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 (토)
(백) 부활 제3주간 토요일(장애인의 날) 저희가 누구에게 가겠습니까? 주님께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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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보니파시오 주교 순교자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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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형 [umbrella] 쪽지 캡슐

2019-06-05 ㅣ No.130195

 

헝가리의 다뉴브강에서 유람선이 전복되었습니다. 한국인 관광객들이 사망하고, 실종된 가슴 아픈 사고입니다. 사고의 원인을 파악하고 책임을 묻는 것도 중요합니다. 실종자를 찾아내고, 사고를 수습하는 일도 중요한 일입니다. 슬픔에 빠진 유족들과 생존자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정부에서도 사고수습을 위해서 해난 구조대를 파견하였습니다. 현지인들도 애도의 뜻을 표했습니다. 헝가리 한국 대사관 앞에 추모의 뜻으로 꽃과 초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한 번도 만난 적도 본적도 없는 희생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안타까운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상대방의 슬픔과 아픔을 나의 슬픔과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동양, 서양의 문명은 서로 다른 곳에서 시작하였지만 닮은 점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공동체에 갈등과 분열이 있을 때, 사회가 폭력과 전쟁으로 혼란에 빠질 때, 재물과 물질에 빠져서 양심을 속이고, 친구를 배반할 때 동양과 서양은 같은 것을 찾았습니다. 소크라테스는 , , 를 추구하라고 하였습니다. 노자는 무위의 삶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욕심, 이기심, 욕망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질서를 따라가는 것을 무위의 삶이라고 하였습니다. 공자는 용서를 이야기하였습니다. 용서의 핵심은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해 주는 것입니다. 용서의 핵심은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상대방에게 행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환웅은 홍익인간을 이야기하였습니다. 사람들은 서로 돕고 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근본을 이야기하셨습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하는 것입니다.

 

종교는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습니다. 모든 종교는 다른 이름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느님 나라, 무념무상의 공, 깨달음, 우주와 하나 됨일 수도 있습니다. 종교는 종교와 분쟁하고, 다투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종교는 악의 세력과 다투어야 합니다. 지친 영혼에 위로와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우리 앞에 놓인 악이 다양한 모습으로 우리를 유혹하기 때문입니다. ‘자살, 낙태, 환경파괴, 종교분쟁, 전쟁, 폭력, 인권유린, 가난, 질병, 굶주림21세기에도 현재진행형입니다. 과학과 기술로 무장한 우리에게 악은 더욱 강하게 다가오고 있습니다.

 

유전공학, 나노 기술, 우주 탐사선, 생명공학으로는 악의 세력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그 안에 사랑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나눔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안에 배려와 양보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래 사는 것보다는 가치 있는 삶이 우선입니다. 발전보다는 보존이 우선입니다. 미지의 세계를 탐사하는 것보다는 더불어 사는 이웃들의 아픔을 함께 아파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생명은 조작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고 존중해야 합니다.

 

요즘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고별사를 듣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이제 곧 제자들과 헤어져야 할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나 되기를 당부하십니다. 가톨릭교회의 가장 큰 장점은 하나 되는 모습입니다. 전 세계 모든 가톨릭교회는 같은 복음과 같은 독서를 읽습니다. 모든 가톨릭교회의 전례는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을 알아듣지 못해도 미사에 참례할 수 있고 의미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기도하기를 당부합니다. 기도는 우리를 악의 세력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나는 여러분들에게 모범을 보였습니다.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더 행복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삶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셨습니다. 표징을 보여주셨습니다.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주셨습니다. 말씀에 힘이 있었습니다. 우리도 바오로 사도처럼 모범을 보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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