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9일 (목)
(녹) 연중 제14주간 목요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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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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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20-04-07 ㅣ No.137391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전인수(我田引水)’라는 말도 있습니다. 2020년 새해는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와 함께 시작되었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에게는 국경도 없었습니다. 한국은 다른 나라와는 다른 특별한 경험을 하였습니다. ‘신천지 예수교 증거 장막 성전이라는 단체가 있습니다. 신종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대부분의 확진자는 이들 단체를 통해서 전파되었습니다. 이 단체는 다른 종교와는 다른 선교를 하였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선교하였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우리 몸에 들어와 감염시키면 치료하기가 어렵습니다.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지 않으면서 선교하면 선교를 당하는 사람은 판단할 기회와 기준을 갖지 못하게 됩니다. 영상을 통해서 본 이 단체의 예배는 아주 밀접하게 밀착하며 드리는 예배였습니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이 있다면 아주 쉽게 옆 사람에게 전파될 수 있는 예배 방법이었습니다.

 

여기서 역지사지를 말하고 싶습니다. 신천지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은 신천지 때문에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바이러스의 전파에 신천지가 거점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신천지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천지라는 사실을 숨기고, 감염의 위험이 있음에도 사람을 만나고 선교하려했기 때문입니다. 신천지임을 밝히고, 방역 당국에 적극적으로 협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바이러스는 종교적인 신념으로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바이러스는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고, 치료제를 개발하면 쉽게 극복할 수 있는 질병의 매개체 일 뿐입니다. 신천지에 있는 사람들은 다르게 생각했습니다. 자신들의 교세가 급격하게 발전한 것을 시기한 마귀의 작전이라고 했습니다. 자신들이 최고의 피해자라고 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아파도 선교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가족을 속이는 것도 허용된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서는 직장을 포기할 수도 있고, 가족을 떠날 수도 있고, 친구를 속일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친구를 속이고, 가족을 속이고, 질병을 퍼트리고 얻는 영원한 생명이 가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 가르치는 신()이 있다면, 그런 신을 믿어야 한다고 하는 교주가 있다면 그것은 참된 신이 이미 아닙니다. 그렇게 해서 얻는 영원한 생명은 없습니다.

 

여기서 아전인수를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의 논으로 흐르는 물을 내 논으로 끌어 들이는 겁니다. 양해를 구하고, 도움을 청하면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밤에 몰래 다른 사람의 논으로 흐르는 물길을 나의 물길로 옮겨 놓는다면 잘못된 행동입니다. 성서는 우리의 영혼을 풍요롭게 하는 생명의 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지금 당신이 마시는 물은 곧 다시 목마르겠지만, 내가 주는 생명의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겁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는 성서의 말씀을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면 안 됩니다. 성서를 이용해서 거짓을 합리화하면 안 됩니다. 성서를 이용해서 가정의 평화를 깨버리면 안 됩니다. 성서를 이용해서 부당한 이익을 취하면 안 됩니다. 성서를 이용해서 다른 종교에 위장 전입하면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언제나 당당하게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 등불은 등경 위에서 빛나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습니다. 성서해석은 공동선과 정의를 벗어나서는 안 됩니다. 성서해석은 인류의 지성과 영성을 품어 주어야 합니다.

 

타전인수(他田引水)’를 생각합니다. 나의 논에 흐르는 물길은 목마른 다른 사람의 논으로 흐르게 하면 좋겠습니다. 비록 그것 때문에 고난의 십자가를 질지라도, 그것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에게 배반을 당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소중한 사람과 헤어질지라도 우리는 타전인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가신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순교자들이 걸어간 길이기 때문입니다. 영원한 생명은 아전인수의 삶을 통해서는 결코 얻을 수 없습니다. 그런 영원한 생명은 사막에 있는 신기루와 같습니다. 그런 영원한 생명은 모래 위에 지은 집과 같습니다. 가까이 가면 사라지는 겁니다. 가까이 가면 무너지고 마는 겁니다.

 

이제 우리는 파스카의 성삼일을 하루 앞두고 있습니다. 교회 전례의 가장 중요하고, 거룩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주님 수난 성삼일을 준비하면서 우리들의 몸가짐을 돌아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님께서 왜 고난의 길,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셨는지 묵상하면서 오늘 하루를 지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의 성서말씀은 우리를 하느님께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욕심입니다. 유다는 은전 서른 닢에 예수님을 대사제들에게 팔아넘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재물 앞에 자신의 양심을, 친구를, 하느님과 함께한 신앙을 팔아넘기는 것을 봅니다.

 

우리를 재물에 대한 유혹에서 자유롭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자신을 비우는 무소유의 삶입니다. 오늘 제1독서는 바로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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