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의 대변인이 되어주고 싶습니다.
자원봉사의 전도사 역할을 감당할 뿐만 아니라 봉사 인프라를 통해 지역사회와의 연대감을 갖고, 보이지 않는 곳
에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많은 분들에게 도움을 주길 원합니다.
” (주)롯데건설 경기중부사업소에서 차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최종권 씨는 지난 2007년 사업소 내에 사랑나눔봉사
단(단장 홍순정 소장)을 창단하고, 장애인 및 저소득 아동 등
소외된 이웃을 위해 목욕, 무료급식 등의 봉사활동을 전개해 오고 있다.
최종권 씨는 군대 제대 후부터 지금까지 15년 동안 자신보다 더 어려운 생활고를 겪고 있는 이웃을 돌보아 왔다.
행상하던 홀어머니 밑에서 어렵게 생활하며 자란 그는 고등학교 때부터는 막노동을 하며 생계를 도왔다.
그렇게 어렵게 생활하면서도 탈춤을 비롯한 각설이 공연 등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에 기쁘게 힘든 삶을 이겨낼 수
있었다. 누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직접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가 소리도 배우고 곱사춤도 췄다.
그 때 배워두었던 춤과 공연 노하우는 지금 그가 봉사하는데 큰 힘이 되어주고 있다.
-4면 -
“특히 탈춤을 출 때는 제 마음 속에 짓눌린 것들이 풀리고 좀 더 자신을 돌아보게 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런 공연들이 저를 더욱 성숙하게 한 것 같습니다.
” 최종권 씨는 미대 지망생이었으나 가정형편 때문에 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해야 했다.
그리고 자신의 타고난 천성이 ‘광대’라고 생각하고 자신 있게 지원한 연극영화과에서도 떨어지는 아픔을 겪었다. 그 후 그는 바로 군대에 입대했다.
군대 내에서 학창시절의 경험을 바탕으로 사물놀이패를 만들어 군 동료들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기도 했다. 최종권 씨는 제대한 후에도 ‘봉사’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저버릴 수가 없었다.
자신의 생계를 이어가는 것도 벅찬 상황에서 남을 돕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가족들을 더 힘들게 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를 믿어주는 가족의 동의 하에 본격적으로 봉사활동을 해보기로 결심하고, 2004년도에 (사)곰두리 봉사
단 인천남동지부 사무처장을 역임, 2006년도에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인천지역대학 일본학과 봉사단장.인천지역연
합봉사단장 등을 역임했다. 이 외에도 승국문화재단 봉사상,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총장공로상 등을 수상하며 진정
한 봉사의 의미를 되새기기도 했다.
“장애인 차량봉사, 목욕봉사, 국제행사통역 및 각종 축제 행사도우미, 저소득계층 어르신 위안잔치 공연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전개하면서 제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진정한 삶의 의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최종권 씨는 봉사를 하면 할수록 눈으로 보이는 형식적인 봉사보단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었다.
힘들어하는 그들에게 다가가 자신이 누리고 있는 기쁨과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 “처음 자원봉사활동에 참여해
양로원에 갔을 때 각설이타령을 공연했는데, 미흡한 실력에도 불구하고 어르신들은 너무나 즐거워하셨습니다. 그
이후부터 더 열심히 봉사활동에 임했고, 여기저기서 저를 필요로 했죠.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임을 그때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습니다.” 더 늦기 전에 공부를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최종권 씨는
2002년 한국방송통신대학교 인천지역대학 일본학과에 입학했고, 방통대 인천지역 연합봉사단의 기반을 닦는 일
에도 앞장섰다. 그의 ‘봉사’에 대한 열정은 방통대와 지역사회 및 여러 사회단체들이 ‘봉사’를 위한 네트워크를 구
축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지 고민하도록 이끌었다. 자원봉사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지역의 자원봉사자들을 체계적
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문자원봉사자를 양성해내는 자원봉사관리자 과정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학교 측에 제
안했다. 이러한 그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방통대에 자원봉사 프로그램 계획과 인력관리에 대한 국제공인 전문자격
인 AVA(Association for Volunteer Administration, 자원봉사관리연합회)가 신설되기도 했다. 최근 그도 AVA의
자원봉사관리자 과정을 수료했다. 최종권 씨는 “자원봉사 인력은 늘어나고 있지만 정작 활동의 지속성과 효과성
은 낮다”며 “이를 효과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얼마 전 부평구
에 위치한 한 공부방 자폐아 모임의 요청으로 AVA 자원봉사관리자 과정을 수료한 전문자원봉사자들 40여명과 함
께 자폐아들을 데리고 계양산을 등반한 적이 있다. 중턱에서 반 정도는 포기하고 반 정도는 정상까지 올라갔다.
그런데 정상을 향해 올라가던 도중에 한 아이가 없어져 발칵 뒤집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경찰에 신고해 온 산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지 못하고 어느 덧 어둑어둑 해지고 있었다. 총책임자였던 그는 필사적으로 산을 뒤졌고, 한
골짜기에서 혼자 울고 있는 그 아이를 발견했다. 미안한 마음과 반가운 마음이 교차하면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
체하지 못한 채 아이를 들쳐 업고 산을 내려왔다. 그는 그 때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
마나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또한 자폐아지만 그 아이들에게도 규율을
가르치고 교육할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한편, ‘봉사’에 대한 열정 하나만 갖고 달려온 그에게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소아암 어린이에게 골수기증을 하고 싶은 마음에 골수기증 신청을 했고, 6년 만에 연락을 받아 골수 기증을 했다.
이 때 그는 방통대 회장을 맡고 있었는데, 주위에서 ‘얼마를 받고 기증했냐’는 등의 말이 들려오기 시작했고, 그의
이야기들로 학교 게시판이 뜨겁게 달궈지기도 했다. 또한 골수 기증을 한 후 3개월 동안의 회복기간은 그에게 가
장 힘들었던 시기로 기억된다.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한 가정의 가장인 그는 마냥 쉬고 있을
수 없었다. 어떤 일이든 닥치는 대로 다 했던 시절이었다. 그런 그의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던 친한 친구의 말만
믿고 집을 담보로 3천만 원을 대출받아 새롭게 일을 시작해보려 했으나 사기를 당하고 말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고 남에게 베풀고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가장 친했던 친구에게 사기 당하고 나니 세상이 달리 보
였다. 세상의 어떤 사람도 못 미더웠다. 다시는 봉사도 하지 않겠다고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원망하기
도 했다. “저소득층 및 피학대아동 등 정말 어떤 곳에서도 도움을 받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교육뿐만 아니라 문화적 혜택을 누리게 해주고 싶습니다. 이젠 그들이 주최가 되는 프로
그램이 늘어나야 합니다. 이를 위해 같은 생각을 품고 있는 사람들을 모아 후원회를 결성할 계획입니다.” “봉사는
삶의 에너지”라고 말하는 최종권 씨는 봉사하는 일에서만큼은 1인자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비록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인정해주지 않아도, 풍족한 삶을 살지 못해도 자신의 것을 나눠줌으로써 더 큰 것을 얻는 방법을 깨달았
기 때문에 그에겐 항상 부족함이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