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29일 (토)
(홍)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 사도 대축일 너는 베드로이다.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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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최근의 페리치 주교님의 말씀(메쥬고리예 발현과 관련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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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220.77.163.*]

2005-03-31 ㅣ No.3346

발현에 관하여 신자들이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주교님의  말씀과 판단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읽는 분들께 도움이 되길 바라며 번역이  서툴러서 죄송합니다.

 

 

 

 

 

 

 

An updated statement from bishop Ratko Peri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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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ĐUGORJE:
SECRETS, MESSAGES, VOCATIONS, PRAYERS, CONFESSIONS, COMMISSIONS

Msgr. Ratko Perić
bishop of Mostar-Duvno, BiH
 
From a talk given at Maynooth, Co. Dublin, February 17, 2004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메쥬고례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있는 인구 약 4천여명의 모스타-두브노 교구의 한 본당이며 1981년 6월 24일부터 그 이후로 프란치스꼬회의 신부들이 사목을 담당해 왔으며 몇 몇 프란치스꼬회 사제들을 포함하여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평화의 여왕으로 소개하고 있는 소위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몇 몇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다..
 
I. 메쥬고례에는 소위 환시라고 하는 것과 시현자들이 얼마나 있는가?


비스카 이반코비치-1964년 9월 3일 메쥬고례에서 태어난 비스카는 1981년 6월 24일부터

날마다 발현들을  보아왔다. 발현이 없었던 날도 있었으나  10번에까지 이른 날들도 있었다

.비스카는 2002년 마리오 미야토비치와 결혼하여 현재 한 명의 아이를 두고 있으며 이웃 본당인

그라디나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 몇 번의 환시를 보았을까?-
발현이 있었던 날들을 간단히 계산해보면 어제의 것을 포함해서 모두 8270번이 될 것이다.

이러한 발현들을 발현의 초기 몇 년 동안에는 다른 시현자들과 함께 보았으나 지금은 수 년간

그녀가 어디에 있든지 저녁에  그녀 혼자서 발현을 보고 있다.

마치 발현이 계획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다.


마리야 파블로비치-

마리아는 1965년 4월 1일 메쥬고례에서  태어났으며 1981년 6월25일 발현이 시작된 둘째 날부터 지금까지

매일 발현을 보는 시현자이다.그녀는 1993년 이태리인인 파올로 루네티와 결혼하여 아이 셋을 두고 있으며

이태리 밀라노 근처의 몬자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 몇 번의 환시를 보았을까??
그녀가 그 특권을 입은 다른 아이들과 함께 보았거나, 혹은 그녀 따로 보았던  발현들과 함께

어제의 것을 합하면 약 8270번이다.

발현은 메쥬고례라는 장소에는 많이 구애받지 않고 사람을 따라 이루어졌다.
이 시현자들이 세계의 어느 곳을 여행하더라도 발현은 그들과 함께 여행했다.


 

이반 드라기체비치-

1965년 5월25일 모스타에서 태어난 그는 1981년 6월24일부터  지금까지 매일 발현을 보고 있다.

그는 1994년 전 미스 매사츄세츠 출신의 로린 머피와 결혼하여 4명의 아이를 두고 있다.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보스톤에서 그의 가족들과 보내고 있으며
그 나머지 시간을 메쥬고례에서 보내고 있다.
이반은 지금까지 몇 번의 발현을 보았는가?
다른 시현자들과 같이 혹은 따로 본 것과 어제의 것을 모두 합하면 8270번 정도가 된다. 

미리야나 드라기체비치-

1965년 3월 18일 사라예보에서 태어났으며 1981년 6월 24일부터 발현을 보았다.

그녀가 규칙적적으로 발현을 보는 것은1982년 성탄절이 마지막 날이었고 그날 이후로는

1년에 한 번씩 3월 18일 그녀의 생일에 발현을 보아왔다

이와함께 1987년 8월 2일부터 매달 2일에 그녀는 성모님의 목소리를 듣거나 경우에 따라

성모님을 보기도 한다. 17년 12개월 만큼 성모님을 보기도 하고 목소리를 듣기도 했다.
미리야나는 1989년 마르코 솔도와 결혼하여 2명의 아이를 두고 있으며 현재 메쥬고례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 몇 번의 환시를 보았을까?
모두 합해서 약 770번이다.


이반카 이반코비치-

1966년 6월 21일 메쥬고례에서 태어났다.

발현 현상은 1981년 6월25일부터 1985년 5월 7일까지 그녀에게 나타났다.
그녀는 현재 1년에 한 번 발현 기념일인 6월25일에 발현을 보고 있다.
그녀는 라이코 엘즈와 결혼하여 3명의 아이를 두고 있으며 현재 메쥬고례에서 살고 있다.
그녀는 지금까지 몇 번의 환시를 보았을까?

모두 합해서 약 1450번이다.

 

야콥 콜로-

 

1971년 3월 6일 메쥬고례에서 태어났다.
그는 1981년 6월 25일부터 1998년 9월 12일까지  매일 발현을 보아왔다.
이날 이후로 그는 1년에 한 번 성탄절 날만 발현을 보아왔다.

그는 1993년 이태리 출신의 안나 리자 바로찌라는 여성과 결혼하여 3명의 자녀를 두고
현재 메쥬고례에서 살고 있다.
그는 몇 번의 환시를 보았을까? 다른 시현자들과 같이 또는 따로 본 것을 모두 합해서 약 6290번이다.


추측컨대 성모님께서는 시현자 중 한 명은 미국에 있고, 다른 사람은 헤르체고비나에 있으며

3번 째 시현자는 이태리에, 네 번째는 메이누스에 있다고 해도 같은 시각에 각자에게 정기적으로 발현해오고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발현을 지금까지 모두 합하면 33320번에 이른다.
이제 메쥬고례를 인정을 받은 두 개의 성모님 성지와 비교해보자.


1858년 루르드에서 성모님께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으로 베르나뎃뜨에게 18번 발현하셨다.

교회는 이 발현을 받아들여 그뒤로부터 4년 뒤인 1862년 진실된 것으로 선포했다.

1917년 파티마에서 성모님께서는 묵주 기도의 성모님으로10살짜리 양치기 아이들인 루치아, 프란치스꼬

히야친타에게 발현하셨고 13년 뒤인1930년에 교회는 이것을 진실된 발현으로 인정했다.

1년에 단 한 번만 발현을 본다는 3명의 시현자가 메쥬고례에서 살고 있는 것에 반해 날마다

발현을 본다는 시현자 중 3명은 메쥬고례 바깥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지내고 있다.

부디 나에게 이 통계들의 정확성에 대해서 묻지 말아 주시길 바란다..
발현이 천 번 이상이든지 그 이하이던지 발현이 이 곳에서 할 일은 아무없도 없으니까 말이다!

교구별, 국가별,그리고 교황청등 여러 단계의 교회 권위는 단 한 번의 발현을 두고 진실된 것으로

인정한 적이 없었다. 
 

2.의심스러운 성모님은 얼마나 많은 비밀들을 소위 시현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주었는가?
 
1년에 한 번 발현을 보는 아이들이 10가지 비밀을 받은데 반해 매일 발현을 보는 아이들은

9가지의 비밀을 받았다.9가지 혹은 10가지 비밀들이 주어졌고 시현자 아이들이 서로 그것을 알고 있는지

또는 각각의 시현자들이 다른 비밀들로부터 자신의 것을 구분하는 자신들만의

어떤 번호같은 것을 가지고 있는지는 확실치 않다.

우리가 이것을 진실된 발현들과 비교를 해 본다면 루르드에서는 세계를 위한 비밀은 없었으며

반면에 파티마에서는 한 가지의 비밀이 세 개의 파트로 나뉘어져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메쥬고례에서는 아홉가지 혹은 열 가지의 비밀들이 있어 왔으며

혹은 57가지의 비밀까지도 있을 수가 있는데 이것은  10가지의 비밀을 받은 3명의 아이들과

9가지의 비밀을 받은 다른 3명의 아이들에 의해 나누어 진 것이다.
지금까지 단 하나의 비밀도 밝혀지지 않았다

.발현의 초기에 장차 일어날 “큰 징표”에 관한 묵시록적 이야기들이 있었으나

지금까지도 “큰 징표”는 일어나지 않고 있으며

징표에 대한 기대는 줄어들고 있다.


 3. 메세지라고 하는 것은 얼마나 있어 왔는가?
 
메쥬고례의 모든 메세지는 5개의 기본적인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보통의 경우에 이 다섯개는 실질적으로 다음의 14개이다.
평화,회개, 기도, 단식, 깨어있음, 보속, 증거함, 믿음,거룩함으로 부르심, 성체성사,하느님의 말씀,

매달 고해성사, 묵주기도….
많은 저자들이(메쥬고례에 관한 책의) 이 14개의 메시지로부터 어떤 5개를 택할지  의견들을

매우 달리 하고 있다.

이태리나 프랑스, 크로시아 출신의  저자등, 모든 저자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해석들을 가지고 있다.매일 주어지는 메시지 이외에 이태리에 있는 마리아에게 매달 25일에 주어지는

특별한 그달의 메시지가 있다는 것을 언급하는 것은 중요한 일인데 그녀는 그 메시지를 점검하기 위해

메쥬고례 본당 사제관으로 보내고 그 뒤에 전 세계로 내보낸다.

이 메쥬고례의 다양한 해석가들의 모든 메시지들은 매주 일요일 성당들에서 들려온다.
우리들에게 메쥬고례의 색다른 점은 매월 25일 평화의 여왕이 메시지와 함께 특별한 대화를 보낸다는

것이 될 것이다.


:”내 초대에 응답해주어 고맙다. 아이들아,”

성모님은 성모님과 함께 만나서 이야기 하기를 원하고

허락해 준 것에 대해, 시간을 내어 준 것에 대해 아이들에게 감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말에 의하면 성모님께서는 자신의 초대에 응답한 아이들에게 놀라고 감사하고 계시는 것이다.

이것은 어느 정도 부모가 태어나 준 것에 대해 자신의 아이들에게 감사하거나 

몸이 허약한 사람이 건강을 회복한 것에 대해 의사가 감사를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 (Ogledalo Pravde=Mirror of Justice, Mostar, 2001, pp. 249-250).


4.발현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성소가  열매 맺었는가?
 
6명의 메쥬고례 시현자 중에 아무도 종교적 성소를 성취한 사람이 없다.
그들 중 3명이 수도원에 들어가겠다고 말했으며 2명은 이 설명하기 어려운 발언을 따르기 위해

수도원에 들어가기까지 하였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것이 사라져 버렸다. 


이반 드라기체비치-

그는 헤르체고비나 지역의 프란치스꼬회 지원자가 되었다.

1981년 발현과 더불어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비소코의 소신학교에 들어갔다

재시험에  통과하지 못하게 된 이유로  그는 듀브로브닉의 소신학교로 간다면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는

결정이 내려졌다.듀브로브닉에 있는 동안 재시험에 힘을 써서 2학년에 진급하였으나

그는 발현에서 한 것처럼 학업에는 재능을 보여주지 못하였으며 이렇게해서 1983년 1월 집으로 돌아왔다.

신학교에 작별을 고하고 난 뒤 이반은  지금까지 매일 발현을 지속적으로 보아 온 것 뿐 아니라 

지역 주교인 자니치 주교님이 메시지를 인정하라고 거세게 요구를 하기 시작했다

1994년 그는 보스톤에서 한 미국 여성과 결혼하고(O.P.,34) 그것으로 인하여 되돌릴 수 없게

그의 종교적 성소를 결혼으로 바꾸고 말았다. 


빅카 이반코비치-

 발현초기부터 그녀는 종교적 삶에 대해 열정을 나타냈다.

1981년 9월 그녀는 한 이태리 주간지에 이 사실을 밝혔다.

”나는 수녀원에 들어가서 수녀가 되고 싶습니다” 그녀는 등록된(말로써)  수녀였지만 한 번도

수녀원에 들어가 본 적이 없다.20년이 지난 뒤 

그녀는 이웃 본당인 그라디나 출신의 한 젊은 남자를 만났고 둘은 메쥬고례에서 결혼하였다.

2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초대 되었고 호기심 많은 손님들이 그들의 결혼 파티에 참석하였다.

파티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그녀는 옆에 남편을 대동하고  결혼파티의 소란스러움으로부터

몇 킬로미터 떨어진 그녀의 새로운 집으로 가서 발현을 보았다.

모든 것이 원래대로 규칙적인 프로그램에 의해 진행되었다.

그 뒤 그들은 결혼 파티로 되돌아 왔다. 이 시현자는 발현초기에 등록된 수녀로 알려졌지만 

그러나 20년 뒤에 그녀는 자신의 웨딩 드레스를 사기 위해 로마를 여행하였다.

그녀는 한 기자에게 이것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였다

:성모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선택할 자유를 주셨다.모든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성소에 응답할 수 있다.

현재 내가 결혼했다는 사실에 개의치 않고 나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계속해서 전파하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인의 삶은 결혼 속에서도 증명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종교적 성소와 관련하여서는 그녀는 자유로우나, 성모님의 메시지 전파와 관련하여서는 그것이

그녀에게 의무란 말인가?  


 

마리아 파블로비치-

당신들 중 왜 그 누구도 신부나 수녀가 되지 않았나요?라는 한 이태리 기자의 질문에 대한 답으로

마리아는 2001년 다음과 같은 설명을하였다
"수 년 동안 나는 내가 수녀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나는 한 수녀원을 방문하기 시작했으며 그 곳에 가고 싶다는 내 바램은 매우 강했습니다.

그러나 고참 수녀가 한 번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마리아, 당신이 이곳에 들어 오길 원한다면 매우 환영합니다. 그러나 주교님께서 당신이 메쥬고례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지하는 결정을 하신다면 당신은 순명해야만 합니다.”

그 순간 나는 나의 성소는 내가 보고 들은 것에 대해 증거하고 수녀원의 바깥에서 거룩함의 길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O.P.,P28))
이렇게하여 그녀는 수녀원 바깥에서 거룩함으로의 길을 찾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다.

마리아는 남녀 혼성 영성 단체에 들어가 그곳에서 수 개월을 머물렀다.

그녀는 그 뒤 사람들의 (경악을 불러일으키는 )한 설명서를 쓰고 그것과 함께 그 곳을 떠났다.

처음에 성모님은 마리아를 통해서 그런 단체를 성립하는 것이 하느님의 계획이고

하느님의 일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마리아는 적었었다.

그 뒤 그녀가 이 공동체를 떠나고, 이 편지를 적을 수 있도록 도와준 그녀의 남자 친구와 함께 이 공동체를

떠났을 때 그녀는 1988년 7월 11에 자신이 직접 쓴 글에 적힌 모든 것을 부정하였다.
하느님 앞에서, 성모님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앞에서 그녀는 이 공동체와 이러한

하느님의 일을 위해 그녀를 통한 어떠한 메시지도 없었다는 것을 범주적으로 부정하였는데

그녀는 그 곳에서 수 개월간을 살았던 것이다


그 당시 1983년 메쥬고례 시현자들의 영적 지도자인 프란치스꼬회의 토미슬라브 블라지치 신부는

스위스 신학자인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에게 편지를 썼다.

”아이들은 수도원에 들어가고 싶어하지만 그들만이 아는 가장 적당한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전 세계는 이러한 일들이 단순한 이야기거리거나 아이들의 요정이야기 같은 것이었음을  알고있다.

메쥬고례의 특권을 받은 모든 아이들이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 아니라,

수도원에 들어갔던 아이들도 재빠르게 떠났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비교가 온당치 못한 일이라고 믿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성소들을 가장 많이 알려진

두 곳의 성모님 성지의 경우와 비교해 보겠다


루르드에서 14살의 베르나뎃뜨는 한 번은 이런 말을 하였다

”나는 수녀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수녀원을 가야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성모님께서 이 사실을 말씀하셨고 저는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녀는 1866년 7월에 수녀복을 받았다.몸이 허약했음에도 불구하고 1879년 4월 16일 죽을 때까지

수녀원 생활을 잘 견디어냈다.
교황 비오11세께서는 1933년 원죄 없으신 잉태 축일에 그녀를 시성하셨다.


두 번째, 파티마에서 시현자인 루치아는 1921년 수녀가 되었고 1948년
가르멜의 수녀가 되었다.어린 프란치스꼬와 히야친타는 어린 아이로 죽었고

2000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2세에 의해 시복되었다.메쥬고례의 경우 모든 부분에 이상한 점이 있다.

자신들 스스로 수도원 등록을 하려고 했으며 자신들 스스로 포기하여 행복하게 결혼했던 3명의 시현자들이

여전히 매일 규칙적으로 발현을 보고 있는 것이다.

반면에 수도원에 들어가지 않았던  아이들은 일년에 한 번만 발현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수도원에 들어 가지 않은 아이들에 대한 보상이라고 생각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느님의 은총-신학교에 들어가 뒤에 사제가 된 헤르체고비나 출신의 많은 소년과  내가 아는 바

수녀가 된 많은 소녀(메쥬고례에서만 현재 30명이 넘는 사제와 수녀가 있다)들은 어떤 발현이나 메시지,

초 자연적 현상을 만나 본적이 없는 이들이란 것을 마음에 담아두자.

이 23년 동안 770번에서 8270번의 발현을 보아왔던 시현자들 중에 그 누구도 종교적 성소를 이루지 못했다는 것은 정말로 이상한 일이다.
이러한 동일한 현상들은 자니치 주교에게 위협적 방법으로 그들에게 아무런 질문 없이 메시지를 진실된

것으로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모든 진실된 종교적인 성소는 하느님의 은총이며 중대한 일이다.

종교적인 성소가 시현자들의 손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은  무책임하게 보여져 왔다. 

5. 기도와 고해는 무엇을 증거하는가?
기도는 메쥬고례의 발현에서 중요한 요소이다.

대부분의 모든 경우에서 주기도문을 바치는 것으로 아이들을 위한 발현이 시작된다. 


기도하지 말라는 메시지- 

1981년 9월 16일:”성모님은 그들에게 자신들을 위해 기도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왜냐하면 가장 좋은 방법으로 그들에게 보답을 해주셨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신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여야 한다”(O.P, P111)- 성서상의 성모님께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기도할 필요가 없으며 발현의 상급이 기도를 대신한다고 결코 말씀하시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거짓된 가르침이다.

예수님께서도 먼저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셨으며,

그리고나서 당신의 사도들을 위해, 그리고 모든이들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온 세상을 위해 기도하셨다.(요한 17).


3. 자니치 주교를 위해 기도하라는 메시지!

 메쥬고례의 기도 그룹과 관련하여 성모님께서는 그들에게 일주일에 두 번 빵과 물로 단식하라고 요청하셨다.

"3달 뒤에 우리는 일주일에 3번 빵과 물로 단식하고 있었다.

이 기도모임은 자신들의 기도 대부분을 그를(자니치 주교님) 위해 바치고 있었다.

우리는 자주 우리의 성체조배, 묵주기도를 주교님을 위해 바쳤고 발현 장소를 방문하여

밤늦게 오래도록 그 분을 위해 기도했다.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기도와 단식을 내려다보고 계실 것이다”.

(o.p,p126)토미슬라브 블라지치 신부는 1984년 1월 8일 이렇게 적고 있다
메쥬고례 현상은 프란치스꼬회의 토미슬라브 블라지치 신부 주위에 기도그룹을 만들었고
그는 1984년 한 편지에서 교황님께 자신을 “하느님의 섭리를 통하여 메쥬고례의 시현자들을 지도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하였다.(OP,56)
이 기도모임은 단지 자니치 주교님이 자신들의 환각에 굴복하도록 하기 위해 기도와 단식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메쥬고례에 약 100여개 가까운 침상을 갖춘 수도원을 지었으며 이것에 대해 주교님께 허락을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4. 그는 전쟁을 막을 수 있었으나 원하지 않았다?-


전쟁이 한 창일 때 1993년 한 인터뷰에서 야곱은” 성모님께서는 오늘 지난 이 12년 동안 매일 그랬던 것같이 

전 유고슬라비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요청하셨습니다.

성모님께서는 내 기도로 전쟁을 멈출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을 주셨습니다."

이 사실이 그렇게 순진한 것이 아니라면 정상적인 신자들은 자신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할 것이다.:
- 만약 그 시현자가 이전의 유고슬라비아에서 전쟁을 막을 수 있었다면 왜 그는 기도하러 가서 전쟁을

종결시키지 않았는가? 라고 말이다.
전쟁 중에 2백만 명 이상의 사람들이 쫒겨났고 2십만 명 이상이 죽었으며 수 천 곳의 종교적인 유적지와

수 십만의 가옥들이 파괴되었고 우리는 불의한 데이튼 협정을 강요 당했다! 


5. 기도는 증거가 될 수 있는가?

교회안에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만약 사람들이 하느님께 기도하고 있다면  사람들을 메쥬고례로 가도록, 순례하고 기도하도록 내버려두라. "

그들에게는 기도하지 않는 것보다 기도하는 것이,
어떤 성모님도 전혀 공경하지 않는 것보다 메쥬고례의 성모님을 공경하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이다.!
2천년간 교회는 신자들에게 기도와 단식과 보속, 고해성사와 회개를 가르치고 권고해왔다.

교회는 신자들이 원하는 곳에서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교회는 진실된 것으로 인정되지  않은 발현을 교회안에서 인정받기 위해 발현 장소를 순례하는 것은

허락하지 않는다.

교회는 진리를 거짓과 분리시키기 위해, 진리의 가르침을 거짓 가르침으로부터 분리시키기 위해

이렇게 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는 단지 묵주 기도를 하고  고해성사를 하기위해 한국과 아일랜드로부터 메쥬고례까지

수 천킬로를 여행하는 것처럼 보인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방으로 가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는데도 말이다.(마태오 6장 6)
메쥬고례까지 30번 이상을 여행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과연 이렇게 말하는 것으로

그들이 회개하였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것인가?

이것은 그들이 회개하지 않았다는 진짜 표시가 될 수 있는 것이다(O.P, PP229~230)

진실로 회개한 사람은 이것에 대해 자랑하지 않으며 오히려  자신의 삶으로 이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만약 메쥬고례 성 야고보 본당의 신자들이 발현의 모든 자장가 같은 이야기에 개의치 않고 

진실로 그들의 죄를 고하고 기도한다면 그들은 그것에 의하여 전 세계의 가톨릭 교회 안에서 기도하고

유효하게 성사를 받는 다른 신자들과 똑 같은 하느님의 은총을  받는 것이다.

지역교회는 언제나 이 믿음을 지켜왔다
(O.P,PP268-269)


6. 교회의 조사위원회와 개입은 몇 번이나 있었는가?
 
1981년 6월 말경에 메쥬고례의 아이들에게 성모님께서 발현하신다는 센세이셔널한 소식은 매스콤을 타고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같은 해 8월 중순 7월 21일 메쥬고례의 소위 시현자라고 하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난 뒤 자신의 첫 번째 성명에서 파바오 자니치 주교님께서는 가장 어려운 문제는 어쨌든 이것이 아이들의 주관적인 경험인지 아니면 어떤 초자연적인 것인지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O.P, P192)

주교님께서 메쥬고례에 관한 여러 다양한 의견들에 대하여 기회 있을 때 여러 번 교황님과 교황청에  보고를

하셨지만 주교님께서는 사건의 조사를 위해 교구 조사위원회를 구성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셨다.

 

 첫 번째 교회 조사 위원회(1982-1984)
 자니치 주교님은 1982년 1월 11일 첫 번째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였고 이 위원회는

1984년까지 조사를 진행하였다.(O.P,P43)

조사위원에는 4명의 신학자와 2명의 교구사제, 2명의 수도자가 포함되어 있었다.


주교님이 새롭게 발견한 사실들-


1982년 1월 14일 조사위원회가 아직 소집되지 않았을 때 주교님의 입장을 처음 그리고

영원히 확고하게 한 일들이 일어났다.그 날 3명의 아이들은 헤르체고비나의 그 유명한 사건과 관련하여

주교가 너무 일을 서두르고 있다는 성모님의 메시지를 가져왔는데
그것은 자니치 주교님이 모스타 교구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2명의 프란치스꼬회  보좌신부를 

면직시키려고 하셨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삶 속에서 성모님께 대한 수 많은 봉헌과 순례로

성모님을 공경해왔던 주교님은 메쥬고례에서의 현상들이 교구 본당일과 관련하여 비종교적인 혼란을

이유로 자신을 책망하고 있다는 사실을 듣자  즉, 메쥬고레 현상들이 교회와 자신이 1년 전인 1980년 9월 모스타 교구의 대성당을 봉헌했던, 교회의 어머니이신 성모님께서 자신을 인정치 않고, 주교좌 성당의 정상적 기능을 방해하고 있었던 불순명 수도자들을 옹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자 주교님은

메쥬고례의 발현과 메시지에 대해 의심을 가지고 보시기 시작했다.
이런 일에도 불구하고 조사위원회는 자신의 일을 시작하였다.


대 표징-조사위원회는 아이들과 3번의 대담을 가졌다.1982년 세 번째 면담은 약간의 결과를 가져왔다.

주교님의 요구에 응하여 위원회는 아이들에게 어떤 종류의 큰 징표가 나타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은 언제 일어날 것인지를 두 개의 종이에  각각 적으라고 요구했다.

아이들은 그리고 자신들의 대답을 두 개의 봉투에 넣어 봉하였다.

봉투 하나는 그들이 보관하였고 다른 봉투 하나는 교구에서 보관하였다.

큰 징표가 일어나면 봉투는 개봉되어 진실이 확인될 것이었다 .

그러나 아이들 중 다섯 명은 질문에 응답하기를 거부했는데

그것은 성모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반면에 신학생인 이반은 질문에 대한 대답을 적었다.

그는 성모님께서는 질문에 답하는 것을 금지하지 않으셨다는 말을 하기까지했다.

그의 대답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을 넘어서는 대답이었다.

지금까지도 일어나고 있지 않은 이 “큰 징표”는 수 많은 거짓과 속임수와 연결되어 있다


교황청으로의 답-

   
1983년 11월 신앙교리성성은 주교님께 일정 정도의 결론에 이르렀는지를 물었다.

자니치 주교님은 메쥬고례의 조사 내용과 헤르체고비나 사건에 대하여 적어 그것을 요셉 라칭거 추기경님께

보냈다.결론에서 주교님은 발현에 대한 의문들을 적으셨다.

그것들은 하느님께로부터 온 것인가?-메쥬고례의 성모님은 전에 이곳에 있었던 것보다 더한 무질서와

혼잡을 가져왔다.!
이 때문에 주교님은 어떻게 이것을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이라고 인정을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두 번째 조사위원회(1984-1986)
I984년 자니치 주교님은 첫 번째 조사위원회를 연장시키기로 결정하셨다.

주교님은 유고슬라비아의 전 신학대학에 편지를 쓰고 전문가들이 위원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그들의 몇 몇

장상들에게 허락을 얻으려고 하셨다.
2번째 조사위원회의 위원은 15명이었다.12명의 사제와 3명의 의학 전문가이다.

그들은 모두 7번의 면담을 가졌다.첫 번째 면담은 1984년 3월 모스타에서 였으며

일곱 번째 면담은 1986년 같은 시에서 이루어졌고 그 사이에 위원회는 자신의 일을 끝마쳤다.

조사위원회의 위원들은 다음의 결론에 표를 던졌다.
초자연적이지 않다(11명이 찬성, 2명이 반대, 한 명이….. 1명이 기권)
조사위원회는 선언문 기초를 준비하였는데 그 안에는 호기심 어린 현상탓으로 일어났던  납득될 수 없는

주장들과 수상쩍은 선언들에 관한 것이 목록에 올라 있었다.

위원회는 또한 더 이상의 조사는 필요하지 않으며 교회의 공식적 판단을 연장시키는 것도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도 언급했다
주교님은 주교회의와 교황청에 올바르게 보고하셨으며  1987년 메쥬고례에서의 강론 중에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O.P.,PP47-50)  
1990년 잘 알려진 28가지로 요약된  주교의 부정적인 입장은 이러한 초 자연적 발현의 거짓 성격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이다.(O.P.,196)

1993년 8월 자니치 주교님은 매우 빠르게 자신의 일을 계속하고 있는 후임자에게 

교구 행정의 일을 건네 주셨다.       
 
B 유고슬라비아의 주교회의
 
유고슬라비아의 주교님들은1984년과 1985년에 2번  개입하셔서 메쥬고례 사건에 관해서는 강도높은 조사가

이루어진 뒤 있게 될 교회의 판단을 기다리라고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요청하셨다.


세 번째 조사 위원회(1987-1990)


조사위원회는 11명의 사제들(6명은 수도사제, 5명은 교구사제)과 4명의 물리학자와 심리학자와 서기로

한 명의 수도자로 구성되었다.조사위원회는 쟈그랩의 주교회의 비서실에서 23번의 면담을 가졌다.

첫 번째 면담은 1987년 4월이고 23번 째 면담은 1990년 9월이었다.
세 번째 조사위원회의 성격은 이전 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들에 대해서
검토하는 것이었다.모든것은 선서하에 이루어 졌으며 일반인들을 위한 성명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들의 4년에 걸친 오랜 노력의 결과가 1990년 자그랩의 주교회의의 구성원들에게  제출되었다.

발현에 관한 주교회의의 회의는 4번에 걸쳐 이루어졌다.

1990년 4월25일,10월9일,11월27일 그리고 1991년 4월10일 자다르에서 이루어진 투표를 통해

메쥬고례에 대한 선언문이  승인되었다.1명이 기권한 데 반해 19명의 주교들이 선언문을 위해 투표했다.
선언문:1991년 4월9일부터 11일까지 자다르에서 있었던 주교회의의 정기회기 동안에 다음과 같은 사실들이

승인되었다.


 선언서


 발현의 아주초기부터, 우리 주교들은 지역 주교와 주교의 조사 위원회 그리고 메쥬고례를 위한

주교회의 조사위원회를 통하여 메쥬고례 사건을 주시해왔다.

지금까지 이루어진 조사에 기초하면 이러한 일들이 초자연적 발현이나 계시라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앙적 동기나 또 다른 이유로 고무되어 세계 여러 곳으로부터 메쥬고례로 몰려드는 신자들이 있지만

메쥬고례에서 그리고 그것과 연관된 모든이들이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복되신 동정 마리아를 향한 봉헌이

증진될 수 있도록 무엇보다도 지역주교와 그리고 다른 주교들의 사목적 주의와 환기가 요구된다.

주교들은 또한 이러한 목적에 의거하여 특별한 전례와 사목적 지침서를 마련할 것이다.

동시에 주교들은 위원회를 통하여 메쥬고례 사건의 모든 것을 계속해서 조사할 것이다. 

1991년 4월 10일 자다르 유고슬라비아 주교일동


반격:

그 다음해로부터 크로시아와 헤르체고비나는 엄청난 공격을
받게 되었다. 새로운 성명과 함께 새 주교회의가 구성되었다.

메쥬고례에서의 이러한 일들이 초자연적 발현이나 계시와 관계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주교회의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이 현상들의 지지자들은 끊임없이 성모님께서 발현하고 계시다고

주장하고 있다
수 많은 호기심 많은 방문객에도 불구하고, 영적 지도자의 격려에 의한 거대한 선전 공세를 동반하는 것을

무릅쓰고서도, 우리 주교들이 진지하고 확고한, 전문적 조사에 기초하여 메쥬고례에는 어떤 초자연적 발현의

증거도 없다는 것을 용기있게 선언하였다면 이것은 20세기에서도 교회는 여전히 진리의 기둥과 방벽(디모3,15)이라는 징표인 것이다.(O.P,P151)
 
C 교황청의 개입
신앙교리성성은 2분의 비서들을 통하여 4번 개입하였고 한편, 장관이신 라칭거 추기경님께서도

매우 중요한 개입을 하셨다.

1985년 알베르토 보보네 주교는 이태리 주교회의 비서실에 메쥬고례로 오는  공식적인 순례를 조직하지 말 것을 통보하였다.1995년 타르시시오 베르토네 주교는 랑그르의(프랑스의) 주교인 레옹 타베르데 주교에게 편지를 썼으며  프랑스 브쟝송의 뤼씨앙 달로즈 주교에게도 같은 편지를 보냈는데 이 주교는 메쥬고례에 관한 교황청의 입장을 알고 싶어했다.(이 주교님은 순례단을 이끌고 순례를 가려는 계획이 있었는데 그 전에 교황청의 입장에 대해서알고 싶어 하셨음)

끝으로 같은 주교는 레위니옹의 질베르 오브리 주교에게 편지를 썼다.

이러한 편지들은 모두 그들이 발현의 진실성을 인정한다면 유고슬라비아 주교회의의 선언과 모순되게 되는 것이므로 사적이든 공식적이든 순례가 허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다.


Ratzinger's frei erfunden. - frei erfunden - (O. P., p. 283). 라칭거 추기경의 지어낸 이야기-

한 독일 사람이 교황님과 추기경님에 의해 말해진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 언급들을 모아서 메모의 형식으로

바티칸에 보냈는데 추기경님께서는 "메쥬고례에 관한 언급들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그것들이 완전히 지어낸 것이라는 사실 뿐입니다(O.P.,283) "라고 말씀하셨다. 

      
결론:

교황님과 라칭거 추기경께서 하셨다는 말씀들이 완전히 지어낸 이야기인 것뿐만 아니라 

성모님께서 말씀하셨다는 수 많은 메시지들도 완전히 만들어진 것들이다

교회의 이름으로 30명의 선택된 사제들과  의사들이 10년 동안 3번의 조사 위원회에서

30번이 넘는 회의에서 성실하게 전문적으로 메쥬고례 사건을 조사하였으며

그들의 조사 결과를 만들어냈다.한 명이 아닌 20명의 주교들이 메쥬고례의 사건이 초자연적 발현과 계시와

관계가 있다는 어떤 증거도 없다는 것을 책임있게 선언했다.

양대 원칙인 이성과 신앙을 존중하고 이 잣대에 충실한 신자들은 교회는 속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신뢰한다.
메쥬고례와 관련하여 그곳에는 성모님과 교회가 사교화 될 수 있는 진짜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사람들은 자신들 고유의 입맛과 지각, 속임수에 따라 성모님을 고안해내고 있다.,
적어도 6혹은 7개의 종교적 아니면 거의 종교적인 공동체가 막 설립되려고 하거나 이미 설립되었으며

교구의 권한 안이든 그렇지 않든 메쥬고례에서는 지역 교구의 권위의 허락없이 제멋대로 공동체를 설립해왔다.최근에 이 모스타-두브노  교구에서는 교구를 실질적으로 분열속으로 몰아넣는 문제들이 존재하고 있다.

프란치스꼬회에서 관리하던 몇 개의 본당을 교구 사제에게 넘기라는 교황청의 결정에 대항해왔던 적어도

8명의 프란치스꼬회 사제들이
프란치스꼬회에서 쫒겨났으며 교황령에 의해 면직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여전히 강제적으로 다섯 개의 본당을 점거하여 성무 집행을 계속하고 있다.

그들은 무효한 혼배성사를 집전하고 교회법적 허가 없이 고해를 들으며 무효하게 견진성사를 주고 있다.

3년 전에 그들은 견진성사를 집전하기 위해 거짓으로 자신을 주교라고 소개한 올드 가톨릭의 부제를 초대하기까지 하여 3개의 본당에서 800여명의 젊은이들에게 견진성사를 주었다.
 이 제명된 프란치스꼬회 사제 중의 두 명은 스위스의 올드 가톨릭의 주교인 한스 게르니로부터 

주교 품을 부탁하기도 하였으나 무산되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지역교회로부터 최고의 권위에 이르기까지, 처음부터 바로 지금까지 교회는 명백하고 끊임없이 초자연적인

것이 아니다라고 반복해왔다.
발현을 초자연적인 성격이라고 생각하는 순례는 안되며 성모님의 성지도 아니며 진실된 메시지도, 계시도

없고, 진실된 환시도 없는 곳이라고...
이것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의 상태이다.
내일은 또 어떻게 될것인지?
우리는 이것들을 하느님의 손과 성모님의 보호아래 맡겨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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