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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하느님은 사랑과 자비의 하느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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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7-12 ㅣ No.3569

안녕하세요, 형제님?

 

저는 가톨릭 신자인 이 재훈 사도요한입니다.

 

우선, 형제님의 글을 읽고 하느님을 알고자 하는 형제님의 치열한 갈망을 느낍니다.

 

형제님이 처음 제기하신 부분은 여러 성경구절에 나오는 잔인한 표현을 볼 때 과연 하느님이 사랑의 하느님 맞는가? 하는 것입니다.

 

잔인한 표현 뿐만 아니라 성경 안에는 얼마든지 우리 인간의 판단으로 볼 때 이해 않가는 점이 많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 형제님 같이 용기있게 문제를 제기하는 것 또한 유사한 의문을 가지고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같이 한번 생각해보게 해준다는 점에서 좋은 것 같습니다.

 

어쩌면 이 문제는 성경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에서 시작되는 것 같습니다.

 

한가지 질문을 드리면..

 

하느님이 ''사랑의 하느님''이란 말에 동감하십니까?  

아니면 진정 ''포악한 하느님''이라고 믿으십니까?

 

아니 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나 드릴까요?

 

형제님은 창세기 1장1절에 나오는 하느님이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심을 선언한 그

구절을 믿으십니까? 만약 이 구절을 믿지 않으신다면, 하느님과 관련된 다른 부분은 언급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시는바와 같이,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참 좋았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성서의 다음 부분 부터는 인간의 온갖 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한 

그때마다 하느님은 언제나 용서하시는 자비의 하느님이십니다.

 

형제님께서도 너무나 잘 아시는 내용이지만 하느님이 얼마나 사랑의 하느님인지를 보여주는 구절을 처음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1)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하였지만 그들은 죽지않았고 오히려

    하느님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가죽옷을 해입히십니다. 

2) 카인과 아벨이야기에서 카인이 살인죄를 범하여 떠돌이 신세가 되지만 카인을 

    보호하는 조치를 취하십니다.

3) 노아의 방주 이야기에서는 인간들의 죄악을 보시고는 정말 진노하시며 급기야

    인간을 만드신 것을 후회하십니다. 그래도 노아만은 살리시어 새로운 세상을

    만드십니다.

4) 새로운 세상에 대한 하느님의 기대와는 정반대로 인간들은 탑을 쌓아 하느님

    께 도전합니다. 그렇지만 노아의 홍수 때와 달리, 인간들의 언어를 달리하여

    흩어놓으실 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아브라함을 불러 인간 역사에 본격적으로 개입하시고, 이사악과 야곱 그리고 요셉을 거쳐 출애굽의 모세시대에 이릅니다. 성조사의 각 부분에서도 사랑의 하느님을 알아볼 수 있는 대목이 나오지만...

 

결정적으로,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가나안 땅에 정착하기 까지 그들을 보살펴주십니다. 그 와중에도 이스라엘 백성은 죄를 많이 짓지만...

 

특히 모세가 계명을 받으러 산에 올라간 동안, 그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다시 한번 하느님을 진노케 합니다. 하느님은 다시 한번 노아의 홍수때와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 모두를 죽이려하시지만 모세가 싹싹 빌고빌어 간신히 용서를 받습니다.

 

바로 이때에 하느님께서는  스스로 말씀하십니다 "나는.. 자비와 은총의 신이다... 사랑과 진실이 넘치는 신이다. 수천대에 이르기 까지 사랑을 베푸는 신, 거슬러 반항하고 실수하는 죄를 용서해주는 신이다. 그렇다고 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조상이 거스를 죄를 아들 손자들을 거쳐 삼사대에 까지 벌한다."(출애굽 34,6-7)   

 

다아시는 내용을 일일히 열거하여 번거롭게하는 느낌이 듭니다만, 이외에도 하느님

께서 진노하시고 용서하시는 부분은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예례미야 1.14-16과 3,12-14에는 각각 하느님의 진노와 "제발 돌아와다오"라는 하느님의 통사정이 나옵니다. 또한 호세2,21-22과 6,4-6에서도 "나의 마음을 알아다오"

하고 아예 애걸복걸하십니다.

 

형제님이 제기하신 문제는 구약의 전체적인 의미와 자구적인 해석의 충돌이 아닐까요?

 

일 예로 사울의 잘못은 불순종입니다. 성서가 그 구절을 통해서 제시하려는 바가 바로 불순종입니다. 어린아이까지 죽이라는 것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만,

중요한 것은 성서가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무엇인가가 우선이고 그 다음 우리 인간의 판단으로 "그렇지만 이건 좀 이상하다."하는 부분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사무엘서가 쓰여졌던 시대의 사람들은 ''적들을 완전히 섬멸시킴으로써 하느님을 찬미하고 지상에 하느님의 뜻을 가져온다고 믿었고, 이 믿음은 율법 안에 표현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구약성서 기원 발견하기, 마거릿 누팅 랄프)

 

또한 출애굽의 재앙에 관한 이야기에서도 어린아이까지 죽일 이유가 무엇인가 라고 하셨는데..  분명 파라오는 유아들을 살해했고, 모세가 미리 맏아들이 죽을 것을 경고 했지만, 파라오는 말을 듣지않았습니다. 이에 대해 이사야19,22는 "야훼께서 이집트를 향하여 매를 드시더라도 그 뜻은 치는데 있지 아니하고 고쳐주는데 있다. 그러므로 그들이 야훼께 돌아오면 그 간구를 들어주시고 고쳐주실 것이다."라고 쓰고 있습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단순히 어린아이까지 죽일 필요까지 있느냐는 차원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교만한 마음에 빠진 파라오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느님은 재앙을 내리신 것입니다. (출애급 7,5참조)

 

물론, 표현 상의 문제는 있습니다. 보다 좀 더 자비로운 하느님의 모습을 그리는 문체였다면 합니다만, 두려움을 모르는 인간들에 향한 강렬한 경고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늘날 누군가가 하느님의 영감으로 성서를 다시 쓴다면 현대인의 정서에 맞는 어법을 가미했겠지요.   2천년 전의 시대상황에서 쓰여진 글이란 점을 고려하시구요.

성서의 어린아이 얘기가 아니라, 우리 주위에 평생 착하게 남을 위하여 살아온 젊은이가 갑자기 교통사고로 죽는다면, 잔인한 하느님이 아니라 아예 하느님은 안계시다고 하실건가요?

 

사실 저도 성경을 읽다보면 형제님과 내용은 다르지만 신경질 나는 경우도 많습니다. 오히려 형제님 보다 더 제가 성경을 까다롭게 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제 저의 본당 신부님이 강의 중에 율법에 돼지고기와 낚지는 부정한 식품이라 금했다고 하면서, 하지만 오늘날 그런 율법은 폐기된거나 다름없다고 하셨습니다.

 

아마 그 시절 사람들은 삼겹살과 얼큰한 낚지 맛을 몰랐던 것 같지요?  

 

형제님의 지적호기심 충족 보다는 지혜를 갖게되시기를 기원하며... 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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