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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일기96/김강정 시몬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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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이 여럿이면 좋겠다 여겨지는 날들입니다. 사제생활 5년을 통틀어, 주임을 모시고 사는 시집살이보다 더 힘든 것 같습니다.
선배 신부님들이 보좌 때가 행복하다며 입버릇처럼 주신 말씀..... 이제야 그 말뜻을 조금씩 이해하고 있습니다. 차라리 시집을 살 때가 마음은 더 편한 것 같습니다. 시키는 일만 충실하면 마음을 놓고 사는데, 지금은 도무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 참 이상합니다. 같은 눈인데도 보좌의 눈과 주임은 눈은 다릅니다. 보좌 때는 분명히 안보이던 것이 주임 때는 더 잘 보이고, 보좌 때 보이던 것이 주임 때는 안 보입니다. 바르다 여겼던 것들도 주임의 입장에서 보니 그릇되어 있고, 틀렸다 여겼던 것들도 제 자리가 맞습니다. 멋모르던 보좌시절, 주임신부님의 사목을 판단하며 시시비비를 가리던 철없음과, 사제 연륜을 앞질러 살았던 교만도 반성해봅니다. .......... 보좌시절에는 왜 그리도 주임의 자리가 욕심이 나든지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보좌생활 동안은 홀로 서고 싶어 안달을 내곤 했는데, 막상 홀로 서고 보니, 주임의 직분은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주임의 역할을 잘 수행할 거라며 첫 맘을 정했지만, 살수록 보좌시절보다 더 서툴고 어설픈 자리가 되고 있습니다. 차라리 보직을 내놓고, 만년 보좌생으로만 머물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집니다. ................. 문득 거울 앞에 서서, 사제복을 입고 선 어색한 또 하나의 얼굴을 들여다봅니다. 그가 바로 이 성당의 책무를 지고 있는 주임신부라는 사실에 당황스럽습니다. 보좌 딱지를 벗었는데도, 아직도 미숙하고 엉성하기만 한 이 거울속 주인공.... 주임의 자리는 자꾸만 자신이 없어져 가는데, 언제쯤이면 그에게서 완숙한 사제의 모습을 볼 수 있을는지 걱정입니다.
하지만, 미숙한 주임의 자리라 할지라도 이 자리를 꼭 제 자리로 지켜내겠습니다. 비록 힘에는 부치지만, 분골쇄신의 각오로 보직에 임하도록 하겠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중요한 건 보좌나 주임의 ’자리’ 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좌로 살든, 주임으로 살든, 사제로서의 본질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더 중하다 여깁니다. 사제로서의 본질은 놓치며 주임으로서의 자리만 고집한다면, 저는 보좌시절보다 더 못난 주임이 될 것이고, 저의 주임시절은 보좌시절보다 더 많이 어둡고 불행할 것 같습니다.
하마 사제로서의 본질을 하나 둘 잃고 사는 방탕한 모습의 삶을 보면서, 주님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이 죄스러움........... 그러면서, 순수하고 열정적이기만 했던, 그 예전의 서툰 보좌로서의 모습을 그리워합니다.
이제 성숙한 주임의 자리를 탐하기보다는, 세월을 거꾸로 되돌려, 미숙한 보좌시절을 더 많이 기억하겠습니다. 주임의 자리를 물리고, 보좌라는 초년생의 마음으로 사제 삶의 밑그림을 다시 그려 넣겠습니다. 그리고, 제 그림의 밑바탕을 항상 맑은 색깔로 그리며, 아름다운 삶의 색깔로써 채색을 입혀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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