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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진 신부님_<“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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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나를 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이미 뵌 것이다.’ 필립보가 예수님께,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하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필립보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하느냐?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너는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믿지 못하겠거든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영광스럽게 되시도록 하겠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요한 14,7-14)”
1)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라는 말씀에서, 지혜서에 있는 다음 말씀이 연상됩니다. “하느님에 대한 무지가 그 안에 들어찬 사람들은 본디 모두 아둔하여 눈에 보이는 좋은 것들을 보면서도 존재하시는 분을 보지 못하고, 작품에 주의를 기울이면서도 그것을 만든 장인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오히려 불이나 바람이나 빠른 공기, 별들의 무리나 거친 물, 하늘의 빛물체들을 세상을 통치하는 신들로 여겼다. 그 아름다움을 보는 기쁨에서 그것들을 신으로 생각하였다면, 그 주님께서는 얼마나 훌륭하신지 그들은 알아야 한다. 아름다움을 만드신 분께서 그것들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또 그것들의 힘과 작용에 감탄하였다면, 바로 그것들을 보고, 그것들을 만드신 분께서 얼마나 힘이 세신지 알아야 한다.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그 창조자를 알 수 있다(지혜 13,1-5).” <피조물을 보고, 그 피조물을 만드신 창조주 하느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무신론자들은 이 우주와 자연이 저절로, 또는 우연히 생긴 것이라고 주장하지만, 그런 주장은 반박할 가치가 전혀 없는, 의미 없는 말일 뿐입니다.>
2) 또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하느님의 보이지 않는 본성 곧 그분의 영원한 힘과 신성을 조물을 통하여 알아보고 깨달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변명할 수가 없습니다. 하느님을 알면서도 그분을 하느님으로 찬양하거나 그분께 감사를 드리기는커녕, 오히려 생각이 허망하게 되고 우둔한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지혜롭다고 자처하였지만 바보가 되었습니다(로마 1,20-22).”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하느님을 찬양하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이 당연한데, 그렇게 하지 않고 우상숭배에 빠지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짓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작품들을(피조물을) 통해서 창조주 하느님을 알게 되고 믿게 된다는 말은, 그대로 메시아 예수님에게도 적용됩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보고,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알게 되고 믿게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전부 다 메시아(구세주)로서 인간을 구원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의 일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일은 ‘죽음과 부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모습을 지니셨지만, 하느님과 같음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오히려 당신 자신을 비우시어 종의 모습을 취하시고, 사람들과 같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여느 사람처럼 나타나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죽음에 이르기까지,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드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분께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이름 앞에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자들이 다 무릎을 꿇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라고 모두 고백하며,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게 하셨습니다(필리 2,6-11).” 사도들이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제자가 된 것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그 믿음이 좀 부족하고 불완전했는데,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예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직접 보고, 또 예수님의 가르침들을 직접 들으면서 차츰 ‘확신’하는 단계로 올라서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는 신앙에 완전히 도달하게 된 때는 부활과 승천을 체험했을 때이고, 그 신앙을 증언하고 선포하기 시작한 것은 ‘성령강림’ 때부터입니다.
4) 우리가 예수님을 메시아로, 또 하느님으로 믿는 것은 사도들의 증언을 믿기 때문이고, 그들의 증언을 믿는 것은 그들이 한 일들과 그들의 삶과 죽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한 일들은 예수님께서 지상에서 하시던 일들을 이어받아서 그대로 한 일들, 즉 인간을 구원하는 일과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전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일들을 보고 예수님을 하느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청하면 내가 다 이루어 주겠다.” 라는 약속은, 하느님이신 분만이 하실 수 있는 약속입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 [출처] 부활 제4주간 토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