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4일 (목)
(녹) 연중 제13주간 목요일 군중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권한을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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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61.106.106.*]

2006-05-29 ㅣ No.4219

 

   † 찬미예수

 

   마음이 무척 아프시겠습니다.

   그래도 용기를 잃치 않으셨슴 좋겠습니다.

   고통이란 것은 마음이 겸손한 사람에게 보다 하느님의 눈으로, 성자이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그리고 성령의 은총을 바라볼 수 있도록 은총을 부어주십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삼위이시면서 한분이시며 지금의 자매님이 이리 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매님이 아내로서 불자였던 남편을 주님 품으로 인도하신 것도 이러하신 그분의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당신께서 원하시는 자녀에게 시련을 통한 도움을 요청하시는 것 같습니다.

   세상이 너무 악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간의 신뢰의 상처 얼마나 아프시겠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는 저녁기도중에 주님께서 가장 믿었던 내가 배반을 하였을 때의 그분이 가장 아파하신다 하셨습니다.

 

   대개의 여인은, 아니 우리나라의 다수의 아내들이 이럴 경우 남편을 도위시하고 자녀에게 편중되는 위로를 얻으려 합니다. 그리고는 세계적인 이혼 왕국이 된 이혼 참피온 국가 미국의 문화를 닮아가고 있습니다. 어느새 생명을 인간적 '인위조절'로써 허무하게 방관하는 출산률 저조국가 왕국으로도의 불명예를 안고 있습니다.

 

   이는 이나라의 수호자이신 성모마리아를 모함하려는 어둠의 세력들의 획책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무지속의 방관들을 성자이신 예수님의 입으로, 성령이자 성부이신 그분의 눈과 귀로써 재무장함으로써 대처하라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한분이자 삼위이신 하느님의 도구 됨은 사실 아쉬울 것이 없습니다.

 

   현대의 남성들은 그 무지속의 지뢰밭과도 같은 음욕등의 유혹을 받는 문화권에 살고 있습니다.

 

   여성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의 배신에 아파하는 자매님의 그것은 죄가 아니겠으나(느낌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으로 윤리성이 따르지 않는다 하셨습니다), 그것을 미워하기만 하거나 저주로 이어지는 것은 훗날 필연으로 후회를 동반하다가, 여전히 이나라의 여성들의 일자리가 남성 우월주의로 되어 있기에, 또한 적지 않은 여성들의 안정욕구와 '돈'이란 것이 질기게 형성되어 있기에, 노래방 도우미등의 어둠의 꽃으로 전락하기 쉽습니다. 절대로 '나는 안그럴거야!'라던가의 낙관은 금물이겠습니다.

 

이나라의 여성들에게 있어서 어느새 휘귀 직종이 되어가는 '식당의 고생하는 아줌마'들은 그래서 존경스러운 직책이기도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님의 남편과 달리, 들통나지 않은 어리석은 남편상들은 이 아주머니들에게 함부로 하대를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자매님의 남편의 경우는 '바오로 특전'으로 유래된 교회법상에서 하느님이 맺어주신 '혼인성사'를 득하였을 경우에도 혹여 파혼이 가능할 수는 있겠는데, 오늘날 교회법도 복잡한 현대사를 구원하고자 복잡한 해석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따라서 본당 사목에 치중해야 할 신부님보다는 필요시 '교회법원'의 문을 두드리시어 담당 신부님과 직접 상담하시는 절차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분노의 마음중에는 보다 진정할 수 있는 신앙인으로서의 자세와 판결이 요구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적으로도 한순간의 첫사랑으로 이루어졌던 남편이 지금은 돈도, 여자도, 그리고 아내와 자녀들도 잃을수 있는 어려운 형국으로써, 감옥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좋은 아내는 부와 명예등으로 행복을 공유하기 이전에 배우자가 가장 어려울 때 그것을 나눠야 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현대의 또다른 위기의 부부들에게 '상호이해'라는 정체성과 이보다 선행으로의 즐겨 봉헌하여야 할 '상호복종'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겠으며, 따라서 고통은 지극히 감사로운 기도로써 치유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중에는 기도가 어렵기에 우선 '당겨서 감사할 수 있는 지혜'도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역시 성삼위의 은총 없이는 불가능한 것으로서 나약한 인간적인 의지로, 남는 시간에 선행을 교류하려 한다면 긁어 부스럼만을 낳을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자매님이 우선적으로 성모마리아의 전구에 의지하며 성삼위의 지극히 단순한 그것으로 먼저 숨 쉬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먼저 자매님의 간절한 기도로 하여금, 파혼을 보류하되, 감옥에 갇혀 있는 남편과의 그동안 부부로서의 못다한 깊은 대화를 나눌 것을 권고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나서 파혼을 추진하여도 늦지 않겠는데, 여하튼 칼자루는 자매님 손에 쥐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성모님은 기도를 해결해 주시는 분이 아니고, 우리의 기도를 하느님께 전구해 주시는 분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모님은 지극히 인간적인 우리의 신앙 선배이기 때문입니다.

 

아이가 아빠보다 엄마에게 꼬치 꼬치 자연스럽게 상담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치일 것이며 우리 신앙인들도 성부께 어려운 이야기를 성모님과 꼬치 꼬치 상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상처중에는 보다 범위를 넓게 기도해야 합니다. 상처중에 너무 세세히 기억하면 계속하여 충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도 대화는 타이밍이 중요하니 상심할 필요가 없겠습니다.

 

여성들은 고대로부터 어려운 사회활동에 적응해야 하는 남성의 세가지 사고 대처력과는 달리, 한가지형의 단순사고가 이어져 오기에 이 모성애를 닮은 그것을 남용하여 '대화의 타이밍'을 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안하는 여성은 모성애가 박아지로 변질되기도 합니다. 역시 단순 지혜로서 치유받으시길 권고드립니다.

 

예수님이 돌아가신 금요일에 지방을 전전하며 음욕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한 남,녀가 되어야 했던 남편의 모습은 우리가 기도중에 우리 자신의 잘못된 모습과 매우 흡사할 수 있겠습니다. 모든 선과 악, 그리고 하느님과 우리, 또한 세상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이 연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도 분노를 해소하려는 그것과 이시대에도 만연한 쾌락 우선주의는 신중해야 할 것입니다. 때때로 악은 이처럼 선보다 발걸음이 빨라 보일 수 있슴을 인정하십시오.

 

자매님이 금번 남편에 대한 사태의 십자가를 질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는 역시 지금의 상처받은 자매님이 선택할 몫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겸허하게 성체안에 홀로 계시게 했던 우리의 오류들 가운데, 주님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묵상하면서 더욱 주님의 권능에 내어 맡겨야 할 타이밍인 것 같습니다.

 

하느님은 자매님께 무조건 굴육과 희생을 강요하는 분이 아니니, 안심하십시오. 그리고 미사와 영성체, 묵주기도와 성체조배로 부르시는 은총에 감사를 드리도록 노력하십시오. 이 성화의 방법은 남남이 되던지 않던지간에 남편에게도 그리고 자녀의 앞길에서도 또하나의 영혼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조강지처를 버리는 남편에게 저주를 내리시기도 하는 분입니다. 그러나 오늘도 고해소에서는 하느님이 직접 사제의 소리를 통하여 설사 '살인을 하였습니다'라고 고해할지라도 '잘하셨습니다'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이는 주님께서 우리의 잘못보다 회개하는 것을 더 기뻐하시기 때문입니다.

 

악이란 존재는 자매님이 남편을 구제하기 위하여 분주히 뛰었을 때, 그렇게 방해를 하는 어둠의 세력입니다. 이 때에도 자매님은 철저하게 이기적인 구원론을 성모님께서 뱀의 머리를 밟고, 우리의 성가정을 지향시켜 주시듯, 자매님 역시 그렇게 뱀(매우 냉철하고 똑똑한)을 밟고 일어설 수 있는 힘을 회복하셔야 할 것입니다.

 

사실, 고통이란 하느님이 주시는 최고의 은총으로서 그저 개미처럼 자기 가족의 안위에 젖은 사람들이나, 거미처럼 어둠속에 진을 친 사람들에게는 하느님의 징벌쯤 까지만 여기는 한계성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러한 고통을 하느님 제대위로 돌려드리려 할 때 자매님은 장차 이웃의 아픔에도 보다 현명히 대처하고 공유할 수 있는 꿀벌형 평화의 도구로써 거듭나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분명 우리 모두에게도 현재의 모든 여건을 이겨낼 수 있는 유익한 신앙의 실천입니다.

 

이를 위하여도 그리스도 신자들이라면, 마땅히 서로 상충될 수 있는 세속법보다 교회법을 우선적으로 따라야 할 것입니다.

 

교회법상에서 자매님의 파혼이 허락되었을 경우도 '조당'에서 자유로울 가능성이 높겠습니다. 오히려 하느님이 맺어주시는 '혼인성사'가 아닌 천주교 신자로써의 세속 결혼이 교회법상 '동거'로써 이러한 보이지 않는 '조당'자들의 아픔이 더 심각할 수 있겠습니다.

 

조당이란 '성사권의 규제'라는 중벌에 해당됩니다.

 

가톨릭 교회법상으로는 바오로 특전에 의거된 이혼자들의 구원을 위하여 이혼후 재혼하지 않았을 경우, 별거로 인정되며 부분적인 성사의 은총을 허락하고 있습니다. 입문성사인 영성체, 고해성사, 병자성사등의 치유의 성사등이 가능합니다. 이 점도 너무 걱정 마시고, 다만 현재의 고뇌중에 자칫 이러한 은총을 이기적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유의하시면 됩니다.

 

자매님이 현재의 고통받으시는 주님의 십자가를 나누어 지고 계시기에, 우리를 속속들이 아시는 당신앞에 나와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매님으로 하여금, 계속하여 주님을 성체안에 살아계신 길, 진리, 생명으로 고백하셔야 할 것입니다.

 

감실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차가운 마음을 뜨겁게 해주시며 힘을 주시며 위로하고 격려하시고자 우리를 초대하시는 주님께 우리가 자아해석으로 뒤집어 쒸우던 그 오류들도 바쳐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잘못을 기억치 않으시고, 다만 사랑의 고백을 듣고자 하시기에 감사드릴 수 있을 것입니다. 역시 주님을 닮아 남편의 잘못을 기억치 않으시고, 다만 사랑의 고백을 나눌 수 있다는 것은 나중의 문제입니다. 모든 것이 연계된 신비로운 신앙의 여정을 그리스도의 성사 생활의 수덕으로 봉헌해야만이 그것이 가능한 일일것입니다.

 

그저 마음을 성삼위의 그것으로 모으고자 기도하시면 될 것입니다. 절대로 내 맘속으로 모으지 마십시오. 선과 악의 갈림길이 시작되기 때문인데, 주님안으로 들어가면 모든 것이 역전 되기도 할 것입니다.

 

주님, 이 자매로 하여금, 당신을 뵙고자 하는 간절한 원의를 보시어 우리에게 유익하다고 생각하시는 모든 은총을 주시고, 당신의 사랑을 이끌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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