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19일 (금)
(백) 부활 제3주간 금요일 내 살은 참된 양식이고 내 피는 참된 음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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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금요일 아침에 감실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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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만연 [fisherpeter] 쪽지 캡슐

2020-04-10 ㅣ No.137453

 

 

오늘은 성금요일 아침입니다. 새벽 5시에 성당에 왔습니다. 원래는 목요일 자정쯤에 와서 최소 10시간은 감실 앞에서 조배를 하고 가려고 했는데 그만 잠이 들어 새벽 3시쯤에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성당에서 원래는 신심 좋은 교우님이랑 같이 조배를 하기로 했는데 제가 그만 자정에 만나기로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오니 감실 앞에서 조배를 하고 있었습니다. 영세를 받은 후부터 성목요일 수난 감실조배를 작년까지 최소 10시간을 계속 해왔습니다. 올해는 어쩔 수 없어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못하지만 그래도 제가 제 자신에게 약속을 한 게 있습니다.

 

체력이 되는 때까지 매년 성목요일 조배는 10시간은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올해 빠지면 좀 그래서 제가 성당 감실에서라도 해야겠다고 해서 온 것입니다. 다행히 씻고 와도 새벽 5시부터 조배를 하면 세시까지 하면 딱 10시간은 예수님과 함께 머무를 수가 있어서 다행입니다.

 

지금 성당에서 오늘 묵상글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보니 제1독서가 제가 좋아하는 부분입니다. 전 예전부터도 이사야 53장을 한 대 여섯 번 정도 천천히 읽고 이 내용에 감정이입하면 눈물이 나올 정도로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할 때 자주 애용하는 성경 부분입니다.

 

독서는 예수님의 모습에 대해 말을 합니다. 우리가 바랄 만한 모습도 없다고 합니다. 멸시도 받고 배척을 당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를 위해 병고를 메고 가셨고, 우리는 그런 모습을 보며 벌받은 자라고 하며 입을 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악행 때문에 찔리셨습니다. 우리의 죄악 때문에 어스러지셨습니다. 그로인해 상처가 나셨는데 그 상처로 우리의 죄가 치유되었습니다.

 

오늘 독서 6절을 보면 정말 어찌도 이렇게 우리의 모습을 잘 묘사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목자를 따르지 않고 자기의 길을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양과 같은 모습입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이 어려울 때 우리는 그 길이 힘들다고 가지 않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우리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학대받고 천대받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가실 그 길만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2독서에서 히브리서 기자는 말을 합니다. 당신께서는 죽음의 길을 가시면서도 하느님의 아들이셨지만 고난을 겪으심으로써 끝까지 성부 하느님께 당신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외면하지 않고 가셨기 때문에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셨다고 합니다.

 

또한 하느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기도와 탄원을 올리셨는데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이 아버지를 경외하는 그 경외심으로 아들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골고타를 오르면서도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생각하셨을 겁니다.

 

절대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질 때까지 참고 인내해서 하늘에서 당신을 보내신 그분 뜻대로 죽으시길 기도하셨을 겁니다. “꼭 그대로 되게 해 주십시오.” 라고 말입니다.

 

1독서에서 예수님을 으스러뜨리고자 하신 것은 성부 하느님의 뜻이었다고 합니다. 어찌 해서 그게 아버지의 뜻이었을까요? 참으로 모진 아버지인 것 같지만 어찌 아버지가 아들에게 그런 걸 바라셨을 부모가 세상 천지에 어디 있겠습니까?

 

바로 당신 아들을 제물로 삼아 이 세상에 있는 죄악을 뿌리 뽑게 하시려고 그랬던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도 눈물을 머금고 하셨을 겁니다. 참으로 이해를 할 수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눈에 넣어도 아프시지 않을 생떼 같은 아들을 처참하게 피를 흘리시고 고통을 받게 하신 것이 성부의 뜻이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죽음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버리고 무법자들을 위해 빌어주었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상에서 좌측에 있는 강도에게도 모욕을 받았지만 그 자를 위해서도 빌어주셨습니다. 마지막 운명하시는 그 순간까지도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말을 합니다. 바로 예수님께서는 위대한 대사제가 되어 하늘에 오르셨다고 합니다. 간곡하게 호소를 합니다.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을 굳게 지켜 나아가자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죄를 짓지도 않으셨으면서도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죄 때문에 당신의 생명을 하느님께 드렸습니다. 바로 속죄 재물로 드렸습니다. 바로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을 묵상하면서 정말 진심으로 진심으로 가슴을 치며 다시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절치부심하는 마음을 가지게 해 주십사 하고 예수님께 애걸복걸하는 심정으로 기도를 드리는 하루가 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애걸복걸한다고 해도 나약한 인간인지라 또 넘어질 수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래도 노력하려고 애를 써야 될 겁니다. 나약한 인간이신 줄 아시기 때문에 그런 나약함 때문에 넘어지고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서 끝까지 당신을 따르는 그 의지를 보시고 그 의지가 나중에 우리가 하늘 나라에 갈 때 오늘 제1독서에도 나오듯이 이 세상에서 쌓을 수 있는 우리의 공로가 될 겁니다. 바로 그게 전리품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 전리품을 나누게 된다고 합니다.

 

승리의 화신이며 기쁨의 축제가 될 것입니다. 바로 이런 기쁨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따라가야 할 겁니다. 그 길 너머에 바로 그런 영광이 있을 겁니다. 우리가 가는 이 인생길에서의 고통은 짧지만 우리의 이 고통을 하느님께 잘 봉헌하면 그 고통이 맺은 열매가 주는 영광은 영원히 하늘 나라에서 빛나는 별이 되어 무궁 무궁 빛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영광을 위해서라도 하루하루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려면 날마다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제자가 되어드리겠다고 다짐하는 마음을 가지면 어떨까요? 오늘 하루도 예수님과 함께 수난을 묵상하며 예수님의 영이 함께 동행하는 하루가 되시길 기도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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