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9일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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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사악과 아비멜렉의 계약[5]/이사악[2]/창세기 성조사[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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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식 [big-llight] 쪽지 캡슐

2020-03-11 ㅣ No.136690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5. 이사악과 아비멜렉의 계약  

 

임금 아비멜렉이 친구 아후잣과 자기 군대의 장수 피콜과 함께 그라르에서 브에르 세바에 있는 이사악에게로 왔다. 이들은 이전에도 아브라함과 계약을 맺은 이들이다. 그때는 고문이자 친구인 아후잣은 없었다. 그들은 각자 사용하는 우물을 두고 서로가 지금은 물론 앞으로도 속이지 않도록 하는 약속을 맺는 계약이었다. 지금껏 벌어진 일들은 없는 거로 하자면서. 그 이유는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함께하니, 하느님을 두고 맹세하자면서 맺은 계약이었다.

 

이사악이 그들에게 그대들은 나를 미워하여 쫓아내고서, 무슨 일로 나에게 왔소?” 하고 물으니, 그들이 대답하였다. “우리는 주님께서 그대와 함께 계시는 것을 똑똑히 보았소. 그래서 우리 사이에, 곧 우리와 그대 사이에 서약이 있어야겠다고 생각하였소. 우리는 그대와 계약을 맺고 싶소. 우리가 그대를 건드리지 않고 그대에게 좋게만 대해 주었으며 그대를 평화로이 보내 주었듯이, 그대도 우리한테 해롭게 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오. 이제 그대는 주님께 복 받은 사람이오.”

 

임금 아비멜렉이 이사악과 계약을 맺자는 취지는 아브라함에게 이야기한 것과 거의 같다. 하느님께서 당신과 함께하고 우리가 여태 당신들에게 잘해 주었으니, 앞으로 우리에게도 잘 좀 대해달라는 내용이다. 대화 끝에는 당신은 그래도 하느님으로부터 복 받은 사람이 아니냐는 거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껏 자기네 땅에서 몇 차례 쫓아낸 주책에 이제는 제법 꼬리를 내리면서, 그래도 예의를 충분히 갖춘 모양새는 취하고 있다.

 

그리고 고문과 군사령관인 피콜까지 대동하고 온 것을 보니 중대하면서도 반드시 결실을 가지려는 의지가 역력했다. 더구나 상대는 일개 부족이지만, 그래도 명색이 임금이 아닌가? 그런 자가 이사악을 만나러 온 것을 보면, 누가 보아도 대등한 입장에서 계약을 맺자는 것이리라. 게다가 분위기도 이사악이 마치 이 만남을 주도하는 것 같아, 오히려 아비멜렉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이는 아브라함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이사악과 함께하기에 그런 걸까?

 

사실 일개 우물을 두고 필리스티아인들의 임금이 유목 생활을 하는 이사악에게, 이렇게까지 겸손하게 대하는 것은 당시 분위기에서는 감히 상상하기 어려운 일일 게다. 그런데도 그렇게 기술한 것은 성경 저자가 하느님과의 약속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아주 대단한 것이었다는 것을, 후대에 강조하고 싶었기에 좀 과장되게 표현했을 수도. 이처럼 이사악은 그래도 이스라엘 백성을 대표하는 이였다고 여겨진다.

 

아무튼 이사악은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뜻에서, 그들에게 잔치를 베풀어 함께 먹고 마셨다. 그리하여 이사악과 임금 일행은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서로 맹세하였다. 그들이 맺는 계약은 공동 식사서로 맹세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데, 이렇게 이사악은 임금과 동등한 위치에 있었다고 보이기도 한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동등한 위치에 있는 자들끼리만 서로 맹세를 하기에.

 

그런 다음 이사악이 그들을 보내자, 그들은 평화로이 그를 떠나갔다. 마치 이사악이 그들을 초청하여 계약을 주관하고 떠나보내는 모습이다. 창세기 성조사 이야기에서 이사악에 관한 주된 내용 소개는, 이것이 시작이자 마지막인 것 같다. 나머지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이야기에 부분적으로 나오거나, 아들 야곱과 에사우 이야기에 일부 아비 역할에 잠시 나온다. 이처럼 비록 그가 아브라함보다 더 오래 백여든까지 살면서(35,28), 아니 아브라함 이후 성경에 등장하는 하느님의 백성 중 그래도 가장 오래오래 살았다고 여겨지지만, 그의 내용이 이렇게 미미한 것은 그만큼 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들 야곱의 활동이 상대적으로 그만큼 많아서일까? 그 이유의 주된 답은 오로지 하느님만이 주실 것 같다.

 

바로 그날 이사악의 종들이 와서 자기들이 판 우물에 대하여 그에게 알리며, “저희가 물을 발견하였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사악은 그 우물을 시브아라 하였다. ‘시브아는 일곱을 뜻하며(21,28-30), 그 어근은 맹세하다의 것과 동일하다. 아브라함 때는 그 지역을 뜻하는 것이 일곱을 의미하는 명칭이었다고 판단하는 것 같았지만, 아들 이사악 때는 일곱보다 오히려 맹세에 더 가까운 의미를 두는 것 같다. 그런 연유로 오늘날까지 그 성읍의 이름은 브에르 세바로 불리고 있다. 이는 아브라함 때부터 불리는 이름이다.

 

이 무렵 마흔 살이 된 에사우가 히타이트 사람 브에리의 딸 여후딧과 히타이트 사람 엘론의 딸 바스맛을 아내로 맞아들였다. 이들은 이사악과 레베카에게 근심거리가 되었단다. 참 성경은 내용도 내용이지만 기술하는 시기에 따라서, 하느님의 뜻이 하느님 백성에게 전달되는 정도가 참 묘하다. 마흔 살 된 자식 놈 장가가 기쁨이 아닌, 근심거리가 되었다니.

 

이사악 이야기의 끝마무리가 아비멜렉과의 평화적인 계약으로 해피엔드로 마무리될 것 같더니, 자식 장가로 이사악과 레베카에게는 걱정거리로 끝나는 것 같아 참으로 씁쓰레하다. 특히 장가드는 아들 녀석 나이까지 들먹이면서 말이다. 에사우가 마흔이면 야곱도 마흔일 게고, 이사악은 아마도 늙어도 한창나이가 지났다는 것을 알려주려는 것이리라. 이사악이 레베카와 부부 인연을 맺은 것도 마흔 살이었다. 그리고 쌍둥이를 예순에 얻었다. 그러다 보니 이사악도 늙어서 눈이 잘 보이지 않을 백 살이나 되었다.

 

그렇지만 아브라함은 백 살에 이사악을 낳았다. 아버지에 비하면 그는 좀 고생깨나 했나 쉽다. 아무튼 마흔이나 된 맏이 에사우는 분별이 없기도 했나 보다. 동생한테 별생각 없이 장자권을 넘기지를 않나, 아브라함 할아버지가 그토록 바라는 친족 간의 결혼을 무참히 저버렸으니 말이다. 어쩌면 그는 맏이로 할아버지가 얼마나 친족에서 며느리를 고르고자 애썼는지의, 집안 내력을 모르긴 몰라도 대충은 익히 알고 있었을 수도.

 

어머니 레베카가 하란에서 왔음을 그는 아버지의 지나온 여러 이야기를 통해 충분히 알았을 것임에도, 부모님과 아무런 사전 상의도 없이 히티이트 사람 둘을 아내로 데려올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니면 애초부터 지녀야 할 자제라고는 아예 없거나, 아니면 부모에 대한 어떤 반감에서 고의로 저질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사악과 레베카의 근심거리가 더할 수밖에. 사실 이는 어쩌면 하느님께서 레베카에게 사전에 일러준 말 그대로이다. “너의 배 속에는 두 민족이 들어 있다. 두 겨레가 네 몸에서 나와 갈라지리라. 한 겨레가 다른 겨레보다 강하고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25,23). [계속]

 

[참조] : 이어서 '1. 레베카와 야곱의 속임수/야곱[3]'이 소개될 예정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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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후잣,우물,맹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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