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2월 7일 (토)
(백) 성 암브로시오 주교 학자 기념일 예수님께서는 군중을 보시고 가엾은 마음이 드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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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중 제23주간 화요일]열두 사도 (루카 6,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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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업 [rlawhddjq] 쪽지 캡슐

2019-09-10 ㅣ No.132437

 

 [연중 제23주간 화요일]열두 사도 (루카 6,12-19)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라고 한다. (콜로 2,6-15)
형제 여러분, 6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였으니  그분 안에서 살아가십시오.
7 가르침을 받은 대로, 그분 안에 뿌리를 내려 자신을 굳건히 세우고  믿음 안에 튼튼히 자리를 잡으십시오. 그리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십시오.
8 아무도 사람을 속이는 헛된 철학으로 여러분을 사로잡지 못하게 조심하십시오. 그런 것은 사람들의 전통과 이 세상의 정령들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9 온전히 충만한 신성이 육신의 형태로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10 여러분도 그분 안에서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모든 권세와 권력들의 머리이십니다.
11 여러분은 또한 그분 안에서 육체를 벗어 버림으로써, 사람 손으로 이루어지지 않는 할례 곧 그리스도의 할례를 받았습니다.
12 여러분은 세례 때에 그리스도와 함께 묻혔고,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과 함께 되살아났습니다.
13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14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 문서를 지워 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15 권세와 권력들의 무장을 해제하여 그들을 공공연한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을 이끌고 개선 행진을 하셨습니다.

 


 

화답송  시편 145(144),1-2.8-9.10-11(◎ 9ㄱ)
◎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네.
○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당신을 높이 기리나이다.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하나이다. 나날이 당신을 찬미하고, 영영 세세 당신 이름을 찬양하나이다. ◎
○ 주님은 너그럽고 자비하시며, 분노에 더디시고 자애가 넘치시네. 주님은 모두에게 좋으시며, 그 자비 모든 조물 위에 내리시네. ◎
○ 주님, 모든 조물이 당신을 찬송하고, 당신께 충실한 이들이 당신을 찬미하나이다. 당신 나라의 영광을 노래하고, 당신의 권능을 이야기하나이다. ◎

 

예수님께서는 산으로 가시어 밤을 새우며 기도하시고는,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 열둘을 뽑으시고 사도라고 부르신다. (루카 6,12-19)
12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제1독서 (콜로새2,6-15)

 

  

 

"여러분은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그분과 함께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모든 잘못을 용서해 주셨습니다."  (13)

 

 

 

 성도를 구원하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의 완전함을 보여주는 콜로새서 2장 11-15절의 문맥에서 사도 바오로는 구원받은 성도의 상태를 묘사하면서 11절에서는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마음의 할례를 받았음을 밝혔으며, 12절에서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와 일치하였음을 밝혔다.

 

 

 

이제 콜로새서 2장 13절에서는 보다 직접적으로 콜로새 성도들이 전에는 잘못을 저지르고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으로서 영적으로 죽은 상태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시고 모든 죄를 사하셨다는 사실을 밝힌다.

 

 

 

사도 바오로는 여기서 콜로새 교회의 이방 그리스도인들이 저지른 잘못과  육체의 비할례로 인해 이미 영적으로 죽어 있던 자들임을 밝힌다.

 

 

 

여기서 '잘못'으로 번역된 '파랍토마신'(paraptomasin; your sins)의 원형 '파랍토마'(paraptoma)'~에서부터'란 뜻의 '이탈'을 나타내는 전치사 '파라'(para)와  '넘어지다', '떨어지다'(마태17,15), '떨어지다'(마태10,29)라는 뜻이 있는 동사 '핍토'(pipt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문자적으로는  '정도에서 벗어남','이탈'을 가리키는 단어이다.

 

 

 

성경에서는 주로 추상적 의미 사용되어 '허물', '과실'(마태6,14),  '잘못','허물'(에페2,1), '범죄'(로마5,15), '잘못', '죄'(2코린5,19)등으로 번역되며, 원죄 뿐만 아니라(로마5,15.17) 본죄(갈라6,1)까지 포괄한다.

 

 

 

그리고 '육의 비할례'('테 아크로뷔스티아 테스 사르코스'; te akrobystia tes sarkos; the uncircumcision of flesh)유다인의 입장에서 볼 때, 하느님과 전혀 관계없는 이방인, 하느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는 자,  타락한 본성이 제거되지 않은 자,  하느님 대전에 단죄 및 진노의 대상, 비구원의 실재라는 의미를 모두 포괄하는 표현이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잘못을 저지르고 육의 할례를 받지 않아 죽었던' 이방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다.

 

 

 

여기서 '용서해 주셨습니다'로 번역된 '카리사메노스'(charisamenos; forgave ; having forgiven)의 원형 '카리조마이'(charizomai)'기쁨','은혜'라는 뜻의 '카리스'(charis)에서 유래한 동사로서 '용서하다', '빚을 면제하다', '은혜로 무상으로(공짜로) 주다'라는 뜻이다.

 

 

 

이것은 그 자신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베푸는 자의 호의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사람을 살려서 그대로 돌려보내는 것을 가리킨다.

 

 

 

여기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인들에게 베풀어지는 새로운 생명, 성화은총(하느님의 신성에 참여할 수 있는 초자연적 은혜)이 베풀어지는 것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된 용어이다.

 

 

 

사도 바오로는 잘못을 저지른 범죄와 육의 비할례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이미 죽었고, 또한 영원히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하느님께서 놀라우신 무상의 은혜를 베푸셔서 그들을 다시 살리신 것을 말하기 위하여 이 단어를 사용했던 것이다.

 

 

 

당시 콜로새 교회는 대부분이 비할례자들, 즉 이방인들로 구성된 공동체였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졌고, 그들이 하느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이것이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자비로운 은혜 때문이었던 것이다.

 

 

 

"우리에게 불리한 조항들을 담은 우리의 빚문서를 지워 비리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박아 우리 가운데에서 없애 버리셨습니다."  (14)

 

 

 

여기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율법에 미친 영향을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빚문서'로 번역된 '케리오그라폰'(cheriographon; written code; andwriting)'손'이라는 뜻의 명사 '케이르'(cheir)와 '쓰다'라는 뜻의 동사 '그라포'(grapho)의 합성어에서 유래하며 손으로 기록한 문서를 가리킨다.

 

 

 

당시 채무나 노예와 관련된 법률적 계약을 체결할 때 채무자나 노예가 직접 기록하여 자필 증서를 만들었는데, 이 단어가 바로 이러한 관습을 반영한 표현이다.

 

 

 

여기서 '조항들을 담은 빚문서'로 번역된 '케이로그라폰 토이스 도그마신' (cheirographon tois dogmasin; written code; with its regulations)'율법'을 가리킨다.

 

 

 

'조항들을'로 번역된 '도그마신'(dogmasin)의 원형 '도그마'(dogma)는  '법령'이라는 의미로서, 여기서는 복수 여격으로 쓰였으며, 이것은 '법령(조항)들을' 이라는 목적격적 의미를 나타낸다.

 

 

 

따라서 '조항들을 담은 빚문서'는 '법령들을 쓴 문서'라는 의미인데, 이것은 사람들에게 율법적 행위의 온전한 이행을 요구하는 법적 채무 증서와 같다.

 

그래서 한글 새 성경은 이것을 '빚문서'로 번역하였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사도 바오로가 이것을 '우리에게 불리한' 것이라고 지적한 사실이다. 율법은 본래 선한 것으로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거룩한 뜻과 요구를 담고 있다. 따라서 율법을 지키는 것은 매우 유익한 것이다.

 

 

 

그러나 죄로 인해 타락한 본성을 지닌 우리 인간은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다.

 

 

 

율법 준수의 절대성을 그토록 주장하던 바리사이들은 정작 율법을 준수하지 못했고,  그러면서도 마치 자신들은 온전히 지키는 것처럼 위선을 떨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율법의 무거운 짐을 메도록 강요했다.

 

 

 

율법은 단지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율법의 행위로는 의로워질 수 없는 존재임을 깨달아 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가게 하는 감시자 노릇을 할 뿐이다(갈라3,24).

 

 

 

그러한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준수하지 못할 때에 죄책감과 절망을 준다. 사도 바오로는 이러한 율법의 특성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 우리에게 불리한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다.

 

 

 

사도 바오로는 인간의 죄를 지적하고 단죄하는 이러한 율법을 하느님께서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천명한다.

 

더 구체적으로는 하느님께서 율법을 지워 버리시고 없애 버리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았다고 말한다.

 

 

 

십자가에 못박힌 대상은 예수님이신데, 사도 바오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율법이 십자가에 못박힌 사건이었다고 선포한 것이다.

 

 

 

여기서 '지워 버리시고'로 번역한 '엑살레입사스'(eksalleipsas)의 원형 '엑살레이포'(eksalleipho)'문질러 닦다', '제거하다', '지우다'라는 뜻이다. 이 단어는 어떤 책의 글씨나 사람의 마음에 어떠한 흔적도 남지 않도록 깨끗이 지우는 것을 말한다.

 

하느님께서 인간의 죄악성 때문에 그들과 맺었던 계약의 산물인 율법을 깨끗이 지워 없애 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없애 버리셨습니다'로 번역된 '에르켄'(erken)의 원형 '아이로'(airo)'들어 올리다', '나르다', '제거하다'라는 뜻으로 세례자 요한에 의해서도 사용되었다.

 

즉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을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묘사하면서 이 단어를 사용하였다(요한1,29).

 

 

 

세상의 죄를 지고, 그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고발하고 단죄하는 율법의 모든 억압으로부터 우리를 해방시킨 것을 '에르켄'(erken)이라는 단어로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못박아'로 번역된 '프로셀로사스'(prosellosas; nailing)의 원형 '프로셀로오'(proselloo)'못으로 ~에 고착시키다', '~에 못박아 고정하다'는 뜻으로, 여기서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효력을 발휘하지 못함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모든 인류에게 주어진 율법의 단죄(정죄)가 무효화되고 없어진 것이다.

 


 

 

 

 

연중 제23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6,12-19)

 

 

 

"그 무렵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2~13)

 

 

 

루카 복음 6장 12절에서 16절까지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를 임명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이 내용은 공관 복음서(마태10,1~4; 마르3,13~19)에 다 나오는데, 마태오 복음에서는  제자들의 사명이 복음 전파에 있음을 보여 주는 문맥에서 12사도의 명단이 나오는 반면에, 마르코와 루카 복음에서는 제자들을 택한 이유가 예수님께 임박한 고난과 핍박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점이 부각된다.

 

 

 

루카는 마르코와 같은 관점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산으로'에 해당하는 '에이스 토 오로스'(eis to oros; into a mountain)라는 장소를 제외하고는, 열두 사도를 택하기 직전의 장면을 다르게 소개한다.

 

 

 

예수님께서 열두 사도의 임명 전에 홀로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셨다는 사실은 루카 복음사가만이 기록하고 있다.

 

 

 

루카 복음에 있어서 예수님의 기도하시는 모습은 특히 중대한 사건을 앞두고  종종 나타난다(루카3,21; 9,18.28.29; 11,1; 22,41).

 

 

 

그렇기 때문에 열두 사도를 뽑기 전에 하느님께 기도하셨다는 것은, 열두 사도를 선택하는 일이 그리스도교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전기를 이루는 너무나 중요한 일어라는 것을 암시한다.

 

 

 

실제로 사도들은 예수님의 공생활 동안 동고동락하며 예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강림 이후에는 복음 전파의 주역이 되며 또한 교회의 초석이 되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밤새 기도하신 후 그 다음 날에 제자들을 부르셨으며, 이들 중에서 열두 제자를 뽑으셨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다수의 제자들의 무리 속에서 열두 제자를 특별히 구별하신 것이다.

 

 

 

여기서 '뽑으셨다'에 해당하는 '에클렉사메노스'(ekleksamenos; he chose)의 원형 '에클레고마이'(eklegomai)남성 단수 주격 접미어가 붙어 있어서 예수님 당신 자신이 택하심의 명백한 주체임을 보여 주고 있다.

 

 

 

특별한 자격 요건을 갖추어서가 아니라, 순전히 예수님의 깊으신 뜻과 은총으로 부름받은 열두 제자에게 예수님께서는 '사도'라는 직책을 주셨다.

 

'사도''아포스톨로스'(apostolos)라는 단어는 '어떤 자에게 특별한 사명을 주어 파견하다'라는 의미를 지니는 '아포스텔로'(apostello)의 명사형이다.

 

 

 

희랍어에서 이 단어는 황제의 명령을 받고 파견되는 전권대사를 가리키는 뜻으로도 사용되지만,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나라를 사람들에게 선포할 사람에게 붙여졌다.

 

 

 

루카 복음사가'사도'라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는데(루카9,10; 11,49; 17,5; 22,14; 24,10), 이렇게 사도직에 대한 잦은 언급은 예수님의 지상 선교 활동과 예수님 구원 사업의 동역자로 부름받은 제자들에 의한 교회 시대의 연속성을 부각시키고자 하는 뜻이 들어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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