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9일 (수)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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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Re:고해성사에 트라우마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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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영혼 [220.72.245.*]

2016-12-04 ㅣ No.11305

어제는 데레사 자매 부부의 초대를 받아 순둥이 안나와 더불어 제부도를 다녀왔습니다. 썰물전 매바위 가까이 다가가 겨울 연인들도 바라보고 왔지요. 필자는 무대체질로서 가끔 성당 병원 등을 지나며 다짜꼬짜로 성가 한 곡을 부르겠다고 하기도 하지요. 언젠가 석모도를 탈출한 성모 무염시태 축일 그림처럼 겨울 여인 홀로 서있는 두 사람만의 도심으로 향할 버스 기다리던 공간도 기억나는 군요. 

 

남편과 같이 영등포 병원을 다녀오다 손을 놓아 길을 잃었다더군요. 동전 두개 없어 기사님께 혼나길레 대신 넣어줬더니 다가와 사탕을 주더군요. 잠결에 아내의 정신병원 방문 이후 도중에 기다리던 남편의 호통을 들으며 떠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같은 12월 8일 그날 떠나 온 필자 본당 신부님은 어머니와 살고있는 본당으로 영전하였고 수년이 지나 같은날 노래하게 된 새로운 주임 신부님은 자매님과 비슷한 고해성사 트라우마를 제공했던 신부님이었습니다. 어디서 이상한 녀석 하나 나타나 판공기간내 바빠 죽는 입장에서 경계와 짜증을 내시길레 어린시절 약현성당에서 신부님께 혼난 잠자던 트라우마 이후 두 번째 충격으로 나도 욱!하는 심리가 발동하더군요. 그것은 사제들은 내게 꼭 인격적으로 영성적으로 철저히 잘 해줘야 한다는 고정관념 때문이라 보여집니다. 심하면 이 경우 어떤 형제들은 고해성사고 뭐고 신부님과 멱살잡고 난리가 나기도 한답니다. 반대로 수많은 형제 자매들에게 대충 철저히 임해야 하는 고해 사제들 입장도 난해하긴 매 한가지겠지요.

 

무대체질인 필자라는 한 남자는 지난날 하도 많은 영육적인 그것들 복창으로부터 스쳐 지나던 노하우로 그 순간 추궁하는 신부님께 즉시 울 엄니 때문이라 하자 바로 꼬리를 내리시더군요. 그리고 사람 덜 도착한 성당에서 묵상중 뒷목에 뭔가 느껴져 돌아보니 바쁜 고해는 못하시고 한참동안 반성 자세로 제단의 십자가 예수님을 바라보시더군요. 아마 그 신부님도 그리 할겁니다. 병원내 이미 하늘로 떠나신 환자들 및 지난날 회환 등을 버무려 이날이 평일미사라서 성가대석 독점하여 필자와 아래층 제단 신부님 그리고 그 위의 정면 십자가 예수님 더불어 성모찬송을 부른뒤 성체를 영하려 내려오니 새로오신 수녀님 또한 뭔가 필을 받아 성가를 더 맑고 힘차게 부르는듯 하였습니다.

 

필자의 작은 경험으로 보건데 자매님 트라우마 경우도 보다 범위를 넓게 바라보자는 신호가 아닌가 합니다. 너와 나 사람들은 살며 기도하며 별의 별 꼴을 당하면서 면역력이 강해지던가 병행하여 그 육신의 퇴화로 더욱 깊은 뭔가를 찾아 떠나게 됩니다. 남자 입장에서는 옛말하는 입장이지만 그 트라우마 별거 아니라고 보여집니다. 신부님들 입장에선 고해성사가 제일 힘들다는 호소가 주류를 이루기도 하지요. 그 일방적 고백을 함께 풀어가자는 고해성사로 임했다 기억해두세요.

 

바람 피우기 좋아하는 남자들 귀소본능 속에는 거칠은 음이나 내용들에 여자들 거부감을 맞닥뜨리거나 도피하는 경우도 잦다 보여집니다. 그 신부님 경우는 추후 필자와 복도에서 마주했을 때 깊이 먼저 인사 주시는 역전을 즐기고 뭐 그랬지요. 그 분은 곧 영전 하심이 전부였지만 필자 경우는 절대로 고해성사 비밀 유지는 사제만의 몫이 아닌 평신자도 화합할 가치가 있다 보여졌기에 이 글도 조심스럽기도 할 것입니다. 때때로 자매님처럼 그 사제처럼 누적된 복창 터짐으로 입으로 배설(?)이란 생각도 들겠지만 성령발로서 하소연이라 여겨주시는 여정이라 보여집니다. 결국 세상에서 또한 사람과 사람의 대화 또한 고해성사로 승화하는 것은 필자나 자매님 몫일겁니다.

 

여자들이 남자의 거친 언어에 메여 정채하는 경향이 잦거나 필자도 내면을 자리하는 바리사이 남자들 또한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도피는 결국 담쌓기로 이어질 것입니다. 그것을 최근 정국의 박모 율리아나라는 여인이 잘 보여주고 있지요. 고로 그 사제는 자매님 보기를 돌같이 본 것이 아닌 성모님께 투정으로 본 것이다라고 굳게 믿어두세요. 어제 제부도 펠릭스 회장님 별장에서 다시 데레사 자매와 안나와 바라본 2키로쯤 멀어진 매바위는 성당 모습과 그 앞에서 기다리시는 성모님 모습이었는데 언젠가 그 신부님 외나무 다리에서 만날 때가 올 것입니다. 그 때는 일반 여인들처럼 남편 복수하듯 후라이펜 한방으로 보낼 생각만 하지 마시고 그리스도 향기로 확 보내버리세요.

 

필자는 자매님 같은 신자들을 사랑합니다. 본의아니게 군림하고 독재하려는 사제들은 주로 무지한 최순실 닮은 비선형 자매들이 교회 구조를 망친다 보여지거든요. 이들의 특징은 번제물 양산 방종형으로 역시 군림하기 바쁘고 독점하기 바쁘지요. 아무튼 구조적 모순을 이 사람처럼 하느님께 전가하며 의욕만 앞 세울 수 있는 그런 사제로 하여금 내 안의 분노 등을 억제하여 화병 방치하지 말자는 은사로 보여지니 우선 나도 그렇게 성령께 맡기는 대충 슬기로서 풀어가는 것이 좋다 보여집니다. 그러면 곧 내가 푸는 것이 아닌 또 다시 누군가와 함께 밀당하는 것으로 다시 이어질테고 제일 중요한 지금 그대로 곁에 있는 사람과 내가 하는일 삼위일체로 풀어가게 될 것입니다. 자매님도 잘하고 계시니 사제를 위한 기도 두 개 바쳐주심이 어떨까요? 한 개가 아닌 두 개라 함은 제 것까지 뜻하기 때문입니다.

 

악은 교란을 선은 치유 봉합을 하기에 중재자인 그런 사제 여파로 고해성사를 멀리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마 그 사제도 하느님께 엄청 혼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는 더욱 고해성사를 지금 이순간처럼 수다형으로 신부님들도 외롭지 않게가 아닌 위로도 하는거지요 뭐. 거기에 공과 사를 더하여 상황에 따라서 짧거나 길게 대처하면 됩니다. 잘 해오셨을것입니다.

 

다시 한 번 나같은 남자 입장에선 그런 사건 별 것 아님으로 여겨지고 속에 담아두기 보다는 지금처럼 수다로 풀어버리세요. 국정 농단 이전에 작은 것들이 소중하기에 때때로의 인터넷 농단 세력들과 나 가운데 커다란 은총 받으신듯 합니다. 이에 의무감이나 해치움이 다시 도전한다면 빛이 환한만큼 어둠의 그림자도 깊기에 그것을 곧바로 풀자는 사제의 취지일테니 걍 그렇게 기도하는거지요 뭐. 그게 남자고 그런 남자를 위해 서계신 자매님 또한 더욱 건강으로 이끄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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