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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에 대한 옛 생각이나 지금이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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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음에 대한 옛 생각이나 지금이나] 내게 닥치는 일이라면 두렵다.
내가 아니라,
기족이나 이웃, 혹은 멀리 있는
어떤 사람의 일이라 하더라도,
연민의 대상이거나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상대일 뿐이다.
늙음이 비참해 보이는 이유를 네 가지로 들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인식을 심어준다는 것이 그것이다.
자신이 성가신 존재가 될 것이라는 불안감이다.
로마 시대나 현대인의 삶이나
노화와 죽음은 이렇듯 두려움의 대상이다.
노년을 인생의 다른 부분이 그렇듯이
아름다운 삶의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훌륭하게 구상했던 자연이 서투른 작가처럼
마지막을 소홀히 했으리라고는 믿기 어렵네!
하지만 어쩔 수없이 어떤 종결이 있어야만 했고,
제대로 익은 뒤에 꼭지가 떨어지려고 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라네!”
현인이라면 그것들을 담담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은
무엇이든 선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노인들이 죽는 것보다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고 그는 반문한다.
‘다 익은 삶’이 노인들의 목숨을 앗아간다는생각이
그에게는 너무나 즐겁다.
마치 오랜 항해 끝에 마침내 육지를 발견하고는
항구에 입항하려는 것 같은 느낌”에 다름 아니다.
담담히 죽음을 받아들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불행히 우리들은 그렇지 못한다.
키케로 시절보다 훨씬 더 오래 살고,
우리를 둘러싸고있는 현실은 좀 더 각박하다.
고민해야 하는 기간도 늘어났고 죽음에 대해서도
증가된 정보만큼 두려움은 더 커졌다.
지식과 정보가 느린 속도로 변화하던
로마 때와는 달리 한창때 알았던 지식이
자신이 주위에 성가신 존재일 뿐이라는
자괴감 또한 노인들을 번번이 짓누르고 있다.
눈부신 발전을 거듭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노화의 과정과 죽음은 아직도 미지의 세계다.
교육을 받으며 사회에 진출할준비를 하는 데 30년,
일하는 데 30년, 은퇴 후 30년이란다.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는 30년을 전반전,
그후의 30년을 후반전으로 보고
하프타임(halftime)을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상대적으로 덜 심각하게 생각할 수 있었던 노후의 건강도
자칫하다가는 정말로 ‘성가신 존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베이비부머들이
본격적으로 은퇴 시장에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데다
은퇴자들이 일자리를 찾기는 나날이 힘들어지고 있다.
이들을 위해 준비된 일자리란
아파트 경비직이나 일용직이 고작이다.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살아가야 할 남은 날은
까마득히 길고 일자리는 없고 가족들의 눈치는 봐지고,
… 그야말로 사면초가, 진퇴양난이다.
갑자기 생긴 여유로운 시간이다.
남아도는 시간을 어떻게보내야 할는지?
사회와 가족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지?
늙은이의 고민이 날로 늘어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시간을 보내야 하는가?"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