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5월 17일 (토)
(백) 부활 제4주간 토요일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우리들의 묵상ㅣ체험 우리들의 묵상 ㅣ 신앙체험 ㅣ 묵주기도 통합게시판 입니다.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5.05.17)

스크랩 인쇄

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07:35 ㅣ No.182252

 

2025년 5월 17일

부활 제4주간 토요일

종종 학창 시절이 생각납니다.

성소에 대한 고민이 많았던 고등학생 때,

그리고 신학교에 들어가서는 모든 것이

나와 맞지 않는다면서 심각하게 성소를

다시 생각했었습니다. 이렇게 고민이

많았을 때, 과연 행복하다고 말했을까요?

아닙니다. 스스로 너무 불행하다고

확신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그로부터 벌써 3~40년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때를 떠올리면서 오히려

그리워하고 당시의 생활이 행복했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분명히 불행하다고

생각했던 시간이었는데 말입니다.

행복한 순간에는 얼마나 행복한지

모른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 어떠하십니까?

별로 행복한지 모르겠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조금만 미래의 시간에 가서 지금을 떠올리면

분명 행복한 순간이었다고 고백할 것입니다.

인간은 늘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순간임에도 행복하다는

것을 깨닫기가 매우 힘듭니다. 이런 이유로

‘너 행복하니?’라는 질문보다 ‘너 불행하니?’

라는 질문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 ‘불행하니?’라는 질문에 분명하게

그렇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면

행복한 때입니다. 복잡한 생각 없이

편안한 상태로 있을 수 있다는 것,

이 순간이 그때는 아무것도 아닌

시간처럼 생각되어도 분명히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평화가 곧 행복이었습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제일 먼저 평화를

말씀하셨던 것이 아닐까요?

지금을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

필립보가 “주님, 저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라고 청합니다. 아버지를 직접 봐야

행복할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후대 사람들은 필립보를

무척이나 부러워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즉, 필립보는 하느님 아버지를직접

봐야 행복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예수님과 함께 있음 자체가

행복의 순간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언제 어디서나 당신의 따뜻한 사랑으로

평화를 누릴 수 있도록 하십니다.

그러나 믿어야 가능합니다. 참된 신앙인은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바뀌게 됩니다. 가치 기준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늘 자기

자신을 기준에 두었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생기면서 주님의 눈으로 보고

듣고 판단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기준이 바뀌면서 늘 함께하시는

주님을 느끼게 되는 것입니다.

평화로움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어린아이가 사랑하는 부모가 옆에

있으면, 얼마나 잘 노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부모가 시야에서 보이지

않게 되면 불안해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두리번거릴 수밖에

없습니다.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하면서

평화를 자기 것으로 만들게 됩니다.

지금 행복함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명언

사랑의 첫 번째 계명은 먼저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자기 희생은

사랑의 고귀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발타자르 그라시안)

사진설명: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42 0

추천 반대(0) 신고

 

페이스북 트위터 핀터레스트 구글플러스

Comments
Total0
※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0/500)

  •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