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9일 (목)
(자) 성주간 목요일 - 성유 축성 미사 [백]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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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2020.0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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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애 [ji5321] 쪽지 캡슐

2020-01-16 ㅣ No.135352

 


2020년 1월 16일

연중 제1주간 목요일

제1독서 1사무 4,1ㄴ-11

그 무렵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싸우려고 모여들었다.

1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우러 나가 에벤 에제르에

진을 치고, 필리스티아인들은

 아펙에 진을 쳤다.

 2 필리스티아인들은 전열을

갖추고 이스라엘에게 맞섰다.

싸움이 커지면서 이스라엘은

필리스티아인들에게 패배하였다.

 필리스티아인들은 벌판의

전선에서 이스라엘 군사를

사천 명가량이나 죽였다.
3 군사들이 진영으로 돌아오자

이스라엘의 원로들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어찌하여 오늘

필리스티아인들 앞에서

우리를 치셨을까? 실로에서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옵시다.

주님께서 우리 가운데에 오시어

원수들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합시다.”
4 그리하여 백성은 실로에

사람들을 보내어, 거기에서

커룹들 위에 좌정하신 만군의

 주님의 계약 궤를 모셔 왔다.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하느님의 계약 궤와 함께 왔다.

5 주님의 계약 궤가 진영에 도착하자,

온 이스라엘은 땅이 뒤흔들리도록

큰 함성을 올렸다.
6 필리스티아인들이 이 큰 함성을 듣고,

“히브리인들의 진영에서 저런 함성이

들리다니 무슨 까닭일까?” 하고 묻다가,

주님의 궤가 진영에 도착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7 필리스티아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말하였다. “그 진영에

신이 도착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렇게 외쳤다. “우리는 망했다!

 이런 일은 일찍이 없었는데.

 8 우리는 망했다! 누가 저 강력한

 신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하겠는가?

 저 신은 광야에서 갖가지 재앙으로

 이집트인들을 친 신이 아니냐!

 9 그러니 필리스티아인들아,

사나이답게 힘을 내어라.

히브리인들이 너희를 섬긴 것처럼

너희가 그들을 섬기지 않으려거든,

사나이답게 싸워라.”
10 필리스티아인들이 이렇게 싸우자,

이스라엘은 패배하여 저마다

 자기 천막으로 도망쳤다. 이리하여

대살육이 벌어졌는데, 이스라엘군은

보병이 삼만이나 쓰러졌으며,

11 하느님의 궤도 빼앗기고 엘리의

두 아들 호프니와 피느하스도 죽었다.

복음 마르 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어렸을 때 젓가락질을 못 한다고

혼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주먹을 쥐듯 젓가락질을 한다고

 혼났습니다. 젓가락질이 힘들고

불편하더라도 고쳐야지만 예의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어른들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혼자

열심히 연습해서 고쳤습니다.

물론 고친 젓가락질도 틀렸다면서

또 혼나고, 이렇게 몇 차례의 교정 끝에

 겨우 지금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어떤 사람에게도 젓가락질을

못 한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또 아주 능수능란하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그때 어른들 앞에서 젓가락질하는

 것은 커다란 스트레스였습니다.

그래서 어른 앞에서 식사하는 것은

늘 어려웠고, 일부러 그런 자리를

피하기도했습니다.
성인이 되어, 왜 젓가락질을

그렇게 해야 하는가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물론 젓가락질을

가장 편하게 할 방법이긴 하지만,

다르게 한다고 해서 왜 예의에

어긋나는 것이 될까요?
젓가락 예절이 먼 옛날부터 전해져

내려온 것으로 생각하지만,

조선 시대의 민속화에 나타난

젓가락질은 지금과 달리 X자

 모습이었습니다. 지금처럼 V자

모양으로 젓가락 예법이 도입된 것은

 일제 강점기의 일본에 의한 것이라고

하더군요. 어떻게 젓가락질을 하더라도

예절에 어긋날 것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다른 것을 틀렸다고 말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습니다. 여기에 예절이라는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다른 사람도

이렇게 한다는 보편성을 내세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른 것이 틀린 것은

 전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나병 환자를

고쳐 주십니다. 고쳐 주실 때의

장면을 복음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손을 내밀어 나병 환자에게

 대시며 말씀하신 후, 그는

깨끗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왜 이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대셨을까

라는 의문을 갖게 됩니다. 율법의

 정결례에 따르면 나병 환자에게

손을 대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손을 대야지만 치료하실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말씀만으로도 고쳐 주셨고,

어떤 경우에는 환자게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서 치유를

받기도 했습니다.
사람마다 다른 방식으로

 다가가신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똑같은 방식으로 다가오시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게 꼭 필요한

방식으로 다가오셨던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런 모습을 보인 것은

우리 역시 하나의 틀을 만들어서

 가두어놓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획일화하는

옹졸한 마음이 아니라, 다양함을

 인정하며 받아들이는 넓은 마음이

주님의 뜻을 따르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렇게 행복하세요♡

누군가가 우리를

실망시키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 사랑을

제대로 알 수 있게 된다.

(알랭 드 보통)

주님과의 관계

꼭 가고 싶은 곳이 있었지만,

기회가 되지 않아 가보지

못했던 곳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 대한 여행 에세이

책이 있는 것입니다.

 얼른 책을 샀습니다.

다른 책보다도 먼저 큰 기대를

하면서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재미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곳에 대한

글이지만 별 감응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남이 여행하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아서 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내가 하는

 여행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자신이 직접 하는 경험이 중요합니다.

 남의 경험을 통해서는 자신의

갈망을 절대로 채울 수가 없습니다.
주님에 대한 것 역시

남의 체험만으로는

채워질 수 없습니다. 내가 직접

주님께로 가고, 내가 직접 주님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내가 직접

주님을 만나고, 내가 직접

주님과 대화를 나눠야 합니다.
주님과 관계는 어떠십니까?

여러분 자신의 뜨거운 체험을

만들고 있습니까? 혹시 남의

 이야기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시지요?

(조선시대의 젓가락질을 볼 수 있는 민속화)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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