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6월 30일 (일)
(녹) 연중 제13주일(교황 주일) 소녀야,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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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관 일기80 /김강정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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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탁 [daegun011] 쪽지 캡슐

2001-06-27 ㅣ No.3924

              사제관 일기 80  

 

오늘은 교리 반 책 걸이가 있었습니다.

교리를 서둘러 마치고, 바깥에서 단출한 술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무슨 일이든 그 마무리에 이르러선, ’시원섭섭하다’ 는 표현들을 하건만,

저는 시원함보다는 섭섭함과 서운함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이들과의 만남이 마치 수년을 묵어온 오랜 교분처럼 느껴지니 말입니다.

...............

영세는 받았지만 교리기간이 짧다며, 전임자께서 훌쩍 떠넘기신(?) 선물...

그 고마운 선물들을 은총처럼 여기며 넉 달을 함께 해왔습니다.

수효로 셈한다면야 고작 일곱에 불과하지만,

제게는 수백 수천보다 더 귀한 이름들이었습니다.

...............

오늘 저는 이 만남을 축복하며, 한없는 기쁨에 감사 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했던 넉 달을 다시금 회상해봅니다.

처음 제가 교리실로 들어설 때의,

그 서먹한 눈빛과 호기어린 눈망울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간간이 던져보는 질문에 부끄러워 고개만 숙이던, 연한 새잎 같은 영혼들..

가르침 속으로 빨려 들어와 옴쭉도 못하는 저 순진한 붙들림과,

마치 스펀지마냥 놀라운 영혼의 흡인력......

이들이 바로 ’신앙의 초보’ 라는 이름의, 저의 행복들이었습니다.

............

실로 가르침의 道에는 가르치는 자도 배우는 자도 따로 없음을 깨닫습니다.

이들이 받음을 통해 배웠고, 얻었듯이

저 역시, 줌을 통해 오히려 더 많은 것을 배웠고 얻었습니다.

그 맑음을 닮기 위해 나날이 숨어 배워온 뒷 공부를

저도 매일같이 복습하며 살아가겠습니다.

.............

언젠가는 이들도 삶으로써 깨달을 날이 올 것입니다.

"가르침을 버리고, 삶을 붙들라" 는 저의 마지막 부탁을.....

진리는 지식 속에 갇혀 있지 않음을....

진리는 나날이 살아지는 삶의 또 다른 얼굴임을....

하여,이들이 그 진리 하나만 붙들고 사는, 영원한 신앙의 초보이길 빌어봅니다

.............

이제, 신앙의 세계를 향한 이들의 첫 행진을 사부로서 축복해드립니다.    

그대들이 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이 은총의 노정이 되시길 빕니다.

하여, 맑은 영혼의 여백에다 나날이 아름다운 채색을 입히며,

삶의 품위와 신앙의 높은 경지를 이루시기를 축원합니다.  

..........

..........

일곱과의 단출했던 오늘이 참 많이도 그리울 것 같습니다.

그리움도 행복의 반향이라 여기며, 이 섭섭함마저 행복으로 삼겠습니다.

제 삶에 영원히 잊혀지지 않을 이름들......

당신들을 다시금 세상으로 돌려보내오니,

내내 행복하소서....

내내 행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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