에서 겪지 않습니까? 그래서 ‘기계는 고쳐쓸수 있어도 사람은 고쳐쓸 수 없다’, 또는 ‘원판 불변의 법칙’이란 말도 회자되곤 합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뿐입니다. 예수님의 갈릴래아 전도시 첫말마디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와 더불어 시작되는 하늘 나라입니다. 그러니 회개를 부단히 선택하고 훈련하여 습관화하는 것입니다. 회개의 습관화, 회개의 생활화, 회개의 일상화입니다. 이래서 회개에 앞선 침묵과 경청이 중요합니다. 침묵중에 잘 귀기울여 들을 때 비로소 자기를 아는 회개가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다음 옛 현자의 말씀은 회개의 일상화로 참 어른이 된 분들에 대한 묘사처럼 들립니다.

 

“어른스러움이란 세월에 따라 잡히지도, 세월을 거스르려 하지도 않고, 기꺼이 나이다워지는 것이다.”<다산>

“쉰에는 하늘의 뜻을 알게 되었고, 예순에는 말을 듣는 법을 터득했고, 일흔에는 마음 가는 대로 행동해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不踰矩).”<논어>

 

이런 어른들이라면 젊은이들에게 정말 희망의 표징이 될 수 있겠습니다. 제가 가톨릭교회를 명품종교라 칭하는 것은 명품미사 때문입니다. 무지의 병에 대한 최고의 명약은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전례입니다. 정말 미사전례 은총을 받은 자들은 회개와 더불어 무지의 병에서 치유됨으로 주님을 닮아 날로 겸손하고 온유하고 자비롭고 지혜로워집니다. 

 

무수한 성인성녀들을 배출한 것이 바로 미사전례은총입니다. 매일미사 시작전 참회기도를 배치하여 회개로 시작하는 미사구조의 지혜에 저는 참으로 감탄하곤 합니다. 

 

“전능하신 하느님과 형제들에게 고백하오니 생각과 말과 해위로 죄를 많이 지었으며 자주 의무를 소홀히 하였나이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로 시작되는 참회의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끝기도때도 공동참회기도로 하루를 마치니 수도원의 하루 일과표가 회개의 생활화를 위한 회개의 시스템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행복하여라”로 시작하는 행복선언과는 극명하 대조를 이루는 불행선언입니다.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불행하여라, 너 벳사이다야! 불행하여라, 너 가파르나움아! 너희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티로와 시돈에서,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들은 벌써 회개했을 것이다.”

 

기적이 의도하는 바 회개입니다. 예수님은 당신이 기적을 가장 많이 일으키신 고을들이 회개하지 않음을 꾸짖는 것입니다. 여기서 ‘불행하여라’는 단순한 저주가 아니라, 예수님의 깊은 아픔, 또는 심판 예고로 이어지는 분노를 드러냅니다. 이 또한 시공을 초월하여 오늘의 우리 신자들에 대한 회개 촉구의 불행선언일 수 있습니다. 눈만 열리면 곳곳에 널린 회개를 촉구하는 회개의 표징들입니다.

 

무엇보다 성서와 교회의 성인들이야말로 빛나는 회개의 표징, 희망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됩니다. 탈출기에서 모세를 지도자로 키우는 하느님의 섬세한 배려와 사랑이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배려와 사랑을 연상케 하니 이런 모세 역시 참 좋은 회개의 표징입니다. 노아의 방주와 모세를 담았던 왕골상자가 히브리어로 같다 합니다. “내가 그를 물에서 건져 냈다”하여 모세인데 노아 역시 홍수의 물에서 구원받았으며, 우리 역시 회개의 결정적 표지인 세례로 구원받아 또 하나의 모세가 된 신자인 우리들입니다.

 

오늘 우리는 13세기 도미니코 수도회의 천사적 박사로 불리었던 성 토마스 아퀴나스와 쌍벽을 이뤘던 프란치스코의 세라핌 박사로 불리었던 성 보나벤투라의 기념미사를 봉헌합니다. ‘주지적主知的이고 분석적’이었던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와 ‘주의적主意的이고 신비적’인 보나벤투라(1221-1274)는 서로 참 좋은 상호보완관계를 이룸으로 교회를 풍요롭게 했던 분입니다. 나이는 보나벤투라가 4살 많으나 리옹공의회가 끝날 무렵 같은 해에 두분 다 선종합니다.

 

보나벤투라 성인에 붙는 명칭은 스콜라 철학자이자 신학자, 아우구스티누스주의자, 신플라톤주의 성직자 추기경, 교수, 작가 참 많습니다. 보나벤투라는 이름은 행운이란 뜻으로 성 프란치스코가 지어준 이름이라 하며, 성 프란치스코에 이어 말년에 수도회 총장 책임을 맡아 그 기초를 다진 분이며 <프란치스코 전기>를 쓰기도 했습니다. 레오13세 교황은 성인을 ‘신비가들의 왕자“라 불렀고 이브 콩가르는 성인의 신학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신앙의 빛이 없는, 즉 신학에서 분리된 철학은 하느님과 인간의 신비,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 인류와 구원에 대해서 올바르게 밝힐수 없다. 이성이 신앙에 의해 스스로를 넘어서지 않고 그 자체에 머문다면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이성은 그 자체의 힘만으로는 진리의 빛에 이르지 못한다.”

 

성 보나벤투라의 소박하고 겸손한 인품을 알려주는 세 예화를 소개합니다.

 

1.보나벤투라의 지혜가 놀라웠던 토마스 아퀴나스가 그를 방문하여 “그 높은 지성의 비결이 무엇인가?” 물었을 때, 그는 십자가를 보여주며, “이것이 나의 지혜의 샘입니다.” 대답했다 합니다.

2.한 할머니가 하느님께서 수사님의 지혜를 아시니 천당에서 분명히 하느님의 앞자리에 앉을 것이라 말하자, “저보다 할머니가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실 수도 있죠.” 대답했다 합니다.

3.추기경 서임 칙서를 교황대사가 전달하러 왔을 때, 그는 부엌에서 친히 설거지를 하고 있었고, “설거지를 다 끝낼 때 까지 추기경 모자를 나무에 걸어두고 기다리라” 하였다는 일화입니다.

 

대가 성인들의 공통적 특징은 겸손이요, 겸손이 바로 성덕의 잣대이자 지혜임을 깨닫습니다. 바로 성인들의 이런 겸손이 우리를 회개에로 이끄는 표징이 됩니다. 모세에 대한 다음 대목도 생각납니다. ‘모세는 실상 매우 겸손한 사람이었다. 땅 위에 사는 사람 가운데 그만큼 겸손한 사람은 없었다.’(민수12,3).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우리의 무지의 병을 치유하시어 날로 당신을 닮은 겸손하고 온유한 사람으로 변모시켜 주십니다. 아멘.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이수철 프란치스코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45 2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