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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간 토요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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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제4주간 토요일] 요한 14,7-14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다. 내 안에 머무르시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일을 하시는 것이다."
어제 복음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당신이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느님은 눈으로 볼 수 없고 귀로 들을 수 없으며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분이시기에, 우리는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알 수 없고, 그분이 마음 속에 어떤 뜻을 품고 계시는지도 알 길이 없지요. 그렇기에 하느님의 ‘말씀’이신 분께서 직접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말씀을 우리가 귀로 듣고 알아들을 수 있게 가르쳐주셨고, 그분의 사랑을 우리가 보고 느낄 수 있게 실행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저 하느님의 ‘계시’이시며 구원의 ‘길’인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가르침을 순순히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하느님의 의도가 대체 무엇인지 헤아리기 위해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필요도 없고, 어떻게 하는 게 그분 뜻에 맞는 것인지 세상 심각한 표정으로 고민할 필요도 없는 겁니다. 그런데 그런 예수님의 말 뜻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필립보가 갑자기 엉뚱한 소리를 합니다.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저희에게는 그것으로 충분하겠습니다.”
부족하고 유한한 존재인 우리는 애초에 세상이라는 물질적 한계를 초월해 계시는 하느님을 볼 수가 없는데, 그래서 예수님께서 직접 하느님의 뜻과 의도를 드러내 보여주셨는데, 굳이 자기 두 눈으로 하느님 현존의 증거를 직접 봐야만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파견되신 아드님임을 충분히, 즉 의심이나 의혹 없이 믿을 수 있겠다는 겁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하느님의 모습을 보여주신다고 해도 필립보가 그 압도적이고 거룩한 현존을 감당할 수 있을까요? 부족한 인간의 눈으로 과연 하느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제대로 볼 수나 있을까요? 애초에 할 수 없는 일을, 우리 구원 여정에 굳이 필요치 않은 일을 굳이 해봐야 직성이 풀리겠다니 참으로 안타까운 노릇입니다. 물고기는 물 속을 헤엄쳐 다니지만 자신이 물 속에 속해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새들은 하늘을 날아다니지만 자신이 하늘에 속해있음을 깨닫지 못합니다. 제자들 역시 예수님과 함께 동고동락하며 하느님의 현존과 사랑 속에 살고 있었지만 그 진실을 미처 깨닫지 못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필립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자기 믿음을 확증해 줄 증거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에 승복하고, 그분 뜻을 따르는 일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 아버지와 철저하게 일치되어 계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말씀 말고 다른 것은 마음에 품지 않으셨습니다. 아버지의 뜻 말고 다른 것은 해 보려고 욕심내지 않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철저히 자신을 비우고 예수님의 뜻을 따름으로써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상태가 된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철저히 자신을 비우시고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심으로써, 아버지의 뜻이 곧 나의 뜻인 ‘이심전심’의 상태가 되신 겁니다. 그랬기에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기도를 반드시 들어주셨지요.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으며,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즉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순명하고 일치하여 드리는 기도를 반드시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 함 승수 신부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