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 (금)
(백) 부활 제4주간 금요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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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14주간 목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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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0-07-08 ㅣ No.139371

포정해우(庖丁解牛)’라는 말이 있습니다. 포정이라는 사람은 소를 다루는 백정이었습니다. 처음 시작하는 백정은 한 달에 한 번씩 칼을 바꾼다고 합니다. 뼈를 베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백정은 1년에 한 번씩 칼을 바꾼다고 합니다. 살을 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포정은 19년을 같은 칼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뼈와 살의 빈틈을 베기 때문입니다. 포정은 소를 다루면서도 도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서핑을 처음 하는 사람은 파도를 헤쳐 나가려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위험하기도 하고, 쉽게 지친다고 합니다. 서핑을 잘하는 사람은 파도를 탄다고 합니다. 좋은 파도가 오면 파도에 몸을 맡긴다고 합니다. 좋은 파도가 지나가면 기다린다고 합니다. 좋은 파도는 또 오기 때문입니다. 포정이 소의 빈틈을 알아 칼을 오래 사용하듯이, 파도를 타는 서퍼가 바다를 즐기듯이 우리는 삶이라는 파도에 몸을 맡길 필요가 있습니다. 때로 우리는 명분이라는 이름으로, 자존심이라는 이름으로, 타인의 시선을 의식해서 삶의 파도에 맞설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래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려 깊은 식별입니다. 신앙인에게 식별의 기준은 하느님의 영광과 하느님의 의로움입니다.

 

본당에 있을 때의 경험입니다. 태풍 곤파스로 성당 뒷산의 나무들이 뽑혔습니다. 성당 뒷산과 접한 아파트의 옹벽이 밀려났습니다. 시장도 왔었고, 구청장도 왔었습니다. 뒷산이 있어서 그러니 뒷산의 높이를 낮추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시장도 의견에 동의했고, 구청에서 뒷산을 9미터 정도 깎았습니다. 성당에 작은 마당이 생겼습니다. 저는 그 마당만으로도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몇몇 분들은 이왕에 마당이 생겼으니 조금 더 큰 마당으로 만들자는 의견을 냈습니다. 태풍으로 작은 마당이 생긴 것도 감사할 일인데 더 욕심을 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인지 고민이 되었습니다. 사려 깊은 동창 신부에게 자문을 구했습니다. 동창 신부는 제게 마당을 넓히는 과정에서 비난을 받을 수 있지만, 본당 신자들이 친교를 나눌 수 있는 넉넉한 마당이 생길 수 있다면 그렇게 하라.’고 하였습니다. 태풍과 뒷산에 빈틈이 있었고 우리는 약간의 비용을 들여서 넉넉한 마당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자존심에 머물렀다면 힘들었을 겁니다. 명분에 집착했다면 마당은 마련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넓어진 마당에서 윷놀이도 하고, 성모의 밤도 하고, 성탄절에는 따끈한 어묵을 먹었던 생각이 납니다.

 

강한 바람이 불면 가장 먼저 풀잎이 눕습니다. 그러나 바람이 멈추면 풀잎은 언제나 다시 일어섭니다. 아무리 바람이 세게 불어도 풀잎은 뽑히는 법이 없습니다. 커다란 나무는 강한 바람에도 당당하게 맞서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바람이 멈추면 뿌리가 뽑히고, 넘어진 나무들을 볼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라는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 아무리 건강한 사람이라도 손을 자주 씻고, 마스크를 착용해야 합니다. 불필요한 모임은 자제하고, 사회적인 거리두기를 실천해야 합니다. 풀잎이 강한 바람에 먼저 눕듯이, 코로나19는 맞서 싸워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조심해서 극복해야 하는 대상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유혹의 바람이 불곤 합니다. 욕망의 바람이 불곤 합니다. 시기와 질투의 바람이 불곤 합니다. 원망과 분노의 바람이 불곤 합니다. 풀잎이 바람에 눕듯이 우리는 겸손하게 누워야 합니다. 기도하며 누워야 합니다. 사랑을 실천하며 누워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마음에는 평온의 바다가 펼쳐집니다. 우리의 마음은 큰 숲이 되어 많은 사람이 머물게 됩니다. 나무는 바람에 뽑힐 수 있지만 숲은 바람을 보듬기 마련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큰 숲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하느님나라를 선포하라고 하십니다. 앓는 이들을 고쳐주고, 죽은 이들을 일으켜 주고, 나병 환자들을 깨끗하게 해 주고, 마귀들을 쫓아내라고 하십니다. 큰 숲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교회입니다. 교회는 성사(聖事)로 하느님나라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누가 숲이 되고, 누가 교회가 되어야 할까요? 누가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사랑을 은총으로 드러내는 성사가 되어야 할까요? 바로 우리들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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